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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베이킹랩 이성규 Jun 24. 2020

아쥬드블레라는 빵집 이름을 짓기까지

"아쥬 아저씨 어때?"

 평소 알고 지내던 딸내미 친구 아빠가 전화로 던진 말이다.


"네? 뜬금없이 무슨 말이에요?"

"아~ 빵집 이름 정해야 한다면서요. 빵집 이름으로 아쥬 아저씨 어떠냐고?"

"그게 무슨 뜻인데요?"

"아저씨의 시대. 아저씨 두 명이 하는 빵집이니 이것도 괜찮지 않아요?"


내가 열었던 빵집, 아쥬드블레(Âge de Blé)라는 이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빵집 개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부분을 꼽으라면 그건 바로 빵집 이름 짓기일 것이다. 가족끼리 모였다 하면 서로 경쟁적으로 이름을 이야기하였다. 주위 분들, 특히 언어 감각이 좋은 분들께도 좋은 이름 지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하지만 맘에 쏙 드는 이름은 잘 나오지 않았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이름 짓기 과제에 딸내미도, 아내도, 나도 지쳐가고 있었다. 그때 받은 딸내미 친구 아빠의 전화는 먹구름으로 어두워진 하늘을 가르는 한줄기 환한 번개와 같이 막혀있던 길을 뚫어주었다. 아쥬라는 이름을 받으니 이름 짓는 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빵집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나는 프랑스어를 배우고 있었다. 감미로운 음악 같은 프랑스어에 빠져 있던 나는 프랑스어로 된 빵집 이름을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빵집 이름에 블레(Blé)라는 단어를 쓰겠다고 이미 맘 속으로 정해놓고 있었다. 블레는 프랑스어로 밀이라는 뜻이다. 빵을 구우면서 밀의 가치를 알게 되었고 빵집을 통해 그 가치를 전하고 싶었기에 이름 어딘가에 밀이 들어갔으면 했다. 게다가 프랑스어 블레는 입에도 착 붙기까지 하니 이름으로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블레만으로는 뭔가 허전했다. xx블레 또는 블레xx처럼 블레 앞 혹은 뒤에 뭔가가  더 붙었으면 싶었다. 딸내미 친구 아빠가 건네준 아쥬(Âge)로 내 고민은 한순간에 해결되었다. 


아쥬드블레(Âge de Blé)라는 빵집 이름은 이렇게 탄생하였다. '밀의 시대'라고 번역할 수 있겠지만 나는 '곡물의 시대'라고 소개하길 좋아했다. 개업 전 출사표처럼 쓴 빵집 소개글에 있는 것처럼 나는 밀뿐만 아니라 우리 땅에서 나는 곡물을 모두 활용하여 빵을 굽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자연재배로 자연의 방식으로 기른 밀과 잡곡 등 곡물로 만든 건강한, 곡물 본연의 맛과 풍미가 살아있는 맛있는 빵을 향한 저의 가치를 담았습니다. 곡식을 기르시는 얼굴 있는 농부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으로서의 빵을 추구합니다.


빵집을 열고 많은 분들이 빵집 이름에 대한 이런저런 의견을 말씀해주셨다. 빵집 이름이 너무 어렵다, 입에 붙지 않는다라는 의견이 주였다. 지금도 재미 삼아 검색창에 빵집 이름을 검색해 보면 아주드블레, 아쥬드빌레 등 다양한 이름이 검색된다. 빵집 이름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드리면 돌아오는 한결같은 반응도 있었다. "빵집 이름이 너무 인문학적이네요." "좋긴 한데, 이름이 빵집 주변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빵집 이름이 좀 이상해요."

빵집 이름에 대해 물어보신 손님은 많았지만 이름이 이상하다는 분이 이 분이 유일무이했다. 알고 보니 불어를 전공하신 분이셨다. 솔직히 말하면 아쥬드블레(Âge de Blé)라는 말은 프랑스어에 존재하지 않는다. 문법적으로 틀린 말이기 때문이다. 문법적으로는 아쥬뒤블레(Âge du Blé)가 맞는 말이다.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아쥬드블레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쥬드블레도 입에 붙기까지 한참 걸리는데 아쥬뒤블레는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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