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이 필요했다. 조그마한 동네 빵집이지만 빵을 팔기 위해선 빵 만드는 기술을 더 연마해야 했다. 빵 수업을 통해 이런저런 빵 굽는 법을 배우긴 했지만 빵 만드는 건 여전히 서툴렀다. 빵 굽는 스케줄은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재료는 어디서 사야 하는지 등 빵집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도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 모든 난관을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빵집에서 직접 일해 보는 것이리라. 문제는 나 같이 나이 많은 초짜를 써줄 만한 빵집을 찾는 것이었다. 빵집에선 대부분 20대에서 30대 초반의 혈기 왕성한 직원들이 빵을 굽는다. 40을 넘긴 지 한참 된 중년을, 게다가 빵집에서 일해본 경험도 전무한 쌩초보를 받아줄 빵집이 있을까?
짧은 시간 일해 볼 수 있는 빵집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자 선강래 형이 자신이 몇 달 동안 일했던 더벨로를 추천해 주었다. 곽지원 빵 공방의 제빵 과정을 나보다 먼저 수료한 그는 전남 장흥에서 그랑께롱이라는 베이커리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더벨로는 우리밀 빵을 굽는 빵집이자 하루에 엄청난 양을 굽는 빵공장이기도 하니 기술을 익히기에 그만한 곳이 없다는 게 그의 추천 이유였다. 홈베이킹을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밀로 굽는 빵에 관심이 있었기에 더벨로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빵을 엄청나게 많이 굽는다는 사실도 매력적이었다. 기술이라는 게 몸으로 익히는 것이고 몸으로 익히려면 많은 연습량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빵집은 정했는데 어떻게 들어간다? '아! 소울브레드의 권순석 베이커가 더벨로 출신이지!',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었다. 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이 한참 울렸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빵 반죽하느라 바쁜가 보네'라고 생각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얼마 후 전화벨이 울렸다. 그의 전화였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더벨로에서 일해 보는 건 좋은 생각이라며 격려해 주었다. 그리고 더벨로 대표의 전화번호를 전해주었다. 나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한마디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베이커님이 더벨로 대표께 미리 언질 좀 해주세요.' 무턱대고 거는 콜드 콜(cold call)보다는 가까운 사람의 소개가 훨씬 더 효과적이며 성공 가능성도 훨씬 더 높다는 사실. 20년 회사 생활에서 취득한 영업의 기본 스킬이다.
반영재 대표의 전화번호를 전해 받은 다음날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베이커들은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 받지 않는다기 보다는 받을 수 없다는 상황에 있다고 해야겠다. 베이커로 살던 나도 전화를 잘 받지 못했다. 반죽 잔뜩 묻어 있는 손으로는 전화받기가 쉽지 않았고, 잔뜩 부풀어 오븐에 들어가야 할 시점에 있는 반죽을 두고 전화를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잠시 후 전화가 걸려왔다. 반영재 대표였다. 간단한 자기소개 후 빵집에서 일해 볼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일단 빵집으로 한번 오라고 했다. 약속시간을 잡고 전화를 끊었다. 면접 아닌 면접이 남았지만 왠지 승낙을 받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 건 내가 지나친 낙관주의자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며칠 후 양재동에 있는 더벨로를 찾았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여 빵집 주변을 거닐었다. 주택단지 안에 있는 나지막한 건물 1층을 모두 쓰고 있는 더벨로는 언뜻 보기에도 빵집이 아닌 빵공장처럼 보였다. 공장 안에는 언뜻 보기에도 대여섯 명의 직원들이 부지런히 빵을 만들고 있었다. 공장 앞 쪽에 차려놓은 빵 진열대에 놓여있는 먹음직스러운 빵들을 둘러보고 있자니 공장에 있던 직원이 나오셨다. 용건을 이야기하니 공장 안으로 들어가 반 대표 이름을 불렀다. 잠시 후 깡 마른 몸에 안경을 낀 반 대표가 나왔다. 두르고 있는 앞치마엔 밀가루가 하얗게 묻어 있었다. 빵 굽는 직원이 대여섯 명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빵을 직접 굽는가 보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고 빵집에서 일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대답 대신 내가 하고자 하는 빵과 빵집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직접 기르고 있는 밀로 빵을 굽고 싶다고 했다. 그는 우리밀의 한계와 우리밀 빵집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나는 밀 품종의 다양성이 우리밀이 처한 현실을 타개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그는 나의 말에 수긍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렇게 대화가 길어졌다. '어 이러다 그냥 집에 가겠는데?'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조바심을 숨기기 위해 나는 시종일관 테이블에서 올려놓았던 두 손을 내리고 몸을 뒤로 젖혀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그리고 대화 주제가 한 두 개 더 지나가자 그의 몸이 내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합격이군!' 잠시 후 그는 언제부터 나올 수 있는지 물어봤다.
2017년 9월 중순, 더벨로에서 빵집 실습이 시작되었다. 일주일에 3일 빵집으로 출근하였다. 아침 7시에 시작하여 빵 주문량을 다 채우면 끝나는 스케줄이었다. 빵 굽는 일은 30분간의 점심시간 이외에는 두 발로 서서 끊임없이 몸을 놀려야 하는 중노동이었다. 첫 2주가 지나고 나는 페이스북에 이런 소회를 남겼다.
2주 차 빵집 연수가 끝났습니다. 이제 적응할 때도 되었는데 몸을 쓰는 일은 여전히 서툴고 힘듭니다. 잠깐의 쉬는 시간, 부재중 전화를 남긴 친구 녀석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 힘든 일을 굳이 하려는 이유가 뭐냐고 묻습니다.
글쎄 왜 그럴까...
뜻하는 바가 있어서?
화두로 삼고 있는 일을 실현하고 싶어서?
그냥 좋아서?
둥글리기, 세컨드네이처가 되다.
빵 만드는 공정 중에 둥글리기(영어로는 preshape이라고 한다)라는 공정이 있다. 원하는 빵 크기에 맞게 반죽을 나눈 후 빵 모양을 만들기 전 흐트러진 반죽을 한 덩어리로 잘 모아주는 공정이다. 동그란 공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반죽을 바닥에 둥글린다고 해서 둥글리기라고 부른다. 한 명이 반죽을 정해진 무게로 자르면 다른 한 명이 둥글리기 해서 줄 맞추어 늘어놓는다. 하루에 수천 개의 빵을 굽는 빵공장에서 초보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둥글리기가 다였다. 빵 공정 중 빵 품질에 미치는 영향이 극히 미미한 공정이기 때문이다. 숙련자들이 하는 걸 보면 아주 쉬워 보이지만 막상 해보면 맘대로 안 되는 게 둥글리기다. 손은 열심히 돌아가는데 반죽은 모아지지 않고 헛돌기 일쑤다. 둥글리기는 맘처럼 되지 않고 손 빠른 선배 제빵사가 분할한 반죽은 산더미처럼 쌓여가고. 처음 며칠은 정말이지 진땀이 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둥글리기가 손에 익었다. 그렇게 안되던 것이 두세 번 원을 그리면 동그란 반죽이 되었다. 나중엔 선배들과 수다 떨면서 할만큼 여유가 생길 정도였다. 기술을 익히는데 많은 연습만 한 것이 없다. 그렇게 몸으로 익힌 둥글리기는 나의 세컨드 네이처가 되었다. 이때 익힌 기술은 나의 소중한 자산이다.
하루하루 버티다 보니 어느덧 예정된 한 달이 지났다. 빵집에서 제공받은 신발, 옷 등 물품을 모두 반납하고 모두에게 인사한 후 더벨로를 나섰다. 10월 중순의 파란 하늘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귀한 기회를 주신 더벨로 반영재 대표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그리고 손 느리고 실수 잦은 나로 인해 작업에 방해를 받은 선배 제빵사들에게도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