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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베이킹랩 이성규 Apr 10. 2020

브롯하임 같은 동네 빵집이면 좋겠다

도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빵집은 브롯하임이었다. 2017년 7월, 도쿄에 갔다. 곽지원 빵 공방이 제빵 과정 수료생을 위해 연 일본 빵집 투어에 참가했다. 3박 4일의 빵집 투어 기간 동안 하루 종일 빵집을 돌아다녔다. 참가자들 모두 자기 빵집을 열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번 투어에서 뭔가를 꼭 얻어 가야 한다는 의지에 불타고 있었다. 하여 빵집 투어는 전투적이었다. 그래서 힘들었다. 너무 많은 빵집을 찾아다닌 탓에 하루 동안 걸은 걸음 수는 매일 신기록을 경신했다. 숙소로 돌아오면 걸음 수를 확인하는 게 하루 일과의 마무리였을 정도였다. 


찾아다닌 그 많은 빵집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베이커리 브롯하임이었다. 도쿄 외곽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 잡은 빵집이다. 도쿄 번화가에 있는 빵집만 찾았던 터라 브롯하임을 찾아가는 동안 이런 주택가에 빵집이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지하철 역을 나와 주택가로 한참을 들어가니 주변과 다른 독특한 건물이 보였다. 독일 알프스 산 아래 시골마을에 있을 법한 이층 집이었다. 그 집 1층에 아카시 가츠히코상이 운영하는 베이커리 브롯하임이 자리하고 있다. 1987년부터 이 자리를 지켜왔으니 이 동네 터줏대감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아카시 상은 일본 3대 빵 대가 중 한 명이라고 한다. 빵 투어를 기획하고 이끌고 있는 곽지원 선생과는 막역한 사이인 듯했다. 곽 선생이 빵집에 들어서자 아카시 선생이 나왔다. 새하얀 가운에 둥근 얼굴 가득한 흰 수염 그리고 검버섯이 피어오른 커다란 두 손이 인상적이었다.


빵집은 카페를 겸하고 있다. 카페에는 손님들이 점점이 앉아 빵 플래터와 수프, 커피를 먹고 있었다. 호밀빵, 사워도우 빵, 브뢰첸이 빵 플래터로 제공된다. 출근길에 들려 간단히 아침밥을 먹는 직장인,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온 애기 엄마 등 다양한 사람들이 브런치를 즐기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브런치를 즐기고 계신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딱딱한 빵들을 오물오물 드시는 모습을 보니 이 빵집의 오랜 단골손님인 듯했다.


아카시 상에게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좀 기다려 달라고 한다. 마침 시끄럽게 떠들고 있던 우리 일행들 사이에서 조용히 브런치를 들고 계시던 할머니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서고 계셨다. 아카시 상은 할머니에게 다가가 의자를 빼 주며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마도 식사는 어땠는지, 건강은 어떠신지 등 일상적인 대화일 것이다. 카페 출입문을 열어 드리고 할머니가 가시는 모습을 그윽한 눈으로 한참 지켜본 후 시선을 우리에게 돌렸다. 그의 시선에선 할머니를 바라보던 그윽함은 가셨지만, 대신 인자한 미소를 얼굴 가득 지어 보였다. KFC 할배같이 온화한 아카시 상과 찍은 사진 한 장이 남겨졌다.


나의 빵집은 브롯하임처럼 동네 주민들의 삶에 녹아있는 편안한 이웃 같은 동네 빵집이면 좋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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