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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베이킹랩 이성규 Aug 08. 2020

인연

바실리와 함께 한 5일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바실리를 떠나며 블로그에 글을 하나 남겼다.

 



페이스북을 통해 우연히 알게된 바실리. 그는 러시아 시골동네에 살고 있다. 그의 페이스북 대문에 걸려있는 대형맷돌제분기 사진에 끌려 친구신청을 했었다.


페이스북 친구가 된 후 종종 메신저를 통해 사진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공통관심사인 밀농사, 제분, 빵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그러다 이 친구를 한번은 꼭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무더위가 한창인 여름 이 친구를 찾았다.


때마침  이 친구 동네에선 밀수확이 한창이었다. 600만여평에 밀농사를 짓는 대농 바질라프를 만났고, 그는 그의 게스트룸을 우리 숙소로 내주었다. 게다가 여름부엌을 내주고 그 안에 있는 다양한 먹거리도 자유롭게 먹어도 된다고 했다.


그의 집 넓은 마당 곳곳에서 뜨거운 여름 햇살을 받으며 잘 익어가고 있는 먹거리도 내주었다.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달린 블랙커런트, 레드커런트, 구스베리, 때가 약간 지났지만 몇 알이 남아 귀한 맛을 보여준 라스베리. 틀밭에서 익어가는 엄청나게 굵은 마늘과 토마토, 고추, 그리고 딜. 그의 정원은 손만 내밀면 근사한 샐러드 한접시를 간단히 만들 수 있었다.


빠르게 다가오는 겨울에 수확을 서둘러야 하는 바질라프와는 그리 많은 시간을 보내진 못했다. 허나 우린 밀농사법와 사업으로서의 밀농사에 대해 충분히 의견을 나누었다. 종종 번역기의 도움을 받으면서.


밀농사에 대한 나의 경험과 농사법에 대해 경청해준 그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내년 봄 내 의견을 반영하여 시도할 새로운 농사법의 결과가 벌써부터 궁금하다.


바실리의 귀여운 두 아들은 언제나 유쾌상쾌했다.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자라지만 지켜야 할 것은 지킬 줄 아는 아이들. 쭉 그렇게 커나가길.


그리고 음식을 부족하지 않게 챙겨준 바실리의 아내. 아직 어린 두 아이를 챙기기도 바쁜와중에 우리까지 챙기느라 참 고생이 많으셨다. 그녀가 바리바리 싸준 각종 베리잼으로 올 가을과 겨울은 아주 새콤달콤해질 것이다.


바질리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자신의 철학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추구해가는 멋진 젊은이.

만만찮은 현실이 그의 꿈과 가치를 꺾지 않기를.

지난 5일간 우리에게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먹여주고, 베풀어 주려고 참 애썼네.

그대와 그대의 사람들과 같이 보낸 시간 속에서 난 참 편안한 휴식과 내 삶의 방향에 대한 희미하지만 의미있는 실마리를 얻었네.


고맙네.


우리 멀지 않은 미래에 다시 만나세나.


다시 만나 뜨거운 반야에서 땀도 빼고,

두껍게 쌓인 눈 위에서 눈썰매도 타고,

바다같은 어머니의 강 볼가에서 얼음낚시도 하고,

그대가 새로 만들 업그레드된 화덕에서 그대가 맷돌로 빻은 밀, 호밀, 스펠트로 빵도 같이 구워 보고,

그대의 빵짓는 친구들과 빵짓는 이야기도 함께 나누어 보세.


고맙네 나의 친구

바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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