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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베이킹랩 이성규 Sep 03. 2020

빵집에도 수요 예측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

빵은 다른 음식과 다르다. 빵은 다른 음식과 달리 주문받기 전에 미리 만들어놓아야 한다. 다른 음식은 재료를 준비해 놓았다가 손님의 주문에 따라 최종 제품을 만드는 반면, 빵은 최종 제품을 만들어 놓고 손님 주문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다 보니 빵이 남기라도 하면 빵집이 받게 되는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빵 재고에는 재료비는 물론이고 전기세 등 생산비가 모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빵은 만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특히 사워도우 빵처럼 사전 반죽을 써서 빵을 구울라치면 빵 하나 나오는데 이틀의 시간이 족히 들어간다. 어쩌다 장사가 잘되어 빵이 모두 팔리더라도 빵을 제 때 구울 수 없으니 빵집 문을 일찍 닫을 수밖에 없다.


같은 양의 빵을 구워도 어떤 날엔 영업 마감시간 한참 전에 빵이 떨어지는가 하면 빵집 문을 닫을 때까지 진열대에 빵이 그대로 남아있는 날도 있다. 빵이 없어 찾아오신 손님을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못할 일이었다. 그리고 새벽부터 정성 들여 만든 빵이 진열대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보면 맘이 무척 상했다. 


어느 순간부터 빵 수요예측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요 예측을 할 수 있다면 남거나 모자라는 빵도 없을 테니. 하지만 후미진 골목에 위치한 빵집에 대한 정확한 수요예측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았다. 정기적으로 찾아주는 단골손님이 많다면 그나마 안정적인 수요가 있겠지만 단골손님이 많지 않은 신생 빵집에 수요는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었다.


빵집을 연 시간이 쌓여가면서 빵집 매출 패턴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 달간의 매출 기록을 분석해 보았다. 매출 분석 시스템을 갖춘 POS의 힘을 빌면 이런 분석을 쉽게 할 수 있다. 빵집 매출은 요일별로 차이가 있었다. 당시 빵집은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문을 열었다. 매출은 화요일과 토요일에 가장 높았고, 수요일과 목요일은 죽 쑤는 날이 많았다. 


매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날씨였다. 산책하기 좋은 날엔 아침 일찍부터 손님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비라도 내리면 빵집 문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빵집 앞 골목길을 걸어 다니는 사람조차 없는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에는 모든 기대를 내려놓아야 했다. 그런 날엔 좋은 음악과 재밌는 책을 벗 삼아 하루를 넘겼다. 빵집을 준비하던 내게 어떤 베이커가 했던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그는 다음날 빵 반죽을 준비하기 전에 꼭 일기예보를 본다고 했다. 다음날 날씨 예보에 따라 구울 빵 양을 조절한다는 말이었다. 빵 반죽을 준비할 시간이 되면 언제부턴가 나도 그처럼 일기예보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요일도 일기예보도 완벽한 수요예측 수단이 되진 못했다. 빵이 일찍 떨어지던가 텃밭으로 가던가 하는 날이 여전히 반복되었다. 다만, 텃밭으로 가는 빵의 양이 줄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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