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애에 눈을 뜨다
1.
무서운 노동자의 습관은 주말에도 여지없이 발동된다. 눈을 떠보니 6시 44분. 평일에 늘 6시 반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다 보니 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주말이 되어도 눈을 뜨면 늘 6시 반 안팎. (설마 나이 때문에 아침잠이 없어지고 있는 건 아니라고 믿고 싶 ㅋㅋㅋㅋ;;) 옆에서 아직 곤히 자고 있는 랄라 얼굴을 보며 빙긋 웃고, 이불을 곱게 덮어주고 조심조심 머리를 한번 쓰다듬는다. 랄라는 아기 때도 머리 쓰다듬어주는 걸 참 좋아했었는데 6살이 된 지금도 참 좋아해서 가끔 자고 있을 때 쓰다듬어주면 잠결인데도 씩 웃곤 한다 :)
2.
언젠가 남편과 <완벽한 타인>이라는 영화를 보던 중 아이가 있는 삶에 대해 등장인물들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왔었다. 아이가 없는 친구네 부부에게 다른 아이 있는 집 친구들이 아이가 있으면 무엇이 다른가 ( = 얼마나 좋은가?)를 설명하는 부분이었는데 극 중 염정아는 이런 말을 한다. "아이가 있으면 아이의 눈으로 보게 돼서 또 한 번의 삶을 살게 된다"라고. 평소 늘 남편에게 랄라가 생긴 후로 나는 내 나이도 한 살 두 살 먹어가는 것 같다고, 아이의 나이를 내가 다시 살아가는 기분이라는 말을 자주 했던 터, 이런 감정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구나 괜스레 뿌듯했다. (사실 이 영화는 커플이 함께 보면 안 된다는 제법 의심병 돋게 하는 영화였으나, 저런 대사만 기억에 남는 나는 -_-; 빼박 그냥 엄마인 건가;;)
3.
아이를 키우면서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지난 몇 년간 나는 왜 아이를 낳기로 했던가,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는 건가 질문에 질문을 계속했었다. (4살 이후로는 사실 편해져서 잊혔던 질문이기도) 아직도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진 못했고 아마 평생을 걸쳐 종종 머릿속에 등장할 것만 같지만 적어도 이 아이로 인해 나는 매일매일 성장하고 싶고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걸 보면, 편협한 사고를 가지고 있던 부족한 나를 좀 더 사회로 나아가도록 긍정의 기운을 주는 존재로 나에게 온 것이 아닐까 싶다. 아이를 낳기 전엔 몰랐던 수많은 사실들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눈에 들어오게 된 것은 물론,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은 누군가가 이렇게 애정을 쏟고 사랑을 담아 사회로 보낸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어 사람들을 대할 때 이 사람도 누군가에게 최고로 소중한 존재라는 당연한 사실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게 되었다 (덕분에 욱이 많이 줄었고? :)
4.
회사에서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답 없는 업무들을 겪은 후 집에 돌아오는 길, 나는 늘 신난다. 우리 귀여운 꼬맹이 만나서 안아줘야지. 저녁은 뭐해먹을까? 우리 랄라 오늘 즐거운 하루였을까?
아이가 없던 시절의 퇴근길은, 남아있는 업무와 그날 들은 열 받았던 소리들이 머릿속에 남아 몸은 회사를 나왔음에도 정신은 회사에 있는 경우가 참 많았다 (그래서 자꾸만 술이 늘었고?;;) 하지만 이제는 사무실을 등에 지는 순간, 회사 따위 깨끗이 잊고 (물론 그놈의 스마트폰 덕분에 틈틈이 메일 회신과 슬랙 답변이 야밤에도 이어지지만) 오로지 아이 얼굴만 머릿속에 떠오르기에 입가에 미소 한가득, 전에 없던 활기찬 발걸음으로 신나게 집을 향해 뛰어간다. 자주 뛰게 돼서 이제 예쁜 구두는 거들떠보지도 못하고 늘 운동화 차림의 바쁜 아줌마가 되었지만, 신발 정도는 쿨하게 넘겨버릴 수 있는 지금이 전보다 더 좋은 것 같다.
5.
얼마 전 랄라와 둘이 손을 잡고 걷던 중, 걸음을 멈춘 랄라가 밝게 웃는 얼굴로 나를 보며 말했다. "엄마, 나는 엄마가 정말 좋아요" 아 이런 뜬금없는 사랑 고백이라니. :) 나는 과연 이런 사랑을 받아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나보다 더한 사랑을 주고 있는 우리 랄라. 어떤 것도 정답은 없는 삶이지만 적어도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아이는 매일 나를 되돌아보고 성장하게 하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 :)
오늘도 많이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사랑타령 날려줘야지. 사랑해 랄라야!
+
무더위에 코알라가 되어도, 사랑한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