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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여사 Jul 01. 2020

20년 요가 연대기

돌고 돌아 이젠 부부요가도

1.

첫 시작은 대학시절이었다. 우연히 2학점짜리 교양수업을 찾다가, 당시 요가로 유명했던 원정혜 선생님의 요가 수업이 개설되어있는 걸 알게 되었고 예나 지금이나 남들 하는 것에 궁금증이 지대한 나는 고민 없이 바로 수강 신청. 원정혜 선생님 수업은 워낙에 유명해서 다른 강사분의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어머나. 이거 완전 내 스타일 수업이었던 것. 근육량 부족에 스피드라고는 찾으래야 찾을 수 없는 몸뚱이의 소유자는 드디어 나에게 어울리는 운동을 찾았구나 얼쑤 반가워했지만 한창 끓어오르는 열정을 술로 잠재우던 시기였던 지라, 그렇게 요가는 2학점 교양 수업으로 마무리되고 말았었다.


2.

그리고 30대가 되었다. 여전히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이 좋다며 밤이면 밤마다 술자리의 나날을 보내다 보니 몸이 티가 나게 삵은 거라, ;;; 그래 나도 이제 앞자리가 바뀌었으니 운동이라도 해야겠다 생각만 했지만 늘 바빴고. 결국 회사에서 자기 계발비 지원이 운동 부분으로만 된다는 걸 알게 되어 울며 겨자 먹기로 헬스장을 등록했다. 그리고 역시나 1번 방문하여 락커룸 위치만 확인하고 사우나 한번 하고 그 후로 안녕 ㅋㅋㅋㅋㅋㅋ. 흠. 역시 난 근력 운동과 맞지 않지. 깨달음을 얻고는 드디어 요가 수업 등록. 대학교 4학년 때 들었으니 그래도 꽤 오랜만에 듣는 수업이었는데도 쭈욱 늘리고 펼치고 달랑달랑 동작들에 비로소 나는 피가 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 1,2시까지 술 마시고 6시에 일어나 요가를 갈 정도로 사랑하는 운동이 되었더란다.


3.

그렇게 30대는 회사 자기 계발비 덕분에 주 2회 또는 주 3회 분당 일대를 돌아다니며 새벽 혹은 점심, 저녁 가리지 않고 요가를 했다. 물론 여전히 혈기가 왕성하고 약속이 많았던 나는 주로 주 1회 출석에 성공하고는 자기만족 최대치에 희희낙락 기쁨을 누리곤 했고 그러는 사이 결혼과 임신, 출산을 겪으며 급격히 노화와 조인하고 말았다.


4.

안 되겠다 싶었다. 육아에 회사에 운동할 시간이 없긴 해도 이러다 죽을지도 몰라 생각이 든 건 바로 작년 건강검진 사건. 고3 때부터 위염을 달고 살며 겔포스의 세상에 발을 들였던 터, 위 내시경을 하면 늘 위축성 위염이니 신경성 위염이니 멀쩡한 적이 없었는데 작년엔 마취도 안 깬 나를 깨워 의사가 잠깐 보자고 하는 게다. 비틀비틀 비몽사몽 의사 선생님 자리로 갔더니 PC 모니터 화면을 가리키며 "저기 안에 빨갛고 울퉁불퉁한 거 보이시죠?" 말을 꺼내신다. 내 위는 늘 먼가 안 좋았기에 응응 그런가요 귓등으로 듣고 있는데 위가 장처럼 울퉁불퉁해지는 장상피 회생 기미가 보인다며 이 상태에서 관리를 안 하면 위암이 될 수 있고 어쩌고저쩌고 조직검사가 필요할 것 같다는 말씀에, 순식간에 마취가 깨며 '위암'과 '조직검사'만 머리에 남아 충격 가득한 얼굴로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얼굴로 병원을 나섰던 순간이다.


5.

다행히 조직검사 결과는 나쁘지 않았지만 (무시무시하게 조직검사 결과가 크리스마스 전날 나왔;) 그날 이후 나는 하루에 3잔씩 마시던 커피도 끊고 아메리카노는 지금까지도 입에 대지 않고 살고 있다. (우유가 든 커피는 여름이 지나면서 하루에 1잔 정도는 마시고 있다) 그리고 시작했던 것이 바로 요가다. 이제 와서 내가 새로운 운동과 사랑에 빠지기는 힘들 테고 (움직이는 것 몹시 싫어합니다 -_-) 그나마 좋아했던 운동이니, 점심을 가볍게 먹으면서라고 하자 싶어 회사 근처 요가학원에 점심시간 주 3회로 등록했다. 회사 사람들은 아이고 밥을 먹어야지 무슨 운동이냐부터, 그거 몇 번이나 가겠냐고 고개를 저었지만 11월이 끝나가는 지금도 나는 여전히 요가를 다니고 있다. 그뿐인가 늘 목과 어깨를 아파하는 남편까지 꼬드겨서 나는 역삼에서 남편은 잠실에서 각각 젠요가 회원으로 ㅋㅋㅋㅋㅋ요가 수련 중이다.


6.

이제 웬만한 동작은 힘들다기보다는 개운한 느낌이고, 요가를 하고 온 날은 내가 봐도 평소와 달리 얼굴에 혈기가 가득하여 늘 이런 얼굴빛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얼마 전 만난 지인이나 친구들이 아니 네가 운동을 한다고? 여전히 못 믿겠다는 얼굴이지만. 50분가량의 수련을 마치고 따끈하게 달궈진 몸을 요가 매트에 뉘인 후 호흡과 명상으로 정리하는 순간은 종종 하루 중 가장 큰 행복이되기도 하는 감사한 운동이다. 여러분 요가 좋아요. 100m를 20초가 돼야 겨우 돌파하고 팔 굽혀 펴기는 1개 하면 팔이 놀라 기절하는 저 같은 몸뚱이도 좋아하는 요가. 너무 이르지만 새해 건강 기원 운동으로 요가 함께 해보십시다 ㅋㅋㅋㅋㅋㅋ 뭐 요가 원장님 같은 마무리가 되어버렸지만, 좋은 건 함께 해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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