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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여사 Jan 30. 2019

엄마 돈 모아서 아이스크림 사주세요

아이에게 결핍, 어떻게 알려주나요

1.

지난 주말 아이 친구네와 딸기밭 체험과 점심 후 카페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헤어질 무렵, 친구와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랄라에게 한마디 건넸다. "랄라야, 랄라 스타킹 필요하니까 스타킹 사러 가자" 친구와 더 오래 놀지 못하는 게 아쉽긴 해도 그간 늘 사달라고 외쳐댔던 스타킹을 사준다는 엄마의 말에 이내 즐거워진 랄라. 쇼핑몰로 향하는 차 안에서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헤어졌어? 친구는 뭐 하고 있을까?  오늘 정말 즐거웠어'등의 쉼 없는 재잘거림이 이어졌다.


2.

쇼핑몰은 늘 그렇듯 만원이었다. 겨울에는 추워서 많고, 여름에는 더워서 많고, 봄가을에도 없진 않고. 오픈 시절, 대기업만 돈 버는 이런 시스템을 이용할 수 없다며 안 가겠다 외쳐댔던 그 아줌마는 어디 가고 집에만 있으면 답답해서 한번, 날이 추우면  갈 곳이 없어 한번, 참새 방앗간처럼 들락거리다 보니 이제  스타필드 지리는 우리보다 랄라가 더 잘 아는 것만 같았다. 주차를 하자마자 좋아하는 브랜드(라고 할 것까지 없는 가격대지만)로 가자 외쳐댔고, 쇼핑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지친 기색이 역력한 채 '왜 나는 여기에 오자고 한 것일까' 후회 가득한 발걸음을 옮겼다.


3.

머리가 굵어지기 시작한 게다가 취향 명확한 6세 여자아이와의 쇼핑은 취향이 다른 친구와의 쇼핑보다 더 고되다. 엄마인 내 눈에는 작아진 스타킹이나 시린 발을 감싸줄 부츠 같은 아이템만 눈에 들어오는데, 랄라는 사기로 했던 스타킹은 안중에도 없다. 핑크 드레스 근처에서 얼쩡거리더니 이내 요즘 한창 빠져있는 마이 리틀 포니 캐릭터들이 프린트되어 있는 굳이 1+1 이름을 붙였으나 그냥 세트로 팔 뿐인 티셔츠를 사겠다며 아빠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랄라야 그 티셔츠 비슷한 거 이미 집에 있잖아. 오늘은 스타킹 사기로 했으니까 스타킹 고르자" 평소처럼 단호한 거부의 한마디를 날렸건만 랄라는 '이번 한 번만요' 애교를 날리고 옆에 서 있던 남편은 이미 넘어가버린 얼굴로 당장이라도 결제 데스크로 달려갈 태세다. 옷 욕심 많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1인이기에 마음에 드는 아이템을 데려가고 싶은 그 마음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이미 그 시리즈로 똑같이 나왔던 세트 티셔츠가 캐릭터만 다르게 집에 있는 데다 저 만화 애정이 식으면 바로 외면할 것이 분명한데 이렇게 아쉬운 소비를 또 허해야 하는가 고민에 빠지고 만다.


4.

결국 이미 넘어가버린 남편과 랄라의 협공으로 나는 항복했다. "티셔츠 샀으니까 스타킹은 못 사줘"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나의 마지막 한마디는 그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우울한 마음 예쁜 인테리어 아이템으로 달래 볼까 싶어 옆의 코너로 옮겼더니 랄라가 좋아하는 핑크 컬러에 화려한 꽃 모양 쿠션이 눈에 띈다. 순간 랄라와 서로 눈이 딱 마주쳤다. 녀석, 너도 이거 맘에 드는구나? 하지만 엄마도 마음에 들었다는 것을 들키는 순간, 쇼핑 개미지옥으로 초고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을 알기에 마음을 다잡고 있는데 랄라가 한마디 한다. "엄마 이 쿠션 정말 예뻐요. 이것도 가지고 싶다" 씩 웃으며 이미 티셔츠 샀으니 안된다고 이야기하니 이내 서운한 얼굴이 되어버린다. 그 귀여운 비죽임에 홀려 또 지갑을 열고픈 마음 정말 간절했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랄라야 엄마 아빠가 월급 받는 것 중에, 요만큼은 밥 먹는데 쓰고 요만큼은 필요한 물건 사는데 쓰고 요만큼은 저축하는데 써야 돼. 근데 랄라가 옷이랑 예쁜걸 다 사버리면 우리 밥 못 먹게 되는데 어쩌지?" 순간 정말 심각해진 우리 6세 아가씨. '그럼 이건 다음에 엄마 월급 받으면 사줘' 라고 쿨하게 발길을 돌리길래 피식 웃고 말았는데....


5.

2층으로 올라가 구경을 하던 중 랄라가 한마디 한다. "엄마 다음에 돈 모아서 아이스크림 하나 사주세요" 응? 아이스크림을 왜 돈 모아서 사야 하지 싶어 갸우뚱하며 랄라를 내려다보는 순간 떠올랐다. 아 오늘 이미 물건 하나를 본인이 사버려서 돈이 없다고 생각하는구나. 순간 너무 귀여워서 "아이고 이 귀여운 녀석" 웃음이 터졌다. 웃고 있는 나를 보며 랄라와 남편은 왜 저러나 하는 표정이었지만, 가지고 싶은 걸 갖고 싶다고 표현하되 지금 당장이 아닌 조금이라도 지연시킨 후 갖겠다고 말했다는 것을 보며 '아이들은 정말 잘 가르쳐야 하는구나' 빠른 적응 능력(?)에 감탄했다.


6.

삶의 질이 높아지고 값싸고 좋은 물건을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게 되면서 장점도 많아졌지만 아쉬운 점도 많다. 내가 지금 이걸 사줘야만 우리 아이는 더 행복해지는 걸까? 가능하면 '남들만큼' 갖고 '남들만큼' 경험하게 하고픈 마음이 크지만 과연 그 '남들만큼'이 적당한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몇 개 안 되는 장난감으로 다양한 역할놀이를 하고 그림책을 외울 정도로 읽는 반복과 기다림의 시간을 당연하게 보냈지만, 그건 주위도 모두 비슷한 삶을 살았을 때의 이야기다. 사실 나는 우리 집이 굉장히 잘 사는 줄 알고 유년기를 보냈는데 (학교에 몇 안 되는 차가 있는 집이었고, 해달라는 건 대부분 다 해주셨기에) 그게 지방이었기에 상대적으로 풍족하게 느꼈던 것 뿐이었다. 대학시절 서울에 올라와 씀씀이의 수준이 달라 문화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아이를 낳아보니 정말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이라는 말이 너무 와 닿아서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마음과  소비의 시대에 끝없는 소비가 과연 만족감을 주기는 할까 회의적인 마음 사이에서 늘 갈팡질팡하곤 한다. 고르고 골라 정말 원하는 하나만 사게 하고, 그 외의 물건에 대해선 조금이라도 지연 능력을 키워주려는 육아 쇼핑 철학(?)이 과연 어떻게 변모하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우선은 생각 없이 자꾸 쇼핑몰로 아이를 이끄는 이 엄마의 행동습관부터 고치는 걸로. 이렇게 또 나는 인터넷 쇼핑 단골로 거듭나게 되나 보다.


+


랄라는 애교가 늘고

엄마는 꼼수가 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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