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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연 Sep 09. 2021

05. 북한산! 북한산!

산을 좋아하지만, 등산을 싫어하는 이유

나는 산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내가 등산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집 밖을 나와 5분만 걸어가면 어디에나 북한산 둘레길과 등산로가 있는 이곳에 이사오고 2년이 흐르기까지 단 한 번도 등산을 하지 않았다고 하면 사람들은 놀란다.


 대학 시절 여름 방학 때, 북경으로 중국어 단기 연수에 갔다가 연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만리장성을 오른 적이 있다.  깡마른 몸에 그야말로 저질 체력인 나는 일행보다 뒤처지면 말도 안 통하는 중국에서 국제 미아가 될까 봐,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아도 악착 같이 그 뒤를 따라 끝도 없는 계단을 올라갔다. 하지만, 계단을 거의 다 오를 때쯤에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지면서 순간 숨이 쉬어지지 않는 순간을 경험했다. 그때, 처음으로 등산하다 호흡 곤란으로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회사 신입 시절 등산 동아리에 강제 가입되어, 주말에 까마득한 선배들과 등산을 다녔다. 기억에 남는 등산은 '소백산' 등산. 3시간 동안 올라가고 올라가도 정상이 보이지 않았다.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어요?'라고 물어보면 '응! 거의 다 왔어!' 하나 같이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다시 30분이 넘게 걸어도 정상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속기를 서너 번... 결국 나는 정상을 코 앞에 두고, 정상을 보기를 포기했다. 진즉에 포기했어야 했다. 사실 나는 정상에 올라도 정상에 오른 상쾌함과 자연경관이 주는 아름다움에 그다지 감흥이 없다. '아, 멋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게 다다. 후들거리는 다리 때문에 그 멋진 풍광도 그저 희미하게 보일 뿐, 올라온 만큼 다시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마저 다시 혼미해진다. 그리고 다시는 등산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그 가파른 산길을 학이 산을 내려오듯이 풀린 다리를 정신력으로 붙들며, 비틀비틀 내려온다.


내가 등산을 싫어하는 이유는 또 있다. 등산을 할 때, 거칠어진 호흡 때문에 한정 없이 커지는 콧구멍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나름 요조숙녀 같은 참한 이미지인데, 이 이미지를 지키고자 콧구멍이 커지는 것을 감추려 입으로 숨을 쉬자니 입이 마른다. 마르는 입 때문에 물을 마시면, 산 중턱에 화장실이 없어 괄약근을 더욱 조이고 등산해야 한다. 낭패도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나는 산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은평 뉴타운에서 제각말 방향으로 진관동 한옥마을로 들어오려면 중간에 '구름 정원'이라고 불리는 생태 다리 하나를 지나야 한다. 북한산과 이말산을 이어주는 야생 동물들을 위한 생태 통로이다. 나는  통로를 지날 때마다 보이는 북한산 자락을 사랑한다. 차를 타고 구름다리를 지나는  찰나의 시간이 마치 시간이 멈춘  느껴진다. 반원 모양의 구름다리 아래로  등성이부터 꼭대기까지 북한산의 자태가 점점 드러나는 모습이 마치 내가 줌인을 하는 카메라의 렌즈에 들어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생각은 나만이 갖는  아닌가 보다. 어느  이곳을 지나는데,  나이 또래의  여자가 하는 말을 듣고, 공감하지 않을  없었다.  공간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나오는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같다는 말이었다. 그야말로 생태다리를 기점으로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듯 하다. 나는 이곳을 단독주택 단지라기 보다 감히 ‘전원주택’ 단지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집 2층 거실에서는 커다란 통창을 통해 설거지를 하면서,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 또는 커피를 마시면서, 언제든지 북한산 자락을 바라볼 수 있다. 아파트에서는 느끼기 힘들었던,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가는 것을 이 산을 통해 고스란히 느낀다. 요즘 같은 날에는 산이 얼마나 뚜렷하게 보이느냐에 따라 미세먼지 농도 측정기가 없이도 대략 그날의 공기질을 알 수가 있다.



북한산은 돌산이다. 나는 나무가 많은 산보다는 돌 산을 좋아한다. 돌 산에서는 왠지 모르게 나무가 많고 푸르른 산 보다 영험하고 신령한 기운이 느껴진다. 특히 비가 오는 날에 구름이 산등성이를 감싸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저곳엔 분명 산신령님이 살고 계실 거라는 생각이 든다.  거실 식탁에 앉아 멍하니 이 돌 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영험하고 신령한 기운이 조금씩 나에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 같만 같다. 이 기운이 나에게 닿는 날에는 산이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걸어온다.


 '내가 여기 그 자리에 항상 변함없이 버티고 있을 테니, 다 걱정 말라고...'


 아, 시내 중심이나 강남에 아파트를 샀어야 큰돈을 버는 건데, 나는 산을 좋아해서 돈을 벌긴 글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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