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운동강사, 그 시작은 엄마였다
나는 체육과에서 수영을 전공했다.
운동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건 아니었지만, 그 전공 덕분에 졸업 후 스포츠센터에 취직하게 되었다.
몸을 움직이는 일은 익숙했지만, 매일이 치열하고 빠듯한 그곳에서
‘내가 이 일을 평생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마음 한구석에서 자주 고개를 들곤 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름 대신 ‘엄마’라는 호칭으로만 불리며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갔다.
내가 사라지고, 내 시간도, 내 목소리도 점점 흐려졌다.
그런 나를 가만히 지켜보던 친정엄마가 어느 날 말했다.
“애들은 내가 볼 테니, 너는 나가서 일 좀 해라.”
그 말에 이끌려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그러던 중 문득, 대학 시절 잠깐 배웠던 ‘피부관리’가 떠올랐고
그 희미한 기억 하나를 붙잡아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그렇게 시작한 피부관리사의 길.
손끝으로 사람의 피부를 어루만지며 함께 이야기하고, 웃고, 위로받는 시간들이
어느덧 30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삶이 다시 한번 흔들렸다.
알코올 의존으로 가족에게 늘 걱정거리였던 오빠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고,
그 충격은 엄마의 기억을 차례차례 지워갔다.
처음엔 가끔 헷갈리는 정도였지만, 어느 날은 내 이름조차 떠올리지 못하셨다.
엄마의 치매를 처음 마주하던 그 순간, 가슴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처음으로 ‘노인복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어르신들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
그 질문을 품고 길을 찾던 중, ‘백세운동강사’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누군가가 추천해 준 것도, 권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먼저, 자발적으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지 않은 채용과정이었지만 피부숍이라는 작은 공간에 갇혀 지내던 나는
어느새 넓은 강당, 환한 햇살 아래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숨 쉬고 있었다.
그들의 굽은 등을 쓸어주며, 주름진 손을 잡고 함께 노래할 때마다
나 역시 다시 피어남을 느꼈다.
피부를 다듬던 손이 이제는 누군가의 하루를 어루만지는 손이 되었다.
엄마의 잃어버린 기억에서 시작된 나의 질문은 결국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