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하루에 햇살 하나 심는 일

실버강사라는 이름으로 다시 피어난 나의 이야기

by 다온홍쌤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나는 진로를 바꾸었다.
부모님은 내가 약사가 되기를 원하셨지만,
나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보며
스포츠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그 무렵의 나는 학교 성적도 상위권이었고,
아마 마음만 먹었다면 부모님의 뜻을 따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왠지 그때는,
부모님이 원하시는 길을 걷고 싶지 않았다.
나는 '누구의 딸'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나'로 살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체육학과에 진학했다.
기자가 되겠다는 꿈은 대학 입학과 함께 저 멀리 밀려났고,
대신 사회체육을 공부하며
아이들과 뛰노는 유아체육 강사가 되었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전공은 아이들과 함께였고,
두 번째 전공은… 시간이 흘러
노년을 살아가는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실버강사’가 되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단순히 생각했다.
“어르신들의 건강한 노후를 위해 운동을 가르치면 되겠지.”
그래서 체조를 가르치고,
근력을 기르고,
통증을 완화시키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현장은, 내 예상과 달랐다.
요양원에서는 거동이 불편하거나
인지기능이 저하된 어르신들이 많았고,
주간보호센터나 복지관, 경로당 등
어르신들의 신체 상태와 환경은 제각기 달랐다.
누군가는 손가락만 움직일 수 있었고,
누군가는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때 깨달았다.
‘이 일이 단순한 운동 강사가 아니구나.
어르신 한 분, 한 분의 삶을 이해하고,
그 삶에 맞춰 숨을 고르는 일이구나.’

수업을 하며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는
“선생님, 오늘도 와줘서 고마워요.”
그 한 마디가 나를 버티게 했다.
누군가의 하루가,
내가 온 덕분에 조금이라도 따뜻해졌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어느 날은, 음악을 틀어드렸더니
30년 전 라디오에서 들은 노래라고 하시며
눈시울을 붉히신 어르신이 계셨다.
그날 이후로 나는 음악을 고를 때도
그분의 청춘을 상상하며 선택하게 되었다.
실버강사란, 결국
그분들의 ‘추억’에 조심히 발을 들이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말한다.
실버강사란,
한 사람의 노후에 따뜻한 봄바람 한 줄기 되어주는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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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강사를 꿈꾸는 당신에게]

실버강사는 가르치는 직업이기 전에,
사람을 향한 애정의 실천입니다.

요즘 실버강사를 준비하는 많은 분들을 만나면
자격증을 따야 하나요, 어떤 수업을 해야 하나요,
이런 질문을 많이 하십니다.

그럴 때 저는 말합니다.
“먼저, 사람을 좋아하세요.
어르신의 느린 말과 느린 걸음을 존중할 줄 안다면,
이미 절반은 시작된 겁니다.”

자격증만 있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매 수업마다 나의 말투를 바꾸고,
에너지를 조절하고,
어르신들의 눈빛에 귀 기울이며
그날의 컨디션에 맞춰 살아 있는 수업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오늘 내가 건넨 인사 한 마디에
어르신이 눈을 맞추고 미소를 지으셨다면
그건 누군가의 하루에
햇살 하나 심은 일입니다.

이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냐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실버강사는,
평생을 살아온 누군가의 마지막 계절을
따뜻하게 덮어주는 사람입니다.

이 길을 망설이지 마세요.
조금 느리지만,
참으로 깊은 길입니다.
사람의 온도를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진짜 사람의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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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오늘도 어르신의 손을 잡고,
그 손끝에 봄 한 송이 피워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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