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가족에 입성한 신혼의 나날
신혼살림을 위해 전라도 장성의 군인아파트로 이사하던 날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창밖에는 눈이 소복이 내리고 있었다.
하얀 세상 속에서 낯선 곳으로 가는 길은
왠지 모를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인 풍경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경상도 분들이셨다.
그래서 전라도라는 땅은 내게 생소하고, 조금은 멀게 느껴졌다.
‘말투도 다르고, 사람들도 낯설 텐데 잘 지낼 수 있을까.’
트럭 짐칸 위에 실린 신혼살림을 보며
나는 그저 조용히 마음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눈발이 점점 굵어지자,
새로운 출발이 마치 하얀 눈 속에 덮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눈은 두려움과 동시에 내 마음의 흙먼지를 덮어주는 듯도 했다.
‘괜찮을 거야. 다 잘될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나는 생전 처음 가보는 전라도 장성으로 들어섰다.
다행히도 우리가 배정받은 아파트는
그나마 새로 지어진 깨끗한 집이었다.
새 아파트 특유의 냄새가 나던 그 공간에서
나는 ‘여기가 내 인생의 첫 보금자리구나’ 싶어
잠시 눈물이 핑 돌았다.
며칠 후, 앞집 아주머니가 초인종을 눌렀다.
“출신이 어디예요?”
나는 무슨 뜻인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다.
남편이 학사장교고 기갑이라는 병과에 속한다는 것,
그리고 계급이 중위라는 것밖에 몰랐던 나는
그저 “기갑인데요.”라고 대답했다.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물었다.
“육사, 학군, 학사 중에요?”
“학사요.”
그제야 아주머니는 “아~ 알겠다.” 하시며 돌아가셨다.
그 말의 의미를 그때는 전혀 몰랐다.
남편은 대위 진급을 앞두고 상무대 교육을 받고 있었다.
운 좋게 교육이 끝난 뒤 상무대 보직을 받게 되었고,
나도 자연스레 군인아파트라는 작은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그곳의 가족모임은 마치 작은 부대 같았다.
남편의 계급이 곧 나의 계급이었고,
‘중위 가족’이라는 이유로 나는 언제나 막내였다.
“재활용 정리하러 내려오세요.”
“물청소 날짜 잊지 마세요.”
“행사 준비는 중위 가족이 맡기로 했어요.”
명령처럼 들리는 말들이 일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대위로 진급했다.
나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들떴다.
‘이제 나도 대위 가족이다!’ 하는 자부심이 피어올랐다.
그런데 평소처럼 선임 가족 한 분이 오셔서 말씀하셨다.
“다음 주 분리수거 잊지 말고 나와요.”
그 순간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저도 이제 대위 가족인데요.”
그분은 눈이 동그래지며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웃으며 “그래요, 축하해요.” 하고 돌아가셨다.
그때는 몰랐다.
갓 대위가 된 남편과 ‘대위 말년’ 가족의 사이에는
무려 7년의 차이가 있다는 걸.
그날 저녁, 퇴근한 남편에게 자랑하듯 이야기하자
남편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분은 대위 말년이야. 너… 지금 큰일 날 뻔했어.”
그제야 나는 진짜 계급사회의 존재를 깨달았다.
신혼의 달콤함 속에 스며든 작은 진통,
그것은 군인가족으로서의 첫 세례이자
나의 세상 공부의 시작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눈, 그때의 두려움, 그때의 서툰 말 한마디까지도
모두 내 삶을 단단하게 만들어준 순간들이었다.
기다림과 서열 속에서도 사랑을 배우고,
낯선 땅에서도 뿌리내리는 법을 배운 시간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