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현지처가 되었다
2005년.
나는 매일을 전력질주하고 있었다.
대학원 수업을 들으며 피부관리실을 확장했고,
그해 봄, 큰딸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일과 육아, 공부가 쉴 틈 없이 겹쳐지는 날들이었지만
그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살아내고 있었다.
때로는 피로에 지쳐,
혼자 찜질방에 가서 조용히 땀을 흘리며
몸과 마음을 데우고 오곤 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황토방 한 귀퉁이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귀에 익숙한 단어들이 들려왔다.
"거기 피부관리실 알지? 거기 원장이 일본인 현지처래."
"그래서 샵도 차려주고, 아파트도 사주고, 애들 돌보는 할머니도 붙여줬대."
"남편이랑 같이 안 사는 거 보니까 거의 확실하대."
숨이 턱 막혔다.
그 말속의 ‘그 사람’은 바로 나였다.
나는 일본인 현지처도 아니고,
내 샵은 내가 두 발로 뛰어 만든 공간이었고,
아이를 돌보던 그 ‘할머니’는 다름 아닌 내 친정엄마였다.
그리고 남편은 주말부부로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는 직업군인이었다.
그들의 말은
사실이 아닌 이야기 위에
부러움과 억측,
그리고 조금의 악의가 덧칠된
낯선 내 모습이었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그 무리의 앞에 섰다.
“그 원장님… 잘 아세요?”
가장 열심히 말하던 한 분이 대답했다.
“당연하죠~ 우리 애랑 같은 반이에요. 자주 봐요.”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그 원장님, 접니다.”
그 말이 끝나자
방 안의 온도가 바뀌는 것 같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그들이
하나둘 수건을 챙겨 떠났고,
가장 앞장서 말하던 그 엄마는
아무 해명도 없이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조용히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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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질방을 나서며 나는 생각했다.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남의 시선을 신경 써왔는지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삶이 얼마나 치열한지,
내 아이와 가족을 위해 내가 얼마나 버티며 살아내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 채,
사람들은 너무 쉽게 판단하고, 너무 쉽게 단정한다.
나는 그날 이후로 결심했다.
누구의 시선 속 '나'보다
내가 나를 아는 방식으로 살겠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그 사람’은
사실 나일 수도 있고, 당신일 수도 있다.
그러니 함부로 말하지 않기를.
그리고
나도,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사람에게만
나를 보여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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