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그냥 일 열심히 하셔도 되겠어요

작은 쪽지, 큰 위로

by 다온홍쌤

큰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내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흔들렸다. 교실 문 앞까지 데려다주고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샵 문을 열어야 하는 시간인데도, 내가 없는 빈자리를 아이가 먼저 알아차리면 어쩌나—걱정이 꼬리를 물었다. 다행히 친정엄마가 곁에 있었다. 숙제를 봐주고 간식을 챙기고, 학교 소식지를 나보다 먼저 읽어주던 분. 그럼에도 운동회와 학예회, 엄마들 모임에 ‘결석’ 도장을 찍는 건 늘 내 몫이었다.

학기 초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 날, 나는 메모장에 질문을 가득 적어 갔다.
“친구들은 잘 사귀나요?”
“수업 시간에 집중은 하나요?”
“혹시 학교에서 외로워하진 않나요?”

선생님은 내 긴장한 표정을 살피더니, 미소 지으며 말했다.
“희지는 똑똑하고 리더십도 있어서 자기 할 일도 야무지게 잘하고 있어요. 어머니는 그냥 일 열심히 하셔도 되겠어요.”

그 한마디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고맙고, 미안하고, 안도하는 마음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아이가 제자리에서 스스로 빛나고 있다는 사실이 불안의 끝에 조용한 마침표를 찍어주었다.

그렇다고 시간이 느슨해진 건 아니었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피부샵은 매일이 전쟁이었고, 밤에는 대학원 과제와 논문을 붙잡고 씨름했다. 시술 가운에서 교재로, 교재에서 다시 가운으로—하루에도 몇 번씩 역할을 갈아입었다. 놓치지 않으려 애쓰다가도 결국 몇 가지를 놓치고 마는 날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의 웃음이 나를 일으켰다. 현관문을 열면 로션 냄새 대신 아이들 샴푸 향이 먼저 달려와 품에 안겼다.
“엄마, 오늘 나 이런 일 있었어!”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쏟아지는 이야기 속에서야 비로소 내 하루가 완성되곤 했다.


작은 쪽지, 큰 위로

어느 날 늦게 퇴근해 돌아오니, 큰딸 책상 위에 알림장이 펼쳐져 있었다. ‘꼭 준비해야 할 준비물’에 형광펜이 반짝였고, 그 옆에 작은 포스트잇.
“엄마, 내일 꼭 준비해야 될 준비물이야. 부탁해.”
짧은 문장, 또박또박한 글씨. 그 순간 왈칵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야무진 우리 딸이 엄마의 바쁜 하루를 알아주듯, 나를 탓하지 않고 필요한 것을 정확히 알려주는 그 마음. 그날의 감동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쪽지는 ‘엄마, 우린 괜찮아’라는, 어린 딸의 든든한 안부였다.

돌아보면, 두 딸은 바쁜 엄마의 틈 사이로도 환하게 자라났다. 엄마의 빈칸을 원망하기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단단해지는 법을 배웠다. 그 시간을 가능하게 해준 건, 엄마의 자리를 기꺼이 채워준 친정엄마였고, 때때로 흔들리는 나를 붙잡아준 ‘좋은 어른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황을 탓하지 않고 자기 속도로 꽃을 피워준 우리 딸들이었다.

“어머니는 그냥 일 열심히 하셔도 되겠어요.”
그날의 문장은 일에 대한 허가가 아니라, ‘엄마로서의 나’를 믿어도 된다는 작은 면허였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사랑했고, 그 사랑은 아이들의 하루에 잔잔히 스며들었다. 이제는 안다. 일하는 엄마의 미안함도 결국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는 것을.

그래서일까. 지금 큰딸은 화학생명공학을 전공해 화장품회사 연구원이 되었고, 작은딸은 아이들 앞에 서는 중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빛으로 일하고 가르치며, 언젠가 내게 건넸던 그 한 장의 포스트잇처럼 또 다른 누군가의 하루에 작고 분명한 위로가 되어 주고 있다.

오늘도 나는 내 자리에서 묵묵히 손을 움직이고, 퇴근길에는 마음을 활짝 연다. 늘 조금 부족하고, 그래서 더 배우며 자라는 엄마로. 우리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나의 자리에서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자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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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