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말부부로 살기로 했다

아이의 학교, 우리의 갈림길

by 다온홍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이었다. 남편은 전곡 부대에서 중대장을 하고 있었고, 나는 의정부에서 샵을 운영하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전곡의 학교는 분교였다. 작은 교실, 작은 운동장, 그리고 대부분이 군인 자녀들. 나는 그곳에 아이를 맡기고 싶지 않았다. 아이의 세상이 그렇게 좁아지기를 원치 않았다.

나는 엄마가 살고 계신 의정부 아파트로 전입신고를 했다. 그곳에는 더 많은 친구와 조금은 넓은 세상, 그리고 내 일터가 있었다. 아이가 엄마 곁에서, 또 나의 눈길 안에서 자라기를 바랐다. 그것이 내 마음의 결론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공부 잘하면 뭐하냐. 가정교육이나 잘 시켜라.”
그의 목소리는 늘 단호했고, 그의 신념은 흙냄새와 함께 있었다. 아이는 뛰어놀아야 한다, 시골에서 뛰어놀며 자라야 건강하다 — 그게 그의 확신이었다.

나는 그 말이 너무 섭섭했다. 내가 아이에게 더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마음조차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나는 단순히 K엄마의 욕심으로 아이를 학군에 밀어넣으려는 게 아니었다. 내가 가진 삶의 경험, 내가 매일 피부를 어루만지며 느껴온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깨달은 건, 결국 아이도 더 넓은 사람 사이에서 배우며 자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밤마다 부딪혔다. 설득은 없었고, 이해도 없었다. 언성이 오르고 눈물이 앞섰고, 어떤 날은 등만 돌린 채 아침을 맞았다. 그렇게 버티다가, 결국 우리는 결론을 내렸다.
주말부부.

주말부부라는 말은 짧지만,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공허가 숨어 있는지 그때는 몰랐다. 평일의 나는 혼자 아이들을 챙기고, 혼자 저녁상을 차리고, 혼자 잠드는 사람이 되었다. 남편은 주말이면 먼 길을 달려왔지만, 그 며칠의 시간은 너무 짧아 늘 허무하게 흩어졌다. 아이들은 아빠를 기다렸지만, 점점 아빠보다 엄마에게 더 기댔다. 우리는 같은 집을 지켰지만, 같은 시간을 살지는 못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싫어한 건 단순히 분교가 아니었다. 군인가족이라는 틀 속에 갇혀 사는 삶 자체가 나와 맞지 않았던 것이다. 언제든 이동해야 하는 불안, 내 삶의 선택권이 사라지는 듯한 답답함, 같은 규율과 같은 얼굴 속에서만 살아야 한다는 폐쇄감… 그것이 나를 점점 지치게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우리 사이에는 금이 가 있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고 살았지만, 그 금은 서서히 번져서 결국 서로의 마음을 멀리 밀어내는 틈이 되었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이라는 작은 선택이었을 뿐인데, 그 선택이 우리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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