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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유 Apr 13. 2021

봄날의 곰처럼 게을러지고 싶어

이치다 노리코 <어른이 되어 그만둔 것>


봄햇살은 따스하고, 창밖으로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어온다. 점심을 먹으면 어김없이 졸음이 몰려온다. 상실의 시대에 나오는 '봄날의 곰'처럼 따뜻한 봄볕이 비추는 들판에서 뒹굴거리고만 싶다. 


한없이 게을러지고 싶은 이 계절. 애쓰며 살지 않아도 된다는 자기 합리화가 필요했다. 그때 독서모임에서 운명 같은 책을 만났다. 바로 이치다 노리코의 <어린이 되어 그만둔 것>이었다. 이 책은 내일 할 일을 오늘 미리 해왔던 나에게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뤄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다. 




너무 아름다워 잔인한 4월,

더하기보다 덜하기를 택하다


4월은 어쩌면 가장 게을러지고 싶고 일하기 싫은 달인지도 모른다. T.S 엘리엇의 시에 나오는 <잔인한 4월>이라는 말도, 너무 아름다워서 잔인한 4월이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밖에는 벚꽃이 흩날리고, 연두연두한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이런 날씨에 너무 열심히 사는 건 4월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치다 노리코의 <어른이 되어 그만둔 것>은 4월에 가장 읽기 좋은 책이다. 이 책은 새벽에 일어나 하루 24시간을 알차게 쓰고, 무조건 버티고 더 열심히 살라고 채찍질하는 자기 계발서들과 너무나 다르다. 


쓸데없는 완벽주의를 그만두고, 무리하는 것을 그만두고, 넘치게 준비하는 것과 피곤한 겉치레도 그만두라고 말한다. 책을 읽고 나서 어느새 그만둘 것을 찾고 할 일을 자꾸 미루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하지만 그런들 어떤가.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봄이지 않은가.


최선 다하기를 그만두다


예전에 알쓸신잡에서 김영하 작가가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큰일 난다. 인생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그 일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능력이나 체력을 남겨놓아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도 어느 정도 그렇게 사는 편이라서 그 말에 무척 공감했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고3 때도 절대 잠을 줄이면서 공부하지 않았고, 지금도 하루 8시간 이상은 꼬박꼬박 잔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피곤하면 일정을 줄이고 집에서 최대한 쉬는 편이다. 


이 책의 저자는 젊을 때는 무엇이든 최선이 아니면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잠을 줄여가며 무언가를 하기 일쑤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최선이 안될 때는 차선이라도 괜찮다고 여기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자는 100프로의 에너지를 다쓰지 않고, 90퍼센트에서 멈추는 것은 단순히 시간 여유를 줄 뿐만 아니라, 자신을 느슨하게 해방시켜준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90프로가 아니라 70-80프로 정도까지만 에너지를 쓰고 쉬는게 좋다. 


슬슬 지겹네 하는 생각이 든다면 몸이 보내는 신호라고 생각하세요. 억지로 어떻게든 버티려 애쓰지 말고, 순순히 몸의 리듬에 따라 휴식하고 빨리 기분전환을 해서 일도 생활도 스트레스 없이 하면 좋겠습니다. - 이치다 노리코 <어른이 되어 그만둔 것> -


폭넓은 인간관계를 그만두다


예전에는 지인의 모임이나 초대에 거절의 말을 하지 못하고 응했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이런 모임을 가지 않게 되자, 내가 불필요한 모임으로 인해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빼앗기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마음이 강하게 움직이지 않는 한, 회식이나 모임의 초대를 가급적 사양한다고 한다. 미안한 마음에 억지로 나가면 분명 ‘아, 오지 말걸 그랬어’ 하고 후회한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시간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소모하는 기분이 든다면 그건 무용하다. 


제가 바라는 건 서로 마음이 오갈 수 있는 정도의 관계예요. 그렇기에 누군가와 교류하는 폭을 한 치수 줄이는 게 무리가 없지요. 그러려면 때로는 부름에 사양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인생은 길지 않아요. 그러니 ‘그냥’ 만나는 것이 아니라 ‘엄선한 인간관계’ 속에서 진정으로 마음을 주고받는 즐거움을 느끼며 살고 싶습니다. - 이치다 노리코 <어른이 되어 그만둔 것> -


인생의 정답 찾기를 그만두다


저자는 젊었을 땐 인생 어딘가에 '정답'이 있고 모두 그것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라 믿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에 대해 줄곧 생각했고, 그 조건들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 헤매던 행복은 신기루 같은 것이었다. 


괜찮은 회사에 취직한다거나 돈을 많이 번다거나, 결혼을 한다고 행복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쉰이 넘으면서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행복은 조건이 갖춰졌을 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부모님이 건강하신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주말에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햇볕에 말려 까슬까슬해진 이불을 덮고 잘 수 있으면 행복하다. 삶의 행복이란 조건과 목표가 이루어졌을 때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여기저기 넘쳐나고 있다. 


행복은 지금 여기 있다. 꼭 해야 할 일에 얽매이지 않고 때로는 그만두기를 즐기면서 현재의 행복을 더 많이 찾아보련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봄이라는 아름다운 계절이니까. 아니 어쩌면 인생 자체가 아름다운 계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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