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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적 고민, 배낭 or 캐리어?(feat. 남미)

결말을 낼 수 없는 여행의 고민들

by 별나라




살면서 셀수도 없이 마주치게 되는 결코 정답이 없는 고민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를 운운하며

지금 더 현명한 결정을 강요하는 세련되고 지적인 인생철학이 아니더라고

우리는 누구나 자장면이냐, 짬뽕이냐? 와 같은 일상적인 고민에서부터

배낭이냐 캐리어냐? 라는 좀더 특별한 여행의 고민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끊임없이 옥죄어오는 선택의 기로에서 진지해지지 않을 수 없다.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몹시나 젊었던 어느날,

한달이 넘는 일정으로 유럽배낭여행을 떠났고 내 어깨에는 큼지막한 배낭이 하나 걸려있었다.

크기만 컸지 딱히 든 것이 없어서 아주 가벼웠던 그 배낭.

그때는 각종 화장품으로 얼굴을 치장하지 않아도 충분히 예뻤고(나만의 생각일수도...)

머리를 고데기로 말지 않아도 꽤 자연스러웠으며(남들도 이렇게 느꼈을까....)

옷을 아무거나 대충 걸쳐도 나름 내추럴하고 괜찮았다는 것이 나의 지배적인 생각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순전히, 백퍼센트, 나만의 착각일지라도 자신감 하나만은 충만했었다.

그래서 배낭의 무게는 5kg이 조금 넘었으며 그나마 다 잃어버린다해도 전혀 아쉬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슬프게도, 그리고 어쩔 도리없이 세월은 흘렀다.


이제 나는 '나' 하나만으로는 '나' 자신을 유지하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ㅜㅜ

현재의 '내모습'을 유지시켜 줄 많은 '도구'들이 내가 어디를 가든 나와 함께 해야만 했고

그래서 내 여행가방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소중해졌다.

5kg에서 시작했던 내 여행가방 무게는 아무리 가볍게 싸도 15kg이 훌쩍 넘어갔다.

배낭은 저멀리 던져버린지 오래되었고 그 자리를 네모 반듯하고 세련된 캐리어가 대신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 캐리어를 잃어버린다면.....여행을 계속하는 것이 힘들지도 모르겠다.

'나'의 절반이 그 캐리어 속에 들어앉아있으니 말이다.


슬프다....'나' 자체만으로 오롯이 '나'일수 없다..라는 사실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다시, 절대, 결코, 되돌릴 수 없다..라는 사실이.


캐리어와 함께 했던 나의 여행이 케냐, 탄자니아를 만나며 급변했다.

아프리카 흙길에 캐리어라니...한치의 고민도 없이 등짝에 다시 배낭을 짋어졌다.

하지만 남미여행은 달랐다.

여러가지 정황상 당연히 배낭을 가져가야하는데 맘이 쉽게 결정되질 않았다.

배낭에도 필요한 물건을 다 넣을 수 있지만....어찌나 빵빵한지, 밑에 있는 물건을 꺼내려면 그 위에 있던 모든 것이 토해져 나와야하는 상황도 참 부담스럽고.

그 빵빵하고 무거운 배낭이 한달 동안 내 어깨에 올라타고 있을 생각을 하니 더더 맘이 힘들다.

참 난감하다....

여행을 좀 해봤다하는 전문가들은 다들 남미여행은 배낭이 정석이라는데.....


메뉴판을 들고 자장면이냐 짬뽕이냐의 고민이 깊어지면 우리는 가끔은 비장의 무기를 꺼내기도 한다.

바로 짬짜면의 선택.

미식가들은 뭘 모르는 선택이라고 비웃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자장면을 시키고 짬뽕을 먹을걸..아니면 짬뽕을 먹으며 자장면의 냄새에 혹하느니,

차라리 뱃속 편한 선택일 수 있다.

어차피 난 미식가도 아니지 않은가.

그래, 난 어차피 여행 전문가도 아니다.

그래서 남미 여행에는 나도 짬짜면이라는 비장의 카드를 사용하기로 했다.

바로 배낭과 캐리어의 조화. 작은 배낭과 작은 캐리어.....ㅎㅎ

이도 저도 아닌 웃긴 모양새일수도 있지만

이상하게 결정하고 나니 맘에 편했다.


여행 내내 그리 무겁지 않은 캐리어와 또 그리 무겁지 않은 배낭이 참 좋았다.

혹시 다시 남미에 간다면...

또 나이를 더 먹어..인생의 짐이 늘어 가방이 커질 수는 있겠으나

배낭과 캐리어의 조화를 다시 선택하고 싶다.




IMG_3160[1].jpg @ 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수채화-제가 그렸어요)


IMG_3193[1].jpg @ 페루 마추픽추(수채화- 제가 그렸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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