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베른, 녹색광선>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주말 동안 아주 오랜만에 쥘 베른의 소설을 읽었다.
나는 물 위에 배를 띄우고 무수한 풍경 사이를 지나가는 류의 놀이기구를 좋아한다.
이 책은 마치 그런 놀이기구를 타는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물론 그보다 더 광활하고 신비롭기도 하다.
'녹색광선'이라는 전설의 빛을 찾아 떠난 이들을 다룬 모험 소설이자 로맨스 소설인데.
주인공은 설렘과 기대 속에 모험을 떠나지만 때론 위험해지기도 하고 때론 애달파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고난 뒤에 더없는 기쁨을 만난다.
전설에 따르면, 녹색 광선은 그것을 본 사람으로 하여금 사랑의 감정 속에서 더 이상 속지 않게 해주는 효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 광선이 나타나면 헛된 기대와 거짓말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일단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자신의 마음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게 된다.
(녹색 광선, 35p.)
이 책을 읽으면서 난생처음으로 생각해본 몇 가지가 있다. 이것은 내 삶이 계속되는 동안, 사람을 사랑하는 동안 반드시 가슴에 새겨두고 싶은 문장이기도 하고, 내내 저버리지 않길 바라는 스스로와의 약속이기도 하다.
첫째, 웃음과 기쁨은 감추지 않기를.
가끔 심통이 날 때나 기쁨보다 슬픔에 마음이 동할 때. 미소 짓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순간이 있었다.
진심으로 내가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웃음과 기쁨 앞에서는 조금 더 솔직해지기를. 그리하여 순간의 불안이나 슬픔도 웃으며 넘길 수 있기를 바란다.
둘째, 헛된 기대와 깊은 감정 속에 가라앉지 않기를.
합리적인 이유보다는 헛된 기대 속에서 실망하거나 감정의 늪에서 좌절할 때가 더 많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그 헛된 기대와 깊은 감정 속에서 되도록 빨리 해쳐 나오기를 바란다.
셋째, 언젠가 찾아올 기쁨을 기다리는 일을 즐겁게 받아들이기를.
조급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애달픈 순간이 있어도 부디 기다림의 끝에 올 기쁨을 떠올리기를. 그리하여 고달픈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기를 소망한다.
책을 읽는 내내 해묵은 시 구절이 떠올랐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마라
슬픔의 날에 온화함을 되찾고
즐거운 날이 다시 올 것을 믿어라.
마음은 미래에 있고
현재는 좌절되는 것
슬픔은 어느 순간 지나간다.
지나간 슬픔은 훗날 소중하게 될 것이니.
-알렉산데르 푸슈킨의 시
기대가 좌절되는 순간에 사람이 어떻게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 슬픔과 분노에 침전되지 않기를 바란다. 슬픔이 주는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금세 미래의 기쁨을 떠올리기를 바란다.
활자를 통해 본 '녹색 광선'의 간접적인 효험인지 모르겠으나. '사랑의 감정 속에서 속지 않기', '헛된 기대로 인한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나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마주 보기' 같은 놀라운 일들이 정말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책을 내게 건넨 한 사람에게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