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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초입

『설국』을 펼치다

by Jwook

새벽 공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11월에 접어들며 이번 주부터 기온이 뚝 떨어졌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본격적인 영하의 날씨가 시작됐다. 출근길 거리엔 두꺼운 외투를 꺼내 입은 사람들로 하나둘 채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날엔 따뜻한 곳이 그립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온천, 그 안에 몸을 담그고 싶어진다.


예전 겨울 초입, 일본 온천 마을을 여행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걷다가 욕탕 문을 열면 하얀 김이 얼굴을 감싸던 순간. 그 온기와 냉기의 경계에 서 있을 때 문득 한 문장이 떠올랐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고요함으로 말하는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1899–1972)의 『설국』 첫 문장이다. 일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그는 "일본인의 마음의 본질을 지극히 섬세하게 표현한 탁월한 서술"로 평가받는다. 그의 문장은 짧고 단정하다. 큰 목소리로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건드린다.


가와바타는 어린 시절 부모와 조부모를 모두 여의고 고아로 자랐다. 그 상실의 경험이 그의 문학 전반에 깔려 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엔 언제나 무언가 사라지는 것,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애틋함이 스며있다. 『설국』 역시 그렇다. 눈처럼 쌓이고 녹는 관계, 잠시 머물다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설은 1935년부터 12년에 걸쳐 집필되었다. 가와바타는 니가타현 에치고유자와 온천에 머물며, 계절의 변화를 관찰하고 풍경을 느끼면서 한 문장 한 문장을 빚어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일본 문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꼽히는 이 작품이다.

겨울 풍경 (1811) 눈 덮인 들판과 고요히 선 나무. 가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 National Gallery, London

돌아갈 사람과 남을 사람


『설국』의 주인공 시마무라는 도쿄에서 온 한량이다. 물려받은 유산으로 무위도식하며 서양 무용 연구로 시간을 보내는, 현실과 유리된 인물. 그가 눈 깊은 온천 마을에서 게이샤 고마코를 만난다.


둘 다 안다. 이 관계가 어디로도 갈 수 없다는 걸. 시마무라는 언젠가 돌아갈 사람이고, 고마코는 이곳에 남을 사람이다. 미래가 없는 사랑. 닿을 수 없는 관계.


그런데 고마코는 전력으로 사랑한다. 시마무라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그가 떠나면 또 기다린다. 미래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독자는 묻게 된다. 왜 고마코는 이토록 헛된 사랑을 계속하는가?


가와바타는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보여줄 뿐이다. 고마코가 사는 모습을. 그 삶이 얼마나 순수하고, 또 얼마나 비극적인지를.


아무도 듣지 않는 연습


소설 중반, 한 장면이 마음에 각인된다. 눈 내리는 밤, 고마코가 혼자 샤미센을 연습하는 장면이다. 아무도 듣지 않는데,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연습한다. 시마무라는 그 광경을 지켜본다.


시마무라는 고마코의 일기장을 보며, 그리고 그녀의 샤미센 연습을 보며 "헛수고"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정혼자 유키오를 위해 게이샤가 된 것도, 시마무라를 향한 사랑도, 매일 꼼꼼히 적어 내려가는 일기도 모두 헛수고처럼 보인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연습. 누구에게도 닿지 않을 음색. 보답받지 못할 헌신.

그런데 이상하다. 헛수고라는 단어가 떠오르는데, 왠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시마무라 역시 고마코의 그 헛수고가 아름답다고 느낀다. 바로 헛수고이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다고.


이 장면은 『설국』 전체를 관통하는 은유다. 고마코의 샤미센 연습은 그녀의 삶 자체다. 시마무라에게 닿지 않을 사랑, 보답받지 못할 헌신. 그럼에도 그녀는 멈추지 않는다. 연습을 계속하듯 사랑을 계속한다.


그 광경을 보며 나 역시 이 자판을 두드리는 일이 떠올랐다. 누구에게 닿을지 모르는 문장들. 읽힐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고백들. 글쓰기도 결국 나만의 고독한 연습일지 모른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샤미센을 켜고 있는 건 아닐까.

두 사람, 외로운 이들 (1899/1917) 바다를 마주한 두 사람, 닿지 못한 사랑의 거리. 에드바르 뭉크 ⓒ Munchmeseet

덧없음의 미학


가와바타 문학의 핵심은 '모노노아와레(もののあわれ)', 즉 '덧없는 것의 아름다움'이다. 사라지기에 더 아름답고, 영원하지 않기에 더 소중한 순간들. 『설국』은 이 미학의 정수다.


소설 속 눈은 계속 내리고 또 녹는다. 고마코의 청춘도 눈처럼 시간 속에 녹아내린다. 시마무라는 관찰자처럼 그것을 바라본다. 그리고 독자인 우리도 함께 바라본다. 멈출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불가역적인 삶의 변화를.


이게 『설국』을 관통하는 정서다. 닿지 않을 걸 알면서도 전력을 다하는 사람. 그 모습이 왜인지 슬프면서도 아름답다. 가와바타는 그걸 담담하게 그린다. 눈처럼 조용히, 온천의 김처럼 부드럽게.


『설국』은 1935년부터 1947년까지, 일본의 전쟁 확장기와 패전의 시기에 걸쳐 쓰였다. 그러나 작품 속에는 시대상이 제거되어 있다. 지명조차 명시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눈에 덮여 하얀 세계로만 보인다. 그 눈 속에서 가와바타는 인간의 순수한 감정만을 선명하게 그려냈다.

White on White (1918). 침묵이 빛으로 번지는 절대의 공간. 카지미르 말레비치 ⓒ MoMA

지금 이 세대가 찾는 이유


요즘 이십대 독자들이 『설국』을 다시 찾는다고 한다. 처음엔 의외였다. SNS 세대가 이렇게 느린 소설을?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해가 갔다.


우리는 매일 '성과'를 요구받는다. 모든 노력은 결과로 이어져야 하고, 모든 관계는 의미 있어야 한다. 효율과 생산성이 미덕이 된 시대. 그런데 인생이 그렇지가 않다. 잘될 줄 알았던 일이 무너지고, 영원할 줄 알았던 사람이 떠난다. 열심히 했는데 아무것도 남지 않는 순간들.


그럴 때 『설국』은 말한다. 그래도 괜찮다고. 보답 없는 노력도 삶의 일부라고. 고마코의 샤미센 연습처럼, 우리의 많은 노력이 사실은 누구에게도 닿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 자체가 우리를 만든다. 결과가 없어도, 의미가 불분명해도,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이것이 어쩌면 진짜 위로가 아닐까. "괜찮아질 거야"가 아니라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 헛수고조차 아름다울 수 있다고 속삭여주는 것.


두 작가, 두 가지 온도


같은 시대를 산 다자이 오사무가 "그래서 더 아프다"고 외쳤다면, 가와바타는 "그래서 더 아름답다"고 속삭였다.


다자이의 소설을 읽으면 가슴이 아프고, 가와바타의 소설을 읽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둘 다 위로지만, 온도가 다르다. 다자이가 상처를 직시하게 만든다면, 가와바타는 상처를 받아들이게 만든다. 다자이가 절규한다면, 가와바타는 침묵한다. 그 침묵 속에서 더 많은 것이 전해진다.

죽음과 소녀 (1915) 붙잡음과 놓음 사이, 고통의 온도. 에곤 실레 ⓒ Belvedere Museum

우리 각자의 설국

우리 모두 각자의 '설국'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터널을 지나 도착한 곳에서, 언젠가 녹을 눈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그게 의미 없느냐고?


소설 마지막, 누에 창고에 불이 난다. 고마코는 불 속에서 누군가를 끌어안고 나온다. 눈 내리는 하늘 아래, 그녀의 비명이 울려 퍼진다. 그 순간 시마무라는 깨닫는다.


그녀의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아니, 더 정확히는 의미가 있든 없든 상관없다는 걸. 그녀는 그렇게 살았고, 그게 아름다웠다는 걸.


가와바타는 결말에서도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고마코가 구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 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만 독자에게 남기는 건 하나의 이미지. 눈 내리는 하늘과 비명, 그리고 그 속에서도 계속되는 삶.

The Magpie (1868–69) 겨울 햇살과 그림자가 나누는 온기. 클로드 모네 ⓒ WikiArt / Musée d’Orsay

겨울이 오면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거리의 나무들은 이미 잎을 떨구었고, 첫눈 소식이 들려온다. 겨울의 초입에 선 지금, 우리는 다시 터널을 지나고 있는지 모른다.


이럴 때, 『설국』을 펼쳐보는 건 어떨까. 창밖의 찬 바람이 소설 속 눈 내리는 소리처럼 들릴 것이다.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고마코의 샤미센 소리가 들려올지도 모른다.


그 고요함 속에서, 눈은 계속 내린다. 그 속에서도 샤미센 소리는 울린다. 우리의 삶도 그렇게, 조용히 계속된다.

베퇴유의 겨울길 (1879) 희미한 햇살 아래, 눈 녹은 길 위를 걷는 사람들. 클로드 모네 ⓒ WikiArt / Musée d’Or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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