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선 마음

아무것도 잃지 않으려는 마음에 대하여

by Jwook

갈림길 앞에 선 순간


나는 한동안 어떤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낸 적이 있다.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선택지는 단순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그 단순함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며칠이면 끝날 문제였던 일이 몇 달을 끌었고, 그 사이 나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건축가들은 이것을 동선(動線)의 문제라고 부른다. 사람이 공간 안에서 움직이는 길—그 길은 반드시 어느 방향을 선택하도록 설계된다. 두 방향을 동시에 걷는 동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좋은 설계일수록 그 선택은 자연스럽고 명확하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두 방향을 동시에 바라보며 서 있으려 한다.


옷장을 정리하다 멈춘 적이 있다. 몇 년째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이 절반이었다. 버려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손이 가지 않았다. 언젠가 입을 수도 있다는 생각, 이걸 버리면 그 가능성도 함께 사라진다는 느낌. 돌이켜보면, 나는 옷을 간직한 것이 아니라 결정을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버리지 못하는 것과 선택하지 못하는 것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둘 다, 아무것도 잃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망설임이라는 정지 상태


망설임은 더 나은 선택을 찾는 과정이 아니다. 아무것도 잃지 않으려는 마음이 멈춰 서 있는 상태다.


우리는 흔히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를 정보의 부족이나 상황의 복잡성에서 찾는다. 그러나 그 내면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그 중심에는 늘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어떤 손해도 감수하고 싶지 않다는 욕망,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감당해야 할 책임에 대한 두려움. 우리는 더 많이 가지려는 것이 아니라, 틀릴 가능성 자체를 피하려 한다.


탐욕과 두려움은 서로를 강화한다. 더 많이 가지려 할수록 우리는 더 잃기 두려워지고, 더 두려워질수록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망설임은 단순한 지연이 아니라, 스스로를 멈춰 세우는 하나의 상태가 된다.


선택하지 않으려는 인간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인간이 '심미적 단계'에 머물 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이 단계의 인간은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상태를 유지하려 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아무것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


선택은 하나의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동시에, 나머지를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다. 그 고통을 피하려 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가능성을 붙잡으려 하고, 그 결과 아무것도 실현하지 못한 채 머무르게 된다.


현대 심리학에서 말하는 '선택의 역설' 또한 같은 맥락이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더 자유로워지는 대신, 더 불안해진다.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 선택되지 않은 수많은 가능성들이 '내가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삶의 용적률이라는 한계


건축은 이 사실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분야다. 보통 나만의 집을 짓겠다고 마음먹고 건축가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저마다 긴 목록을 들고 온다. 넓은 거실, 독립된 서재, 여유 있는 주방, 가족 모두를 위한 공간. 그리고 어느 순간 묻는다. "이걸 다 넣을 수 없을까요?"


건축가는 도면을 펼쳐놓고 답해야 한다. 다 그릴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집은 지어질 수 없다고.


설계는 언제나 제한된 조건에서 시작된다. 대지의 크기, 용적률, 예산이라는 현실 안에서 모든 선택은 이루어진다. 거실을 넓히기로 했다면, 그만큼 다른 공간을 줄여야 한다. 채광을 극대화하면, 단열이나 프라이버시에서 일정 부분을 양보해야 한다. 트레이드오프는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출발점이다.


그러나 우리는 삶에서는 이 당연한 원리를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라는 '삶의 용적률' 안에서,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동시에 가지려 한다. 안정도, 성장도, 자유도, 인정도 모두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그런 삶은 도면 위에서는 그럴듯해 보여도, 현실에서는 결코 지어질 수 없다.


가능성의 무게


가능성은 오래 붙잡고 있을수록 가벼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점점 더 무거워져, 결국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게 만든다.


우리는 선택을 미루는 동안 무엇인가를 지키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능성은 붙잡고 있는 순간에는 풍요처럼 보이지만, 실행되지 않는 한 그것은 점점 더 큰 부담으로 변한다.


잘라내는 결단


그래서 때로는 선택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 더 좋은 것을 고르려는 기준이 아니라, 무엇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지를 묻는 기준으로.


결단이라는 말의 어원인 라틴어 'decidere'는 '잘라내다'라는 뜻이다. 결단은 더 나은 것을 선택하는 행위라기보다, 수많은 가능성의 가지를 스스로 끊어내는 일에 가깝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어떤 상실을 경험한다. 그러나 바로 그 상실이, 삶을 구체적인 형태로 만들어낸다.


건축가는 설계의 막바지에 이르면 반드시 한 가지 작업을 해야 한다. 도면에서 선을 지우는 일이다. 처음에 가득했던 아이디어들, 갖고 싶었던 공간들, 넣고 싶었던 요소들을 하나씩 지워나간다. 그 지움이 두려워 선을 지우지 못하면, 도면은 영영 완성되지 않는다. 짓지 못할 집의 도면으로 남을 뿐이다.


도면 위에 남겨진 선


건축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은 모든 것을 담으려는 복잡한 선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지워진 결과로서의 단순한 선이다. 그 선 하나가 공간 전체의 성격을 결정하고, 그 안에서 살아갈 사람의 시간을 규정한다.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울 것인지에 대한 선택들이 모여, 결국 한 사람의 윤곽이 된다.


어쩌면 우리는 선택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지울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전 08화이상적인 세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