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에 가진 선입견 돌아보기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거실에 쪼그려 앉아 있는 딸에게 달려가 사정없이 뽀뽀를 날리곤, 달나라까지 보낼 듯 양팔로 비행기를 태웠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반달눈을 가득 뜬 체 “꺄르륵, 꺄르륵”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안전하게 착지시킨 뒤 나를 바라보는 딸의 눈은 반달에서 보름달로 변해있었다. 그때였다.
"아빠 쾌락이 뭐야?"
딸은 어디서 그 글자를 보았는지 물었다. 순간 멈칫했다. 쾌락이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왠지 쾌락이란 금기되는 말하기 편치 않은 단어로 다가왔다. 그러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원하는 것을 성취했을 때 오는 좋은 감정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딸이 가장 좋아하는 마카롱을 비유해서 설명했다.
"우리 딸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마카롱이잖아. 그걸 무척 먹고 싶었는데 마침 엄마가 너한테 사다 주었어. 그럼, 기분이 어때?"
"정말 좋지! “
"그리고 그걸 입 속에 쏙 넣어 먹었어. 그러면?"
"하늘을 나는 기분이지."
"그런 기분을 쾌락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
"와. 정말 좋은 거구나."
딸의 말처럼 쾌락은 꺼내서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었다. 그간 왜 불편한 단어로만 생각했을까. 그러다 얼마 전 참여했던 독서 모임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그날의 책은 마르게리트 뒤라스 '모데라토 칸타빌레'였다. 책을 읽으며 난해하여 마치 미로 속에 빠진 듯 헤맸다. 다행히 다른 분들도 비슷한 감정을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의 이야기는 어려웠던 책과는 달리 무척 활발했다.
주인공 '안'은 상류층 여인으로 부유하나 갑갑한 삶을 살아간다. 마음속에는 작은 욕망의 불씨를 숨긴 채. 그러다 우연히 연인 간의 살인 사건을 목격하고 그 불씨가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른다. 술집에서 공장노동자였던 '쇼뱅'을 만나서 술을 마시며 그 살인 사건을 복기한다. 점점 둘의 가슴속에는 욕망이 꿈틀댄다. 하지만 소설의 끝은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은 채 허무하게 끝나 버린다.
함께 참여했던 한 회원분은 내내 불편한 마음을 토로했다. 어떻게 결혼 한 여자가 모르는 남자와 술을 마시며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냐며 그 자체가 불륜이라고 단정했다. 다른 회원은 '안'에 대해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감옥 같은 삶에서 얼마나 답답할까, 하며 욕망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욕망이란 절대 부정적인 것이 아닌 드러내서 적절히 표출하면 삶의 긍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가만히 오가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리곤 지금 나의 욕망이 무엇인지 떠올렸다. 퍽퍽한 하루하루에서 한 스푼 기쁨을 찾아주어 기어코 미소 짓게 만들고, 슬픔은 담아내 기억에서 흐릿하게 만드는 바로 글쓰기였다.
이젠 소소한 일상을 담아내는 그저 그런 비루한 글 말고, 타인의 마음속에 파고들어 마구 흔드는 글을 쓰고픈 욕망에 빠져있다. 그 욕망은 부족한 글에 기름을 채워 계속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만약 욕망을 억누른다면 그것은 욕구불만으로 전이되어 어딘가에서 빵 터질 것만 같았다.
글을 쓰고선 지긋한 근원적 외로움이 사라졌다. 유독 싫어했던 혼자 있는 시간도 노트북 하나면 그 안에서 만들어가는 나의 이야기 속에 푹 빠져 텅 빌 틈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쾌락'이니 '욕망'이니 모두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었다. 숨기지 말고 드러냈다면 좀 더 나은 삶을 살았을 것 같단 후회가 밀려왔다. 이젠 그러지 말자. 표현하며 살자.
딸의 질문을 통해서 내가 단어에 가진 선입견을 돌아보게 되었다. 아마 찾아보면 더 많이 있을 것 같다. 문득 그런 순간을 마주치면 한 번 다르게 생각해 보리라. 그 틀 안에 갇혀 다른 면에서 반짝이는 불빛을 꺼트리기 전에.
선입견에 대한 글을 계속 써보려고 예전 글을 퇴고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