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정말로 좋아하고 계시는지요?
백예린의 노래를 좋아합니다. 나른한 목소리로 부르는 그 목소리가, 물 흐르는 듯한 음색이 좋습니다. 이유를 들지 않고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게 몇 가지나 있을까요? 최근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20대 초반, 성인이 되고 나서 친구들의 제안으로 해외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금세 매료되어 여러 나라를 많이도 다녔습니다. 유럽부터 시작해서 미국, 가까운 대만과 일본, 중구...ㄱ…(읍!) 덕분에 지금은 딱히 여한이 없는 것도 같습니다.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다음 항공권을 예매하는 수준으로, 그리고 여행 비용을 벌기 위해 주말 당직을 추가로 받아서 할 정도로 열정이 대단했던 터라, 코로나 이후 여행을 가지 못했을 때 상심이 얼마나 컸는지… 는 뜻밖에도 아무런 타격이 없었습니다.(?) 그제야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여행을 좋아했던 게 맞나? 이 혼란 속에 친구에게 건넨 질문에 친구는 질문으로 대답했습니다. “너, 혼자서도 여행 다닐 것 같아?” 저는 대답했습니다. “아니.”, “그럼 너 여행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다른 것 좋아하는 걸 착각하는 거 아니야?” 수많은 것들이 부정당하는 듯한 혼란이었습니다. 내가 진정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게 정말로 내가 좋아한 게 맞나? 내가 하고 있는 수많은 것들이 온전히 내 의지로 하고 있는 게 맞나 하는 혼란이 찾아왔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렇습니다. 제가 한창 여행에 빠져 지내던 시기에는 모두가 여행을 했습니다. 저의 주변 모두가 여행을 다니고 SNS에 자랑을 하던 시기였고, ‘여행에 미치다’, ‘유럽, 어디까지 가봤니?’ 등 여행을 부추기는 콘텐츠와 집단들이 판을 치던 시기였습니다. 또한 유행했던 키워드까지 예술적이었죠. “YOLO!”(You only live once.) 인생 한번, 즐겨!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저는 그저 휩쓸렸던 것뿐이었습니다. 마치 평소 거들떠도 보지 않던 옷이 유행을 타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예뻐 보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야 인지하게 되었지만 저는 사실 방 안에서 혼자 앉아서 토닥토닥 뭔가 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혼자 앉아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거나. 그런 사소한 행동들이 성취감이 되고 제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는 것을 자가격리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오 마이 갓. 자가격리라니. 어찌 보면 코로나가 저에게 “네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뭔 지도 모르는구나?” 하고 깨달음을 가져다준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충격적인 일입니다. 저는 사실 격리당하는 것을 좋아했던 것입니다! 그 어쩔 수 없는 쉼이 너무도 짜릿했던 겁니다. 지금도 방 안에서 혼자 크롬캐스트로 유튜브(잔잔한 지브리 ASMR)를 틀어놓고 혼자(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노트북을 도닥거리고 있는 이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고 즐겁습니다. 편안하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수영입니다. 친구에게 전파된 취미입니다만 인생 운동이라고 부르는, 너무도 좋아하고 저를 편안하게 해주는 운동입니다. 물론 진짜로 편안한 것은 아니지만 고된 육체와 안정된 마음을 선물해줍니다. 명상의 한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원체 생각이 많아 하루 종일 내면에서 기를 빨리기 때문에 수영을 할 때의 물소리, 물결, 그리고 지나가는 바닥의 타일과 물의 저항을 느끼면서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생각은 끊어지고 물속에 있는 저만 남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영을 끝내고 나왔을 때에는 얼마나 상쾌한지, 땀에 절여지지 않고 할 수 있는 운동은 오로지 수영뿐일 것입니다. 대신에 아주 물속에 담가서 절여버리기는 하지만요. 하는 중에도, 한 뒤에도 상쾌합니다. 수영 얘기만 나오면 말이 길어지고 늘어지니 여기 까지만 하겠습니다. 수영 얘기는 따로, 아예 판을 깔고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벌써부터 손가락 마디마디가 근질거립니다.
아무튼 혼자서 가꾸는 시간, 그리고 수영, 그 외에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는 아직도 잘 모릅니다. 저는 아마도 이제야 사춘기를 뒤늦게 겪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자아를 찾아가야 할 시간에 가족을 책임지고 스스로를 학대하느라고 아까운 시간을 쏟았습니다. 저 스스로가 뒷전이었던 시간이 너무도 길어서, 이제야 모두들 “너 자신을 사랑해야지.”라고 말하는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싶습니다. 유년 시절 사랑받았던 기억이 저를 지탱해가며 자아가 형성되었어야 하는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그 부분이 조금 약합니다. 그래서 저는 저 스스로가 안쓰럽고 불쌍하고, 그러면서 밉습니다. 모순적이지만 그렇습니다. 가끔 스스로를 해하고 싶을 때 수영을 가서 폐가 터질 것 같을 때까지 수영을 합니다. 건전한 자해입니다. 건강해지는 자해. 그러다 코로나 때문에 수영장이 닫힌 날이 많았기에 수영 대신 우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코로나가 하나를 주고, 하나를 앗아갔습니다.
아, 그리고 별을 좋아합니다. 별을 보는 것, 그리고 찍는 것도 좋아합니다. 12만 원짜리 중고 DSLR로 입문했던 카메라, 작고 가벼운 DSLR을 새로 사서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 속 별을 찍었습니다. 그때 참 찬란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종종 하늘을 봤을 때 평소보다 별이 두어 개라도 더 많이 보이면 가슴이 설렙니다. 예전에 사막 리조트에 갔을 때 남자 친구와 숙소 뒷문을 열고 나가 무작정 사막의 듄 위에 샤워타월을 깔고 누워서 밤하늘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제 삶에 가장 낭만적인 장면이 아닐까 싶은,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제 삶을 영화로 만든다면, 그 2시간의 러닝타임 안에 꼭 들어갔으면 좋겠는 장면 말입니다.
적다 보니 생각보다 좋아하는 게 많아서, 제가 좋아하는 게 뭔 지 모르겠어요!라고 한 게 머쓱해집니다. 아마도 인지하지 못한 것뿐, 없는 건 아니었나 봅니다. 앞으로도 제가 뭘 좋아하고 있었는지 차차 알아가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습니다. 아, 위를 올려다봤을 때 나뭇잎에 비치는 햇살도 좋아합니다. 커피도, 라떼 위의 우유 거품도, 달달한 휘핑크림과 그 위의 시나몬 가루도, 혼자 카페에 가는 것도 좋습니다. 음. 저 좋아하는 게 꽤나 많습니다. 정정하겠습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알아가는 중입니다. 그래도 사춘기는 사춘기인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