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장유유서요?
※내용에 아동학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불쾌하실 수 있으니 감상에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삼촌에 대한 얘기를 언제 쓸까 고민했습니다. 그냥 여기에 쓰고 음… 뭐하면 빼거나 옮기거나 해야지 싶습니다.(옮길 수 없다는 사실을 3일 뒤에 깨달았습니다.) 저의 가족은 아빠, 오빠, 그리고 저. 과거에는 거기에 더하기 할머니와 삼촌. 엄마는 제가 3살 무렵 아빠와 이혼하셨습니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고, 영상도 없고 저에게 친모는 2D나 다름없습니다. 아빠와의 결혼 앨범에 있는 사진이 전부입니다.(그것도 가족 신문 만들라고 할 때 오려갔던 것 같습니다.)
그 이혼 뒤로 아빠는 장남으로서 어머니와, 정신병을 앓고 있는 동생,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부양하셨습니다. 실화인가요? 책임감이 어마어마했겠지, 싶습니다. 지금은 제가 가장으로서 있는데 생각보다 매우, 매우 힘듭니다. 이것 말고는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그저 몇 번이고 무너졌다가 일어나고, 일어나고, 또 일어서는 일입니다. 그나마 저는 성인 두 명을 부양했지만 그때의 아빠는… 노인과 환자와 초등학생 1명, 미취학 아동 1명이었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입니다. 다시 한번 저와 오빠를 포기하지 않아 주신 아빠께 감사드립니다.
아무튼 삼촌은 정신병을 앓았습니다. 스물일곱이 되고 나서 조현병이라고, 병명을 아빠께 여쭈어 듣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조현병에 대해 위험하다는 인식이 많지만 당시에는 어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의 저는 대여섯 살이었고, 조현병이라고 들어봤자 그게 뭔지도 몰랐을 어린애였습니다. 전문의들로부터 모든 조현병이 다 위험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우리 삼촌은 위험했습니다. 어린 저와 오빠를 때렸기 때문입니다. 매일같이 때렸던 것 같습니다. 거의 버릇처럼 말입니다. 워낙에 오래된 일이고, 제 뇌가 애써 잊었는지 몰라도 몇 가지 단편적인 사건만 기억이 납니다. 한 번은 제가 손가락을 실수로 선풍기에 넣었던 적이 있습니다. 손톱이 날아가고 피가 철철 났는데, 그때 손가락에 붕대를 감고 할머니께서 갖다 주신 간식을 먹으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다치니까 삼촌도 안 때리고 할머니도 잘해주시네.’ 고작 대여섯 살 먹은 아기가 할 생각은 아닌 듯싶습니다. 다시금 말하지만 저는 제가 불쌍하면서 밉습니다.
그리고 삼촌이 오빠를 초등학교에, 저를 태권도장에 데려다주면서 오빠 배를 발로 걷어차서 오빠가 바닥에 뒹굴었던 장면도 기억납니다. 그리고 그렇게 저를 데려다준 태권도장에서 삼촌이 저에게 “오리궁둥이를 집어넣을 때까지 걸으라.”고 해서 긴장 속에 도장 내부를 계속 걸었던, 사범님이 보다 못해 뜯어말려서 멈추게 했던 사건도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잊히지 않는 기억 중 하나는 제가 음식을 천천히 먹는다는 이유로 김치찌개에 밥을 말은 그릇에 제 얼굴을 잡아 처넣었던 기억입니다. 눈과 코에 김치찌개 국물이 다 들어가서 너무나 아프고 앞도 보이지 않는 와중에도 머리를 계속 때려 대서 보이지도 않는데 음식을 입에 잡아넣으며 울고 빌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떻게 그렇게 작은 어린애를 학대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때 사진을 보면 저는 정말 앙증맞고 귀엽기 짝이 없는데 말입니다. 때리다니, 어쩜 정신병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학대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여자애는 성인이 되어 정신과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다니지 않게 되었다면 좋았겠습니다만, 그리고 아쉽습니다만, 뭐 그렇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건, 성인이 되어서야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삼촌이 저를 만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너무도 불쾌해서 잊히지 않는 기억인데, 삼촌이 저를 침대에 앉혀두고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불쾌한 짓을 계속했습니다. 때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울고 빌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그저 기분이 너무 불쾌했던 것만 기억납니다. 밖에서 사람 소리가 들려서 제가 소리를 지르자 삼촌이 제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제가 벗어나고자 삼촌 손에 침을 뱉었는데도 때리지 않고 입을 놔주지 않았던 걸 보면 평소 누가 보든지 말든지 때리는 상황과는 확연히 다른 대처였습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아, 그게 성추행이었구나. 제가 너무 어려서 무슨 짓을 당했는지도 인지하지 못했던 게 참 안쓰럽습니다.
그 뒤로도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중략하고, 중학생이었던 저에게 삼촌이 다시금 성추행을 했기에 어렸을 때 무슨 일을 당한 건지 그제야 알았습니다. 고모 댁에 친가 쪽 친척이 모두 모였을 적, 다시 만나게 된 삼촌이 혼자 일찍 일어나 소파에 앉아있는 제 입술에 인형 입을 갖다 대더니, “입술 뺏겼대요~” 하고 개도 안 물어갈 대사를 치더니 “왜 그때보다 가슴이 별로 안 컸어?”라고 물었습니다. 무슨 짓을 당할까 두려워서 사람들이 있던 방으로 숨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 여자아이에게 별 짓을 다 했던 나쁜 사람입니다. 10년이 지나서도 반성도 없이 재범이니, 갱생의 여지조차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그가 갇힌 정신병원에 찾아가서 죽탱이를 때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지금은 아마도 오십이 넘었겠지만 장유유서고 나발이고 죽탱이 한 대 때리고 나서 왜 그랬는지 묻는다면 그 후 채 자라지 못한 제 어린 마음이 조금은 치유될 것 같습니다. 아직도 아빠는 모르십니다. 그 삼촌이라는, 아빠의 어린 동생이 초등학교도 채 들어가지 않은 어린 딸을 만졌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사실까지 알게 되면 아빠 억장이 무너지다 못해 재건 불가능하겠지 싶어 혼자 가슴에 삭혔습니다. 이게 책으로 나오게 된다면 책 모서리로 삼촌 머리를 탕탕 때릴 겁니다. 법적으로 책은 무기가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바뀌었으면 안 되는데 가기 전에 꼭 알아봐야 하겠습니다.
삼촌을 떠올리면 그 약간 부릅뜨고 돌아가 있는 눈이 가장 먼저 생각납니다. 그리고 제 삶에 그 사람이 없었다면 저는 어떤 사람으로 자랐을지, 마음이 덜 고장 난 사람이 되었을까 하는 여러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만약에 만큼 부질없는 게 또 있을까요. 그저 찾아온 우울과 사이좋게 지내는 일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