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인이 아닌 관광객으로서의 뉴욕 탐방기 (1) - 마천루와 페리
뉴욕에선 할 게 너무 많다. 스파이더맨이 배달부로 일하던 피자도 먹어야 하고, 매년 무도회가 열리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도 다녀와야 하고, 센트럴파크에서 아침 조깅도 한 바퀴 돌고, 소호 거리의 수많은 편집샵에 들려 쇼핑도 해야 한다. 일정을 시작하기도 전에 바쁜 스케줄이다. 특히나 뉴욕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여유롭지 않다면 마음은 더 조급해진다. 직접 보고 경험하고 싶은 뉴욕의 모습은 이토록 많은데 언제 다 해낼 수 있지? 싶어서 말이다.
7년 전 뉴욕에서 인턴십을 할 때 나 역시 비슷한 마음이었다. 주어진 시간은 꼭 8주.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을 고려하면 일곱 번의 주말 밖에 나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게다가 숙소 자체는 뉴저지의 New Providence에 위치하고 있던 터라 주중의 뉴욕행은 쉽지 않았고 (그나마 내가 속한 마케팅 부서는 뉴욕 한복판에 오피스가 있어 출근을 "핑계로" 맨해튼을 즐길 수 있었지만 말이다) 스물넷 대학생에게 NJ Transit 티켓 비용 역시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주말에 한 번 나가면 제대로 보고 오자! 는 마음이 굉장히 강했다. 실제로 함께 간 친구들과 함께 야무지게 뉴욕의 곳곳을 탐방했다. 맨해튼뿐만 아니라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도 자세히 살펴봤고 당시에 뉴욕 "관광객"으로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마스터했다. "뉴욕"을 대표하는 마천루인 Empire State Building의 전망대를 구경하고, 쉐이크쉑 버거를 포장해서 센트럴 파크에서 친구들과 나눠먹었다. 뉴욕의 아트씬 (scene)을 대표하는 유명한 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감상했고, (당시 뉴욕 전시는 "차원이 달라"병에 제대로 걸렸었다.) 브루클린의 DUMBO 아래서 멋진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주어진 시간 안에 얼른 뉴욕의 다양한 모습을 눈에 담겠다는 7년 전 인턴으로서의 마음가짐과는 달리 나름 로컬(?)이 된 지금은 조급한 마음을 한시름 내려놓게 되었다. 이곳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사람으로서는 매번 마천루 전망대를 오른다거나, 페리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을 구경한다든가, 한 영화배우가 단골이라는 피자가게 앞에서 오랜 시간 줄을 서지 않는다. 어차피 언젠가는 또 갈 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 덕분일 수도 있고, 그저 주중에는 열심히 주어진 일을 하고, 주말을 활용해 친구들과의 약속을 잡는 게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럴 때에도 평소 구글맵에 저장해 둔 맛집이나 카페를 탐방하며 수다 떨고 도심 속을 걸으며 스트레스 푸는 게 메인 액티비티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예를 들어 Empire State Building과 같은 마천루 꼭대기를 올라가기 위한 엘리베이터 이용권은 (시간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40에서 많게는 $60이 넘어가는데, 이제는 "여행을 온 관광객"이 아닌 이곳에서 삶을 영위해야 하는 로컬이기 때문에 같은 예산이면 일주일치 장을 보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다.
그러나 손님이 오면 이야기는 180도 달라진다. 한국뿐만 아니라 같은 미국 내에서도 뉴욕으로는 여행 오는 친구들이 많은 편인데 이런 기회를 십분 활용하여 함께 관광하기 좋다. 특히 한국에서 뉴욕에 놀러 오는 손님을 맞이할 때면 나 역시 신이 나서 내가 좋아하는 뉴욕의 모습을 보여주기 바쁘고, 마음속에서만 찜해뒀던 (비싼) 맛집 또는 액티비티를 하나둘씩 꺼내어 친구에게 제안하게 된다. 그리고 이번 글에서는 "손님맞이"라는 훌륭한 핑계로 내가 즐겼던 대표적인 뉴욕의 관광코스인 전망대, 크루즈, 그리고 스테이크 하우스에 대해 소개하려고 한다.
먼저 전망대는 "뉴욕 여행"을 논할 때 빼놓기 어려운 코스라고 생각한다. 백 년 넘는 역사를 가진 마천루의 본고장 그 자체가 바로 뉴욕이기 때문이다. 앞서 여러 번 언급한 Empire State Building 역시 얼핏 보면 인상 깊지 않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1929년부터 공사가 시작되어 1931년 완공된 그 역사를 생각해 보면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그 외에도 크라이슬러 빌딩,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 등 다양한 고층 건물이 위치해 있고 이처럼 지명된 건물 외에도 대부분의 건물이 우람한 자태를 자랑하기 때문에 높은 곳에 올라서서 한 번에 이들을 내려다보면 복잡하고 웅장한 도시의 모습이 정말 인상 깊다.
필자가 첫 번째로 방문한 전망대는 Empire State Building이고 두 번째로 방문한 전망대는 바로 Top of the Rock이다. 이는 록펠러 센터의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는 전망대인데 Empire State Building과 양대산맥인 것이, 뉴욕에 왔으면 대표 마천루인 Empire State Building에 "직접 올라야 한다"와 "직접 봐야 한다"간의 대결이다. 나는 처음에는 "직접 올라가 보자" 주의였고 2022년 학회 방문차 뉴욕을 잠깐 방문했을 때는 차선책인 Top of the Rock에 다녀왔다. 사실 당시 뉴욕을 방문한 것은 뉴욕"시"의 맨해튼이 아니라 뉴욕"주"의 Long Island 끝자락에 위치한 Cold Spring Harbor 연구소 학회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동 시간을 고려했을 때 내가 맨해튼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꼭 반나절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전 9시 Top of the Rock 입장권을 미리 예약해서 굳이 도심 한복판 록펠러 센터까지 걸어가 뉴욕의 풍경은 눈에 담고자 했다.
그 결과는 당연히 만족스러웠다. 4년 만에 다시 찾은 맨해튼에서 이번에는 Empire State Building의 꼭대기가 아닌, 그 자체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감격스러웠다. 여전히 어지러운 듯 복잡하고 웅장한 모습의 도심이 퍼즐처럼 비치는 모습도 너무 좋았다. 또한 이전 각도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센트럴 파크 뷰도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360도로 이루어져 있는 전망대 발코니를 걷다 보면 한쪽은 다운타운인 Lower Manhattan, 그리고 반대쪽은 업타운인 Upper Manhattan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점심에 바로 기차를 타고 학회장으로 이동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한 시간 정도밖에 머물지 못했지만 야경보다 오히려 쨍한 모습의 아침 맨해튼을 듬뿍 눈에 담고 와서 만족스러웠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은 첼시 (Chelsea)와 헬스키친 (Hell's Kitchen)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허드슨 야드 (Hudson Yard)의 Edge NYC (에지 엔와이씨)다. 이곳은 올해 뉴욕에 와서 가본 첫 번째 전망대다. 벌써 두 번째, 세 번째 전망대를 다녀온 것은 아니고, 앞으로 하나씩 도장깨며 어디서 뉴욕을 바라보았을 때 어떻게 풍경이 달라지는지 직접 비교해보고 싶은 약간의(?) 욕심이 있다. 이전에 가보지 못했던 Edge를 가보기 위해 최적의 시간을 찾아야 했다. 당시는 4월 초였는데 생각보다 길어진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저녁 8시는 되어야 일몰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한 가지 참 얄미운 점은 뉴욕 대부분의 전망대는 시간대에 따라 가격 책정이 다른데 일몰 시간 티켓이 가장 비싸다. 10분 차이로 10불씩 올라가는 티켓 값을 보면서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40분 "서비스 시간" (이를 영어로 courtesy period라고 하는데 아주 큰 인심을 써서 조금 일찍 또는 늦게 도착해도 위약금 없이 봐준다는 의미다.)을 고려해서 가장 늦은 일몰 전 시간인 오후 5시 20분 표를 결제했다.
그래도 인당 $48이었으니까 저렴한 건 아니었지만 결코 후회는 시간이었다. 40분 "서비스 시간"을 꽉꽉 채워서 저녁 6시에 허드슨 야드에 도착했고 입장 시간은 확인도 하지 않고 티켓 QR코드를 내보이고 있는 우리를 들여보내줬다. (늦을까 봐 살짝 긴장했던 게 민망할 정도.) 그렇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귀가 먹먹해질 때쯤 100층에 내려 살펴본 모습은 이전에 방문한 두 전망대와는 또 색다른 뷰를 나에게 선물해 줬다. 실제로 일몰 시간이 늦어서 두 시간 넘게 이곳에 머물렀는데 오히려 차분하게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데이트 장소였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땐 유독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 때문에 일몰을 기다리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100층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을 자세히 구경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 손님이 오신다면 (지금으로서는 선선해질 때쯤 부모님을 모시고 싶은 마음이 크다!) 아직 못 가본 SUMMIT One Vanderbilt (서밋) 전망대에 가보고 싶다. 조만간 가볼 기회가 생기면 다음 글에서 차이점들을 또 다뤄보도록 하겠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것 외에 뉴욕의 풍경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는 바로 유람선이다. 흔히 "페리 (ferry)"라고 불리는데 뉴욕에는 유명하고 역사 깊은 페리 운항사가 여러 군데 있다. 맨해튼 섬이 서쪽의 Hudson River (허드슨 강) 또는 동쪽의 East River와 맞닿아 있는 주변을 따라 부두 (Pier)를 찾을 수 있는데 뉴욕의 주요 지형지물을 섭렵할 수 있는 훌륭한 코스의 페리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보통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배를 타고 브루클린 다리, 맨해튼 다리, 윌리엄스버그 다리, 그리고 반대쪽에 자유의 여신상이 자리 잡고 있는 리버티 섬 (Liberty Island)과 그 옆 엘리스 섬 (Ellis Island)을 돌아볼 수 있다. 역시나 상품 구성에 따라 코스나 제공되는 서비스도 천차만별인데 (배 위에서 3코스 식사를 즐길 수도 있고, 아예 리버티 섬에 내려서 하루 종일 공원과 박물관을 구경하다가 돌아오는 배 편도 있다.) 가장 기본이 되는 Circle Line NYC를 추천한다.
2025년 기준 인당 $28이면 유람선 티켓을 구매할 수 있는데 전망대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티켓과 비교하면 거의 반 값이다! 그리고 그날의 이동 동선이나 위치를 고려해서 어디서 배를 탈지 고를 수 있는데, 필자의 경우 Lower Manhattan에서 저녁을 먹고 Pier 17까지 걸어가서 근처를 구경하다가 Circle Line 배를 탔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미국이라 여유 있게 생각하면 안 되고 저녁 7시 반 출발 편에 대해 7시부터 승차가 가능하다면 최소한 6시 45분부터 줄을 서는 것을 추천한다. 유람선이다 보니 맨 윗 층이 뻥 뚫려있는데 시야에 방해되는 요소 없이 뉴욕의 야경을 마음껏 즐기고 싶다면 좋은 자리를 선점하는 것은 필수다.
배 위에서 바라본 뉴욕의 풍경은 정말 예뻤다. 낮에는 무더웠던 날씨가 저녁이 되자 선선해졌고, 배 위에서 느낄 수 있는 바닷바람, 강바람이 참 좋았다. (그래서 아무리 더워도 배를 타는 날에는 바람막이가 필수다! 특히 야경을 즐기기 위한 저녁시간 티켓이라면 무조건 추워지기 때문에 겉옷을 챙기는 게 중요하다.) 이번에 배를 탔을 때 붉은 빛깔의 해 질 녘을 배경으로 한 자유의 여신상의 모습이 유독 근사하다고 느꼈는데 생각해 보니 7년 전 처음 유람선을 탔을 때는 동상에 이렇게까지 가깝게 다가가는 노선이 아니었던 것 같다. 다음에는 직접 리버티 섬에 방문해서 공원도 둘러보고, 박물관도 구경하고, 피크닉도 즐겨봐야겠다.
한국에서 손님이 오셨다는 훌륭한 구실과 함께 관광객처럼 뉴욕을 즐기는 일도 매우 즐겁다. 비싼 월세에도 불구하고 낙후된 아파트에서 생활하며 연구실로 출퇴근하고 계속해서 실적과 미래 커리어에 대해 걱정하는 시간이 아닌, 뉴욕을 방문한 손님들 "덕분에" 이곳을 굳이 더 자세히 경험하며 즐기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숨통을 트일 수 있는 날이 많아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