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우가 맛있어야 진짜다.
쫀득한 도우 위에 간단한 듯 보이지만 그 조화로움이 경이로운 토핑이 한가득 올라가 있다. 먹음직스럽게 잘 그을러 진 도우는 밀가루 본연의 향긋함을 자랑하고 치즈는 과하지 않은 느끼함과 고소함을, 그리고 각종 채소는 그 싱그러운 아삭함을 열심히 뽐내고 있다. 메뉴에 따라 베이스가 되는 소스가 달라지는데 토마토면 토마토, 크림이면 크림, 올리브 유면 올리브 유대로 그 풍미가 엄청나다. 치즈의 고소한 짠맛만으로는 다소 부족한 느낌이 든다면 프로슈토와 같은 이탈리안 발효햄을 함께 곁들여 먹을 수도 있다. (프로슈토는 염장된 건조 고기지만 그래도 단백질을 조금이라도 더해주었으니 영양소 균형에도 더 도움이 될 듯하다.)
그렇다. 필자는 이탈리안 나폴리 피자를 정말 좋아한다. 짭조름한 페퍼로니 치즈 피자 같은 미국 스타일, 특히나 뉴욕 브루클린 스타일 피자도 맛있고,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따뜻한 치즈 '매트리스' 위에 파인애플 조각이 정겹게 누워있는 하와이안 피자도 좋다. 하지만 진정으로 맛있고 필자의 혀를 즐겁게 해주는 피자는 바로 이탈리안 정통 스타일의 화덕피자다.
너무 자주 먹어 나름의 '쿨 타임 (cool time)'을 가져야 할 때 빼고는 언제든 대환영인 화덕피자가 왜 이렇게 좋은지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봤다. 이전 글에서도 몇 번 언급한 듯이 필자는 메뉴 선정 시 영양소 균형에 대해 다소 민감한 편인데 ('주의를 기울인다고' 표현하는 게 더 낫겠다) 사실 화덕피자는 영양소 밸런스 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기대하기 어려운 메뉴이다. 묵직한 밀가루 반죽에 지방 가득한 치즈 토핑을 더하고, 다소 짜거나 자극적인 맛의 소스와 채소라고 해봤자 루꼴라나 바질 몇 가닥뿐일 때가 많다. 게다가 프로슈토 같은 짠 고기 몇 조각이 올라갈 뿐, 몸에 좋은 맛, 즉 '클린 (clean)'한 식단을 선호하는 필자에게는 큰 매력으로 다가올 수 없는 메뉴이긴 하다. 하지만 음식의 맛과 향보단 식감에 민감한 필자는 그 쫄깃한 도우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고, 이탈리안 나폴리 피자의 미니멀하고 전통적인 레시피가 빚어내는 재료의 조화로운 맛이 화덕피자의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식감. 나폴리 화덕 피자는 도우가 너무 맛있다. 너무 맛있어서 정제된 탄수화물 과다 섭취에 대한 죄책감도 잊게 해 준다. 나폴리 화덕 피자의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은 화덕 덕분이라고 하는데 450도가 넘는 고온에서 짧은 시간 동안 구워지기 때문에 기름기가 덜한 담백함과 쫄깃한 식감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식감을 두배, 아니 열 배 더 뭉클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건 바로 꿀이다. 한창 유행하던 고르곤졸라 피자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짬뽕과 고르곤졸라 피자 조합이 유행이었다) 항상 꿀과 함께 서빙되었는데 이는 치즈의 짠맛과 꿀의 단맛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아주 배우신 분의 전략이자 ‘단짠’의 선견지명이었다. (어떻게 보면 2014년도 '허니버터 칩'의 조상급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고르곤졸라도 도우가 얇은 화덕피자 스타일이라 꿀이 참 잘 어울리는데 필자는 치즈와 꿀의 조합보다도 쫀득한 나폴리 피자의 도우를 꿀에 찍어 먹는 그 자체를 즐긴다. 이건 마치 가래떡을 따뜻하게 구워서 조청에 찍어먹는 것과도 비슷한데 달달한 탄수화물은 역시, 우리의 마음속에 큰 위로를 전해준다.
나폴리 화덕피자는 과하지 않으면서도 풍미는 깊어서 장인의 손맛과 지혜가 느껴지는 메뉴이기도 하다. 가장 대표적이고 기본적인 나폴리 피자 메뉴는 마르게리타 (Margherita)인데 이는 토마토소스와 그리나삐다노, 모차렐라와 바질, 그리고 올리브 오일이 토핑의 전부다. 가끔씩 풍기 비앙카와 같은 버섯이 듬뿍 담긴 나폴리 피자 종류도 있지만 이 역시 네 가지 버섯과 그라나 버터노, 그리고 모차렐라와 바질이 토핑의 전부라고 한다. 그런데도 그 조화로움이 대단해서 이 음식을 처음 만든 사람이 얼마나 열심히 고민했을지 생각하게 되고, 그 흔적을 맛과 향으로 직접 느낄 수 있어 큰 감동을 받게 된다. 재료의 양과 가짓수보다는 잘 어울리는 짝과 조합을 찾아내어 와인과 같은 술이랑도 참 잘 어울리는 요리를 만들어낸 장인 정신에 깊은 존경을 표하는 바이다.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개인적으로 피자는 맥주보다는 와인이랑 먹었을 때 더 맛있다.) 실제로 최근 이탈리아 농무부에서는 나폴리 피자를 보호하고 차별화하기 위해 몇 가지 지침을 마련했다고 하는데 이는 크기와 화덕의 종류, 그리고 토마토와 밀가루 등에 대한 여덟 가지 항을 규정하고 있고, 오직 이런 지침을 따르는 음식점에만 정부에서 보증서를 발급해준다고 한다. 맛의 전통까지 지켜내려는 노력마저 멋지다. 이러니 어떻게 전 세계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저것 요란한 토핑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피자는 맛도 그냥저냥이지만 멋이 없다. 조화로움에 대한 고민 없이 "뭐 하나는 통하겠지"라고 생각하는 건지... "아모르파티 쉬림프, " "치즈 블라썸 스테이크, " "더블크러스트 이베리코, " "블랙 앵거스 스테이크" 등 가끔은 무슨 맛일지, 어떤 재료가 주인공일지 조차 예측하기 어려운 이름의 피자도 보인다. 가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시켜먹어 본 결과 이런 피자는 과대광고가 심한 듯하고 다 먹고 나면 무얼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더부룩함만 남겨줄 뿐이다. 어지러운 피자가 선사하는 불편한 헛배부름과 다르게 나폴리 스타일 화덕피자는 언뜻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한 번 맛을 보면 그 임팩트를 벗어나기 힘든 정성 가득한 요리를 맛보게 해 준다.
화덕피자는 그 쫀득한 도우와 올리브유의 깊은 풍미, 그리고 치즈와 바질, 프로슈토의 맛있는 조화로움뿐만 아니라 성급한 마음 대신 여유와 풍미, 그리고 화합을 추구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불안한 마음에 이것저것 어수선해지는 마음보다는 스스로 믿을 수 있는 잣대를 세우고 마음의 짐을 비울 수 있는, 그리고 삶의 요소들의 어울림을 도모하는 태도가 바로 화덕피자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멀리 나갔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필자는 한국식 토핑 가득 피자도, 짭조름한 미국식 피자도 아닌, 이탈리안 정통 스타일의 나폴리 화덕피자가 주는 뭉클함을 참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