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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급한뭉클쟁이 Sep 05. 2019

티백

따뜻한 홀짝임, 그리고 ‘여유’라는 선물

"Calm-chamomile,

A comforting, herbal infusion of chamomile, rose petals & soothing herbs"


지금 노트북을 앞에 두고 필자가 홀짝이고 있는 차 이름이다. 미국 Tazo (타조) 사의 제품인 "캄 캐모마일 (Calm-chamomile)은 앞에 적힌 설명대로 카모마일과 장미꽃 잎, 그리고 진정효과가 있는 허브가 부드럽게 섞인 맛과 향을 뽐낸다. '컴포팅 (comforting)'한 차인만큼 '카페인-프리 (caffeine-free)'이기도 해서 늦은 시간 물 대신 따뜻한 차를 마시고 싶을 때도 제격이다 (지금은 매우 이른 새벽 시간이긴 하지만). 이런 티백을 어디서 샀는지, 어디서 구했는지 궁금해하실 독자분들이 계실 수도 있다. 정말 솔직하게 고백드리자면 필자는 몇 주전 미국 학회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때 호텔 학회장 1층에서 티백 몇 개를 챙겨 왔었다.


절대 부끄럽지는 않다! (느낌표가 괜히 찔리는 필자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느낌표를 강조의 도구로 사용한 것일 뿐이다!) 학회 참석자를 위해 제공되는 티백을 종류별로 '싹쓸이(?)' 해온 것은 절대 아니고 기조강연, 세션 참석 중 맛을 보려고 챙겨 온 티백이 남아 한국까지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호텔 방 한구석에 비치되어있는 (다행히도) 무료인 티백은 안 마시면 손해(?)이니 아침에 까먹거나 바빠서 마시지 못하는 날엔 따로 챙겨두었었다. "현대판 자린고비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지만 필자는 떳떳하다. 차를 좋아하고, 본인 보고 얼마든 마시라고 제공된 티백인데 (분명히 "Feel free to enjoy our tea bags!"라고 적혀있었다), 왜 챙겨 오는 것이 부끄러운가? 게다가 해외여행 중 이렇게 여러 종류의 차 맛을 보다 보면 어떤 차가 맛있고 어떤 브랜드가 '고퀄 (High-quality)'인지에 대해 견문을 넓힐 수도 있다 (아니 '후미'를 넓힌다고 표현해야 하나? 실제로 있는 단어인지도 모르겠지만, 쩝.) 실제로 이번 미국 방문 동안 마셔본 Tazo (타조) 사의 티백이 마음에 쏙 들어 빠른 배송을 자랑하는 쿠팡 사의 '로켓 직구' 서비스를 이용해 티백 여러 박스를 주문하기도 했다. 이처럼 어디선가 무료로 제공되는 티백은 대형 할인마트의 '시식코너'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심지어 필자는 실제로 특정 회사의 티백을 구매하는 데까지 이르렀기 때문에 (심지어 직구다!) 어찌 보면 티백을 통해 가장 큰 이득을 얻은 것은 필자가 아닌 티백 제조사다 (변명).


한 가지 더 고백하자면 필자는 티백뿐만 아니라 차 메뉴 자체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근 몇 개월 동안엔 카페에 가서도 커피 메뉴 대신 항상 '논-커피 (non-coffee)'메뉴, 즉 차 메뉴를 찾고 있다. (요즘 같이 가을의 자기주장이 강해진 나날이면 그저 새로운 계절의 도착을 만끽하고 싶어서 따뜻한 차 한잔을 갈망하기도 하지만.) 사실 처음부터 티백과 '티(tea)'에 대한 집착(?) 현상을 보였던 건 아니다. 이 모든 일은 필자가 카페인에 유독 민감한 '카페인 찌질이'가 된 이후부터 오후 네시 이후 커피 섭취를 끊다가 도저히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올해 초 커피를 아주 끊고 나서부터 생긴 관심과 변화의 산물이다. (혹시라도 독자분들께서 '카페인 찌질이'라는 표현에 기분이 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카페에서 "나는 커피를 못 마셔"라고 발언할 때마다 친구들이 필자에게 짓궂게 사용하는 애칭(?) 일뿐입니다...)


물론 일 년 가까이 커피를 끊은 덕분에 수면장애도 극복하고 짧아도 어느 정도 개운한 잠을 청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 내내 '아아메(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그렇게 생각날 수 없었다. 그리고 까눌레나 휘낭시에 같은 고소한 구움 과자와 곁들일 수 있는 따뜻한 '플랫화이트(flat-white)'가 너무너무 마시고 싶은 날도 많았다. 필자는 단 것, 즉 디저트는 핫초코나 요즘 유행 중인 흑당 버블티처럼 마시는 형태인 것보다는 먹는 형태인 것을 좋아하는데 (브라우니, 에그타르트, 등등. 필자의 이전 글인 "1:1 약속"을 읽어보신 독자께서는 다 아실 거다. 여기 링크가 있습니다! https://brunch.co.kr/@hastysentiment/10) 커피 한 잔을 함께 곁들이고 싶은 날에는 그 유혹을 참기가 정말 힘들었었다. 하지만 '커피 끊기' 운동을 한 번 시작한 후 누구보다 강한 오기가 생겨버린 필자는 괜히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기 싫다는 마음'에 계속해서 이 '운동'을 실천 중에 있다. 지금은 적응이 돼서 괜찮지만 이러다 정말 자의에 의해 평생 커피를 못 마실 것 같다.

마실 것은 ‘진저피치홍차’ 그리고 이날의 디저트는 치즈테린느였다. 꾸덕한 치즈테린느를 씻어 넘겨주는 홍차 한 모금은 최고였다.

한 가지 '치트키 (cheat key)'가 있는데 필자는 커피를 끊었지만 모든 카페인의 원천을 끊어버린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필자는 커피와 '따뜻하고 향 좋은 마실 것'을 향한 갈망의 해답을 바로 '홍차'에서 찾았다. 얼그레이,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아쌈, 차이, 다즐링 등등 종류도 참 다양한데, 각각 생산지도 다르고, 빛깔도 다르고, 향도 다르고 우려내는 시간도 천차만별이다. 사실 필자 역시 다양한 홍자 종류의 이름은 들어봤지만 그 차이를 잘 알지는 못한다. 그저 기분대로 주문할 때도 있고, 아는 것이 약간 있다면 차이 티는 살짝 씁쓸한 고소함을 낸다는 점과, 아쌈은 진한 인도 차의 향이라는 점, 그리고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티가 가장 전형적인 홍차로서 우유와 함께 타서 마셨을 때 그 고소함이 제일 진국이라는 점이 전부다. 아직 각 음용법에 대해서는 무지하기도 하고 물 양을 맞출 도구가 없기도 하고, 또 티백을 2-3분만 우려내고 버리기엔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찻 잎을 대범하게 버리지도 못한다. 아직은 아깝다. 나중에 분 단위로 변화하는 차의 맛을 인지할 수 있는 실력(?)을 쌓게 되면 그때는 '프로페셔널(professional)'하게 FM대로 해볼 예정이다.

필자는 스타벅스에 가면 항상 티바나 홍차 라테를 마신다! 얼그레이 티라떼의 바닐라향을 좋아한다. 잉글리쉬브렉퍼스트라떼는 판매 중단되어 매우 슬프다.

커피가 아닌 홍차와 늦은 저녁 마실 수 있는 '디카페인' 허브 차를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종류의 티백을 시도해보게 됐다. 오설록 제주도 박물관에 갔을 때는 '탱크보이'향이 그대로 나는 '달빛 걷기'라는 차를 마셔봤는데 그 이후로 제주 동백꽃, 제주 유채 & 꿀 티와 함께 주문해서 한 동안 잘 마셨었다. 영국 립톤(Lipton) 사의 '옐로 라벨 티 (yellow-label)"는 가장 훌륭한 가성비를 자랑하는 영국식 홍차 티백인데 아침마다 따뜻하게 데워진 우유에 홍차 티백을 우려 마시면 담백하고 점심시간까지 부담 없이 든든한 밀크티가 완성된다! 필자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친구 한 명이 스페인 여행 후 오르니만스 스페인 꿀 국화차 티백을 사다 준 적이 있는데 정. 말. 맛있게 마셨다. 필자는 꿀을 마음껏 먹고 싶어서 화덕피자가 생각날 만큼 꿀맛을 좋아하는데 꾹 국화차는 그 고소함과 달콤함의 완벽한 조화가 정말 취향저격이었다. 그 외에도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연근차, 우엉 팥차 등이 있는데 이름만 듣고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만 구수한 맛을 좋아하는 필자한테는 이런 건강차 역시 최고의 선택이다. 물론 당장 마시고 있는 캐모마일도 참 좋아한다.

매일 챙겨마시는 티백을 서로 나눠 마시면 행복은 두배가 된다. 맨 오른쪽은 방금 제조된 ‘셀프(self)’ 밀크티!

이쯤 되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필자는 티백 선물을 참 좋아한다. 받는 것도 좋고 주는 것도 좋고, 둘 다 좋다. 티백 선물에는 세심함과 따뜻함이 담겨있어서 좋다. 받는 사람이 어떤 향을 좋아할지 생각하게 되고, 환절기의 경우 "나는 당신의 목 건강과 여유를 챙기고 싶어요"라는 메시지까지 함께 담아 포장할 수 있다. 따뜻한 차 한잔을 즐기면서 쉬어가라는 메시지가 참 기분 좋아진다. 실제로 필자는 티백 선물을 받을 때면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어 그 향과 맛을 음미하고 상대방에게 후기를 공유한다. "이번 차는 이런 점이 좋았고 이런 향이 신기해서 더 진정효과가 강했다. 고맙게 잘 마셨다"라는 말을 전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향수(perfume)'과 '향수(nostalgia)'를 연관 지어 기억하는 성향이 있는데 향기에 더 민감한 사람이라면 티백을 우려 마시는 내내 선물을 준 그 사람을 생각나게 한다. 얼마나 낭만적인 선물인가? 마지막으로 차를 우려 마시면 덕분에 수분을 더 많이 섭취하게 되니 정말 일석 n조의 선물이다.

"Tea is the New Coffee" ("차는 새로운 커피다")

얼마 전 기차 위 잡지에서 접하게 된 문구인데 필자는 이와 격하게 공감한다. 직역하면 그 의미가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 듯 하지만 결국 차가 커피를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고 그만큼 대중의 인기를 얻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현대인의 카페인 중독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요즘, 오늘은 점심시간 후 '테이크아웃(Take-out)'커피 대신 따뜻한 차 한잔을 주문하고 앉아 차의 따뜻하고 농후한 향과 맛을 음미해보는 건 어떨까? 평소보다 피부도 좋아진 듯하고, 잠도 잘 잘 수 있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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