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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급한뭉클쟁이 Aug 09. 2019

엄마표 계란말이

푸근한 마음을 닮은 포실포실함

삶아 먹어도, 볶아 먹어도, 기름에 부쳐먹어도 맛있는 계란. 심지어 프라이를 부치려다 실패해도 요리저리 지지 볶다 보면 그럴듯한 '스크램블드 에그 (scrambled egg)'가 완성된다. 게다가 달걀은 단백질이 풍부하고 면역력 증진에도 도움이 되어 맛도 챙기고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일석이조의 음식 재료다. (물론 하루에 두세 개 이상 먹으면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너무 높아질 수 있어 아무리 좋은 콜레스테롤이라고 해도 하루 권장량이 넘는 섭취는 좋지 않다. 안타깝지만 달걀도 '과유불급의 법칙'을 벗어나지 못한다.)


맛 좋고 질 좋은 단백질 공급원으로서 남녀노소 모두가 즐겨 먹는 계란이지만 필자는 특. 히. 나. 계란 요리를 정말 좋아한다. (한 가지 건강상 개인 정보를 공유하자면 필자의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는 항상 '평균 이상'을 유지하는데 이는 분명히 필자가 빵과 계란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빵도 주된 재료가 밀가루, 계란 그리고 버터니... 할 말 다했다.) '계란 요리'라 하면 종류가 참 다양한데 당장 생각나는 몇 가지를 나열해보자면 (간편하지만 밥상 위 확실한 존재감을 지닌) 계란 프라이, (호텔 조식에 온듯한 느낌을 주는) 스크램블드 에그, (여유 있고 분위기 좋은 브런치에 어울리는) 에그 베네딕트, (계란을 디저트로도 먹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에그 타르트, (안주 요리로도 반찬으로도 제격인) 계란말이, (귀여운 이름에 속기 쉽지만 달콤 살벌한(?) 뜻을 갖고 있는 일식 덮밥) 오야꼬동, (보기만 해도 삼겹살 한 점이 생각나는) 계란찜, (최근 들어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외식 메뉴인) 그리고 타마고 산도 등이 있다. 꼭 계란이 주인공인 요리가 아니더라도 새해 첫날 따뜻한 떡만둣국이나 무더운 여름 시원한 콩국수 위에 올라가는 계란 고명이나 (진정한 화룡점정이다) 김밥이나 캘리포니아 롤 같은 한식과 퓨전 롤에 부재료로 들어가는 계란 맛도 좋아한다. 물론 삶은 계란도 좋아한다. 특유의 비린 맛 때문에 삶은 계란을 꺼려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지만 필자는 그 비릿함을 잘 느끼지도 못하고 불쾌해하지도 않다. 맥반석 훈제란이든, 촉촉한 반숙 감동란이든. 다 맛있다, 모두 다 취향 저격 탕탕탕이다.

타마고산도, 오믈렛, 에그마요 샌드위치 (각 지점이 궁금하신 분들은 댓글 달아주세요, 좌표 알려드립니다!)
작년 초에 먹은 떡만두국과 가장 대표적인 브런치 메뉴 에그 베네딕트
부드러운 계란찜과 오야꼬동, 그리고 디저트로도 제격인 포르투칼식 에그타르트
포실한 오믈렛과 두툼한 돈까스의 완벽조화! 그리고 ‘연트럴 파크’에서 즐긴 힙한 계란샐러드 핫도그샌드위치

이렇게 계란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계란 반찬을 자주 즐겨먹었던 기억이 있다. 필자는 여러모로 복이 많은 아이였지만 무엇보다도 대학 입학 전까지 매일 아침 어머니께서 차려주시는 밥상을 받을 수 있는 행운아였다. 딱히 대학 입학이 전환점이 되었다기보다는 필자가 전교생 기숙사 생활 필수인 대학에 입학하게 되면서 스무 살 때부터 집을 떠나 생활하게 되었는데 이전까지는 과장 없이 단 하루도 아침밥을 거른 날이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꾸준한 운동 없이도 나름(?) 잘 길러진 필자의 기초체력과 큰 키는 다 어머니께서 잘 챙겨주신 덕분이다.) 매일 아침과 저녁에 고소한 잡곡밥과 따뜻하게 데워진 국 한 그릇을 어머니께서 차려주시는 정갈한 반찬들과 함께 참 맛있게도 먹었었다. 재료 맛을 한껏 살린, 다소 심심할 수 있어도 그 심심함 자체가 매력이자 진정한 손 맛인 '엄마표' 반찬 들은 떠올리기만 해도 필자를 깊은 향수에 젖게 한다. 그리고 엄마표 반찬 들 중 자주 먹게 돼서 좋아했는지 아니면 좋아해서 자주 해주신 건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필자의 '최애' 반찬은 항상 계란말이였다.


계란말이는 식감이 너무 매력적이다. 필자는 유독 향과 맛보다는 식감에서 취향을 탄다. (예를 들어 쫄깃쫄깃한 떡은 종류별로 다 '극호'인 반면 물컹물컹한 해산물은 '비호'다.) 계란의 고소함을 층층이, 겹겹으로 쌓아 말았으니 담백한 고소함이 더욱 포실포실하게 응집된 느낌이다. 게다가 당근이나 쪽파를 넣고 만든 계란말이의 단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고, 군침이 돋아 어느새 필자는 계란말이 한 조각을 마요네즈에 푹 찍어 따뜻한 쌀밥과 크게 한 입 베어 먹는다. (츄릅-) 가끔씩 특별하거나 여유 있는 아침에 필자의 어머니께선 계란말이 속에 두툼한 크래미나 체다 치즈를 더 넣어주셨는데 오 마이 갓. 이제야 고백(?)하는 거지만 그런 날들이면 식탐이 심해져서 가족들과 식사 중에도 더 많이 먹고 싶은 마음에 유독 계란말이에만 더 젓가락 질을 해댔다. 분명 행복은 나누면 배가 되는 법이라고 배웠는데 필자에게 계란말이는 예외였다. 부드럽게 찢어지는 맛살, 또는 뜨끈하게 녹아 탄력 있게 늘어지는 치즈를 감싸고 있는 계란말이의 포실포실한 식감이란. 그 '맛있음'을 이만큼밖에 형용할 수 없어 아쉬운 마음이다.


계란말이는 뭔가 더 특별해서 좋아했다. 직접 만들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라고 쓰고 있지만 필자는 부끄럽게도 실제로 계란말이에 도전해서 성공해본 적 조차 없다... 실로 머쓱한 부분이다.) 계란말이는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음식이다. 프라이팬 코팅의 '퀄리티 (quality), ' 사이즈, 그리고 모양도 중요할 뿐만 아니라 시간 감각도 매우 중요하다. 얇게 계란물을 펴 바른 후 얼마 정도 익었을 때 한 번 말고, 얼마 큼의 계란물로 그 '말이'를 이어나갈 건지 잘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계란물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데 소금과 후추 간도 중요하지만 노른자와 흰자를 얼마나 잘 풀었는지도 완성된 계란말이의 부드러움을 결정짓는다. (직접 만들지는 못해도 옆에서 재료 준비를 도왔던 경력을 바탕으로 한 소소한 꿀팁을 공유하자면 젓가락도 좋지만 큼직한 포크로 알파벳 '더블유 (W)'자를 그리며 계란물을 저어주면 노른자가 더 잘 풀린다. '스펀지' 꽤나 봤던 세대라면 아마 무슨 말인지 다 아실 거다.) 마지막으로 계란의 개수도 중요하다. '오늘은 네 식구가 다 있으니 X개면 되겠다'라는 감이 필요하다. 물론 어머니께서는 큼직하고 넉넉하게 더 많이 주고 싶은 마음에 항상 대형 계란말이를 식탁에 올려주시곤 했지만 (그리고 그럴 때마다 필자는 "오늘은 계란 X개 넣었지~?"하고 난데없는 맞추기 게임을 하곤 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정답률이 매우 높았었다.) 인원수에 맞는 맛있는 계란말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미리 계산하고 생각할게 매우 많다.


그렇게 필자는 가장 좋아하는 계란말이 소리와 냄새로 아침을 맞이하곤 했다. 잠에서 덜 깨어난 아침 어머니께서 폭신한 계란말이를 식빵 칼로 먹기 좋게 자르는 소리를 들으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다른 반찬들이 들으면 서운 할 수도 있겠지만 필자의 기억에 가장 따뜻하고 기분 좋게 남아있는 우리 집 아침 밥상의 '미장센 (mise-en-scene)'에는 계란말이가 독보적인 주인공이다. 그때 학창 시절을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뭉클해지기도 하는데 슬퍼서라기보다는 누군가 나를 위해 차려주는 음식 냄새를 맡고 그 소리를 들으며 깨어날 수 있다는 건 매우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물론 기숙사 생활 6년 차가 된 (이젠 정말 '기숙사 생활 프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필자의 방 한편엔 아버지께서 사다주신 계란 찜기가 있다. 이는 차려먹고 챙겨 먹기 어려운 생활 속에서 필자의 든든한 단백질원과 먹을거리를 제공하는데 큰 몫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든든하게 하루의 시작을 응원해주던 '울 엄마표' 계란말이와는 절대로 비교될 수 없다. 기숙사 생활이 길어지면서 요즘 특히나 더 취사가 가능한 개인 공간과 부엌을 갈망하곤 하는데 이러한 공간적 갈망이 해소되어도 온 식구 모두 다 같이 옹기종이 모여 따뜻한 밥상을 나눌 수 있는 그 시절 속 분위기는 그대로 재연되기 쉽지 않음을 느낀다.


이번 주 주말엔 오랜만에 집에 올라가게 되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면 계속되는 외식에 지쳐 집에 갔을 때라도 외식은 최소화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지만 내 욕구만 충족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무더운 여름 퇴근 후에도 밥 솥과 프라잉 팬이 뿜어 내는 열기를 견뎌내야 하는 수고가 얼마나 뜨겁고 고난스러울지 조금은 예상이 가기 때문이다. (물론 수고에도 불구하고 무엇이든 말하는 대로 먼저 챙겨주시지만) 그래도 이번 주는 필자의 정서적 체온 유지를 위한 계란말이와 따뜻한 집 밥 한 끼를 꼭 먹고 싶다고 어리광을 피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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