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드니 May 18. 2024

맞다이를 해야할 땐 하자

뒤에서 어쩌고저쩌고 하지말고.


얼마나 자신감이 없으면

저렇게 살까 싶은

사내정치의 세계




원래 다른 글을 쓰려고 했는데, 최근 회사에서 황당한 일을 겪어서 그것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시도때도 없이 사건사고가 터지고 좀 잠잠한 날인가 싶으면 밑도 끝도 없는 과제가 떨어지는 영업부서에만 있어서 이런 세상이 있는 걸 처음 알았다. 바로 사내정치의 세계.


해외영업을 하기 때문에 주로 해외 파트너사와 일을 하고, 회사 내 타 부문 사람들과 일이 많지는 않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신사업TF에 팀원으로 들어가서 타 본부 사람들과 일을 하게 되었다. 직장생활은 다들 번잡하고 스트레스가 많을 터, 전우들을 만난다는 마음으로 설레는 마음에 첫 회의에 참석했는데 뭔가 싸-함을 느꼈다. 같은 직급에 비슷한 나이인 부장 S가 묘하게 나를 견제하고 아랫사람처럼 부렸다. S는 나를 처음 보자마자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시드니님, 담주에 출장 가셔야해요.”


초면에 명령조인 말투를 떠나서 (이때는 의도를 전혀 읽지 못하고, 그저 어려보여서 그런가보다 하는 답도 없는 푼수같은 생각을 했다) 보통 해외출장의 경우 최소 2주 전에는 협의가 되어야한다. 개인적인 용무가 있는 걸 차치하고서라도 물리적인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비행기 표를 끊고, 호텔을 예약하고 출장가서 진행할 할 일과 아젠다에 대해 상사에게 보고를 해야한다. 그런데 다짜고짜 출장을 가라니. 그래서 웃으며 한마디 했다.

“S님께서 잘 다녀오세요. 전 다음주는 못 갑니다.”

 

다른 이유 때문에 그 출장은 무산 되었지만 S부장과 묘한 신경전(?)은 계속 되었다. 각자 작성할 보고서를 나누고 취합을 하는데, 중간 보고 취합본에 다른 사람들이 쓴 부분은 다 들어가 있는데, 내가 쓴 4-5p 보고서가 누락되어있었다. 취합을 담당하는 S부장에게 물으니 영업부서 자료는 실행계획 별첨에 들어갈 거라고 했다.


내가 쓴 자료가 고작 별첨이라는 생각에 자존심은 조금 상했지만, 일단은 TF의 종합 결과물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별 의견을 내진 않았다. 대신 내가 담당하는 지역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TF 멤버들에게 시장에 대해 알려주고, 재밌었던 에피소드를 풀어주면서 팀빌딩하는 역할을 했다. 참, 시장조사하는 업체 교육도 내가 주도적으로 했다. 내가 시장조사 업체와 줌미팅을 하거나 팀원들에게 시장관련 지식을 전파할 때 S부장은 다른 TF를 한다고 전혀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TF를 하는 업무시간 내내 S부장이 안 보이길래 바쁜가보다 하고 말았다.


TF가 거의 마무리 되갈 무렵, 긴 연휴를 끼고 가족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갔다. 휴가 이틀 째 주상절리를 구경하고 고등어회를 떠서 호텔로 돌아오는 신명나는 순간, S부장에게 전화가 왔다.

“시드니님, 내일 A임원 보고할건데 오셔야죠?”

“내일이요? 저 지금 제주도 인데요?”

“제주도라고요? 내일 보고인데.”

할말이 없어서 가만히 있었더니 전화가 끊겼다. 다음날 오전 S부장에게 보고가 잘 됐는지 물으니 잘 진행되었다고 별 피드백 없었다는 답변을 받았다. 뭐 다행이네, 하는 생각에 여행을 즐겁게 마치고 출근한 첫날, 옆자리 선배가 날 보자마자 다급하게 묻는다.

“시드니 뭔일 있어? A임원이 아침 회의하는데 너 뭐하는 애냐고 했다는데?”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S부장이 A임원 보고에 들어가서 보고서는 자신이 혼자 다 썼고 다른 사람들은 별로 역할이 없었다는 식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그 TF에서 부장, 팀장은 S와 나뿐이라 '다른사람'은 내가 특정되는 상황이었다. 좀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있는데, S부장과 같이 있었던 동료 몇몇이 TF시작할 때 전했던 이야기가 그제야 떠올랐다. S부장은 다른 사람들을 짓밟으며 자기가 빛나려는 사람이니 조심하라고. 세상에 그런 이상한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듣고 잊어버렸는데, 그게 실제 일어난 거다.


바로 S부장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안 받는다. 메신저를 했다. 메신저도 답이 없다. 한 3시간 지났을까? S부장에게 메신저가 왔다.

“무슨 일이시죠?”

“시간 되세요?”

“무슨 일이신데요?”

“뭐 물어볼게 있어서요. 1층에서 뵙죠.”


1층 카페에 내려가니 비스듬하게 앉아 거의 누워서 핸드폰 하는 S부장이 보인다. 내가 코 앞에 가도 몸을 고쳐 앉지 않는 매너없는 사람. 쿠션언어를 쓸지 직접적으로 물어볼지 잠시 망설였지만 이런 인간에게 참교육밖에 없다는 선대 조상님의 유언 같은 게 어렴풋이 떠올라 입술을 한번 깨물고 말했다.

“A임원 분이 S부장님 단독보고 들으시고, 제 안부를 물으셨다던데요. 알고 계신가요?”


S부장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젓는다.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내가 받고 있는 오해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니 여전히 자기는 모른다는 말만 반복한다. 앵무새가 된 S부장에게 화제를 바꿔 물었다. 보고된 최종 보고서에 내가 쓴 부분이 통째로 날아갔는데, 어떻게 된거냐. 전에 말씀하신 것과 다르지 않느냐. 신의성실의 원칙이라는 게 있다. 서로 신뢰없이 일을 어떻게 하겠느냐는 등. 다다다다 쏟아냈다.


이런 나의 항의에 대해 S부장은 기분 나쁜 티를 냈다. 자기는 절대 아니라고, A임원분이 그렇게 말한 것에 대해 왜 자신을 의심하냐는 거다. 결국 불편한 사실에 대해 오픈을 했다. S부장 부서로 우리 팀원이 차출될 뻔한 것에 대해. 그 팀원은 1년동안 우리팀에 오고 싶어서많은 것을 포기하고 우리팀으로 온 후배였다. 거기서 S부장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또 모르겠다고 한다. 마치 청문회 정치인 처럼.


S부장과 헤어지고 절친에게 답답한 마음을 털어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던 절친이 실소를 하며 한마디 한다.


“그게 바로 사내정치라는 거야. 정치질.”


직장생활 동안 정신없는 해외사업 업무를 하면서 정량매출과 정성성과 중심적으로 살아왔다. 회사에서는 일중심으로 사고하고 동료들은 상사들보단 후배들과 주로 친하게 지내다보니 이런 웃긴 세상이 있다는 걸 모르고 살아왔다. 매출과 숫자로 성과를 보여주는 내 파트와 달리, 명확하게 정량적으로 성과가 보여지지 않는 부서에서는 서로 깎아내려서 자신이 빛나려고 하는 일들이 매우 만연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결론적으로, 사내정치질을 당한(?) 기분은 매우 더러웠다.  


기분이 안 좋긴 했지만, 새까만 기운을 걷어내는 데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냥 S부장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자신감이 없으면 저런 방식으로 남을 까내릴까. 얼마나 보여줄게 없으면 저러고 살까 싶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용서를 한 건 아니다. 나의 본체를 곡해하고 망가트리려는 사람은 용납할 수 없다. 사회화된 존재라 이 정도까진 말할 순 없지만, 오다가다 S부장이 보이면 눈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맞다이로 들어와. 뒤에서 어쩌고저쩌고 하지말고.”    


                                  

Vive recte et gaude
똑바로 살아라, 그리고 즐겨라





ps. 최근에 일이 많아 연재를 하루 늦었습니다. 혹시 기다리신 분이 계셨다면 심심한 사과 말씀을 드립니다. 다음주에 또 만나요!







이전 03화 예측 불가능한 사람이 되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