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판은 나가립니다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지독한 현실
현실에 떳떳히 살아남으려면
우리 아버지는 좋은 분이다. 내가 살면서 본 사람 중 가장 착한 사람이다. 우리 어머니는 재밌는 분이다. 살면서 본 사람 중에 가장 웃긴 게 우리 엄마다. 그럼 두 분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인 나는 착하고 웃겨야 할 것이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누가 널 때리면,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라. 누가 니 것을 뺏어가면 그냥 줘버려라. 어머니는 날 때린 아이 집에 찾아갔다. 당연히 때린 아이를 나무랄 줄 알았지만, 자학은 가장 고급유머리는 것을 증명하듯 어머니는 그집 현관 앞에서 나를 나무랐다. 손을 포개어 공손하게 서있는 엄마 앞에 팔짱을 끼고 실소를 날리는 인간이 있었다. 그 인간 다리 사이에 내 얼굴 살을 깊게 패어버린 악마의 눈이 번쩍였다.
고희가 다 되어가는 아버지는 여전히 말씀하신다.
Fiat justitia. ruat caelum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
그래서 그렇게 살았다. 그저, 배운대로 했을 뿐이다. 정의롭지 않거나 비 합리적인 결정에는 반기를 들고 강자보다는 약자를 대변하려 했다. 엉망진창인 상황에서도 일이 되게 하려고, 때론 책임감을 가지고 밀어붙이고 때론 사람들을 달랬다. 일에 대한 성과는 훌륭했다. 낮은 연차부터 인정을 받았다. 이대로만 쭉 간다면 조직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겠지. 내가 설득만 잘하면 끌고 가고자 하는 대로 끌어지겠지 라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이상이었다. 일을 열심히 해서 눈에 띄면 누군가의 눈에 들고 주목을 받는다. 그럼 누군가의 시기를 받는다. 그냥 넘겨버릴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가끔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시기가 있다. 자존감이 낮은 어떤 이의 인생에 걸려들었을 때, 자존감이 낮고 자신감이 없는 그는 내 바지자락을 잡고 지하로 끌어내린다. 지하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버둥거릴수록 그는 웃는다. 선하게 살았을 뿐인데, 정신을 차려보면 불행이 목전이다.
여전히 궁금하다. 아버지가 말씀하신 선과 정의는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가보지 않은 천국에라도 있긴 하는 건가. 악이 선이 되고 뻔뻔이 힘이 되는 세상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사자성어 하나만 되뇐다. 도광양회. 도광은 ‘감출 도(韬)’와 ‘빛 광(光)’이 결합하여 ‘빛을 감춘다’는 뜻이고, 양회는 ‘기를 양(养)’에 ‘어두울 회(晦)’로 ‘어둠 속에서 때를 기다린다’는 의미다. 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는 뜻.
그러다가 정상적인 결과를 원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결핍이 없어서 감정적인 채움이 필요없고, 모든 사물을 통찰하며 바라보는 누군가가 나타나면 다시 나도 살아난다. 그러다가 실력이 들어나면 주목을 받고 또 시기를 받는다. 그럼 그 시선까지 커버 하기 위해 내 생각을 더 강하게 드러내고 증명하려고 한다. 나를 드러내려고 할 수록 재능과 생각을 지나치게 과시하는 사람이 되면서 다른 문제를 만난다.
이 흐름이 내가 조직과 직장생활하며 겪은 반복된 일이다. 일만 해서 빛나는 조직은 잘 없다. 틀린 말과 권위적인 태도에 물개박수를 치고, 의미없는 일에도 반기를 들면 안된다. 강자가 약자를 탄압할 때도 강자의 편에 서야 자리를 보전할 수 있다. 문제는, 나는 그렇게 살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우리 부모의 자식이기 때문에. 이럴 때는 다시 도광양회를 외친다. 칼바람이 몰아칠 때는 나서서 바람과 맞설 것이 아니라 조용히 동굴에 숨어 후일을 도모해야한다. 그래야 그나마 감당 할 수 있는 현실을 만날 수 있다.
숲에서 가장 높은 나무는 바람에 꺾인다. 그럼에도 꺾이고 싶지 않다면, 어둠 속에서 때를 기다린다. 나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면서.
이것이 악당들이 주도권을 잡았을 때 떳떳하게 생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다. 꾸준히 선을 추구하며 같이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과 해학을 즐기며 그렇게 살아가야지.
평화를 원하면 전쟁에 대비해라
Si vis pacem, para bellum.
존재하지 않는 이상 (Somnium quod nusquam 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