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생각하고 있다
다 잘해준다. 그리고 나서 거른다.
선배님은 자식이 몇 명이에요?
점심시간, 한 공채 후배와 경력직 후배 이렇게 셋이 밥을 먹었다. 경력직의 경우 내가 채용한 사람이고, 일도 잘하고 인성도 좋아서 평소 잘 챙긴다. 그걸 본 공채후배가 묻는다. ‘선배님은 아들 딸이 너무 많아요.’ 뭔가 서운해(?)하는 느낌이라 어물쩍 넘어갔지만, 실제 딸 아들처럼 여기는 후배들이 많다. 그런 후배가 많은 이유는 별거 없다. 위험 상황에 처했을 때 도와주고, 그 사람들이 작은 호의에 대해 기억하고 소소하게 나마 계속 은혜를 갚기 때문에.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꼭 어린 직원들이 오해를 받거나 죄를 뒤집어 쓰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많은 사람들이 가만히 있는다. 자신에게 불똥이 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 정의의 용사는 아니지만 나의 경우는 약한 사람들이 무력하게 당하는 걸 잘 못본다. 그래서 사실 파악을 정확하게 하고 (사실 이 과정을 즐기는 것 같긴하지만. 시시비비 가리기) 오해를 바로 잡는다.
사람들은 참 예민한게, 내 이런 성향을 금방 알아차리고 다가온다. 저 사람은 착한 사람이야. 일단 잘해주셔. 좋은 일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가오는 사람들이 많다. 나쁜 놈들 전성시대 속에서 내가 뒤통수를 치거나 해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생각하니까. 하지만, 나도 감각이 살아있는 사람이라 나의 선함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금방 알아차린다. 알아차리는 방식은 몇 가지가 있지만, 한가지만 소개해보려고 한다.
미안하지만, 나도 사람이다.
다 잘 해줄 수가 없다.
일단 오는 사람을 막지 않는다. 밥을 먹자고 하면 먹고, 커피 한잔 하자고 하면 간다. 그러다가 조금 더 알아보고 싶은 느낌이 들면 어떤 방식으로든 호의를 베푼다. 밥을 사거나 커피를 사거나, 소소한 선물을 챙겨준다. 그 다음에 판단한다. 저 사람이랑 쭉 잘 지낼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선을 그을 것인가.
많은 사람들에게 잘 해주는 이유는 하나다. 효율적인 인간관계를 위해. 일단 잘 해주고 그에 대한 반응을 보고 사람을 걸러낸다. 내가 1000원짜리 껌을 사줬는데도 100원의 보답도 안 하는 사람들은 1차적으로 거른다. 호의에 작은 보답을 못하는 사람,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 은혜를 기억 못 하는 사람은 내 경계 안에 두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지내기에는 나는 너무 퍼주는 스타일이다. 내 바운더리 안에 있는 사람이면 가둬놓고 퍼주는 게 마음이 편한데 이런저런 계산을 하고 싶지가 않다. 그냥 작은 보답이라고 할 줄 아는 사람이면 계속 퍼준다. 그럼 또 나에게 돌아오고, 나는 돌아온 것에 몇배를 더 퍼주고 그럼 그 사람도 계속 나를 기억하고 고마움을 표현한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면 신뢰가 쌓이고 관계가 깊어진다.
다 잘해준다. 그리고 나서 거른다.
다만 걸러진 사람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물론 인사도 하고 겉으론 잘 지내지만 일정 선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면 그 이상으로 넘어오지 않고, 눈치가 없으면 계속 문을 두드린다. 그럴 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침묵 뿐이다. 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이유를 스스로 깨닫길 바라며.
누군가 무작정 잘해준다고 좋아하지 말길. 그 사람은 호구가 아니니까. 누군가 호의를 받으면 작은 성의라도 보일 수 있는 사람이 되시길 바라며.
언제나 열려있는
Semper aper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