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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Jun 14. 2024

화 안내는 사람에게 속지 말아라

그는 좋은 사람일까



그는 방관자일 수도 있다     





일하는 파트너를 고를 수 있다면 1순위로 ‘인격적인 사람인지’를 살핀다. 업무 자체는 항상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사람이슈를 최소화 하는 게 전제조건이다. 자기 정서가 불안정하고 감정기복이 심한 사람은 대인관계가 정상적이지 못하다. 작은 언행에 흥분하고, 토론을 싸움으로 몰아가는 사람은 동료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만든다. 이런 사람들과 일하는 건 피로도가 심하다. 무슨 일이든 사람들이 모여 하는 일이다보니 여러 감정이 뒤엉키는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나쁜 감정을 쏟아내는 사람과의 협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난항이다.


다만,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무조건 좋은 사람일까. 일단 감정이 널뛰는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일 확률은 높다.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고 사회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인격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일지는 다른 문제다. 화가 안 난다는 것은 어떤 이슈나 안건에 대해 관여도가 낮은 상태다. 아끼는 물건을 분실 했을 때는 화가 나고 흥분되지만 껌을 싸서 뭉쳐둔 껌종이가 없어졌다고 화가 나지 않는 것과 같다.


가끔 보면 순하고 조용한 데도 직원들이 싫어하는 상사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평소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위험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방관자 스탠스를 취한다. 자신과 관련된 직원이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위험에 처했을 때 관여하지 않고 지켜만 본다. 되려 자신에게 피해가 올까봐 침묵하고 묵인한다. 철철 피를 흘리는 사람을 보면서 3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마치 불구경 하듯이. 사회화된 소시오패스에 가깝다.



화를 안내는 사람인지 보다는,

이타적인 사람인지 보는 것이 더 안전하다


한창 ‘행동하는 양심되라’이라는 명언이 맴돌았다. 행동하는 양심은 타인을 나처럼 똑같이 사랑하라는 가르침이다. 나만 생각하며 남에게 해코지 하려는 악마나 방관자가 되지 말라는 것. 주변 사람들을 내 자신처럼 사랑하고, 용기를 내서 나서줄 땐 나서는 게 온당하다는 것이다. 물론 베풀어도 고맙다는 소리 듣기 어려운 세상인 것도 안다. 그럼에도 남을 나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인생에서 행운이 끊이지 않는 사람이 될 거다. 방관자은 불운을 피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행운이 찾아오진 않는다.


한 선배와 점심을 먹은 후 산책을 하는데, 방관자로 유명한 사람이 횡단보도 반대편에 있었다.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담소를 나누는 우리와 달리 혼자 핸드폰을 보며 걸어가고 있는 그 사람. 달달한 라떼를 쪽쪽 거리며 선배는 말했다.


"지금은 괜찮겠지. 회사에서는 직급 때문에 억지로라도 사람들이 찾아오니까. 그런데 인생이 길잖아. 회사를 나가서 저 사람은 어떻게 될까. 누가 찾아주기나 할까? 아니, 회사 사람들이 찾아주지 않더라도 동네 사람들이랑 어울릴 수나 있을까 싶다. 결국 사람들과 어울려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인데."


Animun fortuna sequitur
행운은 용기를 뒤 따른다





ps. 이미지는 <선재업고 튀어>에서 선재(타인)를 위해 용기를 내는 솔이가 생각나서 걸어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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