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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Jun 22. 2024

가끔 충청도나 교토 사람이 되기

뱅뱅뱅 돌려서 말하기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고민되는 사람들

가끔 교토인이나 충청인에 빙의하자.





최근 같이 일하게 된 파트너가 일본 교토사람이다. 태도가 항상 부드럽고 친절해서 겉 보기엔 별 문제 없을 것 같지만, 많은 업무 파트너중에 가장 고역이다. 일단 요청사항이 많은데, 요청했던 내용대로 응하면 꼭 사단이 난다.       


교토 출장 전에 미팅멤버를 어렌지 하는데, 갑자기 교토 파트너가 담당자B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프로젝트의 핵심멤버인 B를 빼라니, 그건 어려울 것 같아서 고민 좀 해보겠다고 전화를 끊었는데 다시 전화가 와서 방금 전에 한 대화는 없었던 걸로 하자고 한다.        

  

안그래도 적은 출장인원에 꼼꼼하게 일하는 B를 데려가지 않을 수가 없어서 미팅에 B를 데려갔다. 그랬더니 교토 파트너가 미팅하는 내내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은근슬쩍 B에게 시비를 건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방금 했던 대화는 없던 걸로 해주세요.’라는 말 자체가 교토식이라고 한다. 앞에 했던 말이 꼭 들어줘야하는 상황이었던 것.      


우리나라도 교토식으로 말하는 지역이 있다. 바로 충청도. 전참시에서 이영자씨가 미용실에 갔다. 한참 미용을 받던 이영자씨가 말한다. “이 숍은 너무 좋아. 집중하는 게 너무 좋네.” 그 장면 뒤에 나왔지만 그녀의 말 뜻은 목이 마르다는 뜻이었다. 다른 미용실에서는 커피 한잔 권하는데, 손님 상태 안 살피고 각자 일하는 걸 은근히 디스한 거였다.      


교토든 충청도든 의중을 파악하는 게 어려워 어지러울 지경이지만, 장점이 있다면 사람들과 크게 얼굴 붉히지 않는다. 일단 웃으면서 말끝을 흐리며 말하기 때문. 또한 내가 겪은 교토인과 충청인의 공통점은 (일부 사람에 대한 경험이지만) 꼭 거절할 일이 있으면 일단 약속을 계속 미룬다. 눈치가 없으면 계속 약속을 잡으려고 하지만, 눈치가 있는 사람이면 그 의미가 ‘거절’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교토, 충청도와 정확히 대척점에 있는 스타일인 나는 업무를 할 때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 일단 아닌 건 아니라고 바로 말하고, 요구할 게 있으면 정확하게 요구한다. 그러다보니 불편해 하는 사람들도 많고 ‘혼자 잘난’ 사람 취급 받기도 한다. 생각과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도 있지만 업무라는 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감정을 신경 써야한다.      


가끔은 교토사람에게 빙의한다. 창문이 활짝 열려있어서 차려입은 옷이 어지럽게 펄럭이고 몸이 으슬으슬 추워지는 느낌이 나면 이렇게 말한다.

“바람이 참 시원하네요.” (속뜻 : 창문 좀 닫아주세요)  



res, non verba
말뿐이 아닌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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