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올야. 나 희진이야. 이 메일을 니가 볼지는 모르겠지만 소식은 전해야할 것 같아서 보내봐. 예상했겠지만 나 결혼하거든.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내 인생을 돌아보는데 너가 생각 나더라고. 넌 내가 그 본부장 사건 때문에 너를 떠났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라. 사실 그건 아니었고 그 때 내 마음상태가 온전하지 못했어. 너에게 의존적이었고 모든 것을 남 탓으로 돌렸어. 짐을 남에게 지우면 편안해질 줄 알았는데 마음에 구멍이 뚫린 듯이 더 공허해지더라. 어쨌든 헤어짐은 네 탓이 아니야. 넌 좋은 남자친구였어.
아직 회사에 있는 서연이한테 물어보니 나 퇴사하고 얼마 안 되어서 너도 퇴사했다고 들었어. 그 회사 참 다니기 힘든 회사였지. 너의 선택이 맞을 거야. 난 그렇게 생각해. 넌 건축사 자격증도 있으니 언제든 창업하면 되고 재취업도 쉬울거야. 실력도 있잖아. 혹시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면 그 시간에 위로를 보낼게.
그나저나 궁금한 게 있는데 너 혹시 카페랑 관련된 일을 하니? 우리 언니 인스타그램에 종종 카페 사진이 올라오는데 한 카페 외관에서 묘하게 너 생각이 나더라. 특히 벽에 박혀있는 단풍모양 타일. 너 나랑 논현동 놀러가면 항상 윤현상재 들렸잖아. 그 타일 구하기 힘들다고 항상 주인 아저씨한테 언제 들어오냐고 물어보고. 그런 기호를 갖기가 힘든데 그 타일이 보여서 신기했어. 그 카페 주인이 너가 아니길 바랄 뿐이야. 언니가 좋게 말하진 않았어서… 우리언니 엄청 쎄거든.
오랜만에 연락하니 어떻게 마무리 해야할지 모르겠네. 무튼 무탈하게 잘 지내길 바랄게. 참고로 축의는 안 해도 돼. 미국에서 결혼해서 오기도 힘들고. 잘 지내렴.
- 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