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들과 대화를 했다.

by 시드니


동료들과 대화를 했다.

사무실이 소란하다.

알고 싶지 않은 걸 알게 되었다.

마음이 불편하다.




[동료들과 대화를 했다]

“신 과장 남편이 우리 그룹사 임원이잖아. 이 정도 커피값은 껌이지.”

사회생활을 하며 불편함을 느끼는 부류가 있다. 나의 사생활을 공공재처럼 취급하며 타인의 정보를 찌라시처럼 아무 곳에나 배설하는 사람. 몇 번 보지도 않았는데 ‘누나,언니’라고 하거나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처음 본 사람들에게 퍼트리는 사람들도 비슷하다. 서로 느끼는 친밀감이 동일하지 않은데 항상 선을 넘는 사람들.


“부장님, 뭐 그런 이야기까지...”

“아니, 우리 신 과장이 얼마나 대단한지 김 대리랑 이 사원은 잘 모르니까!”


내가 대단한 게 아니다. 남편이 대단한 거지. 남편은 나의 자랑이자 우리 집안의 자랑이다. 입사 동기인 남편은 같은 계열사로 들어왔다가 2년 만에 지주사로 발탁되었다. 보통 계열사 직원이 지주사로 가려면 학벌, 업무 능력, 인성, 외모까지 모든 게 갖춰져야 한다는데 그게 내 남편일 줄이야. 적당한 훈남에 적당한 스펙이라 적당한 나와 어울린다고 생각했건만 사회는 남편을 적당히 두지 않았다. 주머니 속 송곳처럼 남편은 자연스럽게 눈에 띄어 무난히 임원 코스에 도달했다. 반면 비슷한 스펙을 가졌음에도 출산과 육아휴직을 반복한 나는 힘겹게 문을 닫고 승진하며 입사 15년 차에 겨우 과장이 되었다.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은 남편이지만, 가끔은 동일선상에서 출발한 동반자와의 현재 위치가 차이가 크다는 사실에 현타가 오기도 한다. 회사 사람들은 내 이런 속내를 알리가 없다. 그만큼 친밀하지도 않은데다 나의 속내까지 알 정신이 없을 거다. 오히려 남편이 임원을 달자마자 나를 ‘사모님’이라 부르며 부러워한다. 진짜 사모님이라면 이 시간에 회사를 다니고 있겠는가. 남편이 임원이 되긴 했지만, 매달 수백만 원씩 나가는 대출 이자와 아이들 학원비, 생활비를 메우기엔 여전히 역부족이다.


가끔은 그 ‘사모님’이라는 호칭이 꼭 나를 놀리는 소리 같아 더 빈정 상한다. 한편으로는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당장 하이닉스 다니는 남편을 둔 김 대리조차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곳이니까. 결국 돈과 명예는 역사적으로 모두가 선망하는 인류의 신앙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타인에게 베푼 호의가 후회된다. 커피 한 잔을 샀을 뿐인데, 김 대리와 이 사원에게 내 개인정보를 씹어댈 먹이를 던져준 꼴이 됐다.


“신 과장이 진짜 선견지명이 있어! 크으...”

'크으'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고과는 거지같이 줬으면서. 덕분에 2년 뒤 차장 승진도 요원해졌다. ‘병먹금’이라는 이 시대의 격언을 되뇌며 똥 씹은 표정으로 앉아있건만, 입에 모터를 단 부장은 멈출 생각이 없다.


“우리 와이프도 신 과장처럼 좋은 회사 다녔으면 나도 경기도 안 살았을 텐데. 신 과장은 남편이랑 월급 합치면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이라니까! 나는 벌어봤자 매일 마이너스야.”


김 대리의 표정을 살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경청하는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할까. 김 대리 남편이 인센만 x억을 받는 하이닉스에 다닌다는 사실을 흘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나에게 주목되는 시선을 타인에게 돌리고 싶은 욕구를 항상 느낀다. 하지만 하루에 희생자는 1명으로만 만들자 싶어 오늘은 내가 희생하기로 한다. 부장처럼 타인의 배경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괴물이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사무실이 소란하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서야 겨우 사무실로 들어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본부장님과 마주쳤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지나가는데 본부장이 목은 좀 어떠냐고 묻는다. 얼마 전 목디스크로 2주간 병가를 썼었다. 건강 하나는 자신 있었는데, 연말 선적 때문에 야근 몇 번 했더니 디스크가 터져버렸다. 어느 정도 회복하고 복귀를 했지만 다시 업무를 시작하면서 증상이 조금씩 나타나곤 한다.


자리에 돌아와 모니터를 바라보니 뒷목이 뻐근하다. 정형외과에서 알려준 신전자세를 하며 천장을 한참 바라봤다. 고작 머리에서 2미터도 안 떨어진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천장 마감재들이 눈에 들어온다. 조금 옆을 보니 김 대리 머리 위 마감재가 살짝 위태로워 보인다.


“아니 김 대리! 남편이 하이닉스였어?”

부장이 사무실이 떠나가라 소리친다.

“오늘 점심은 김 대리가 샀어야 했네!”


김 대리가 당신한테 밥을 왜 사나. 당신은 거지인가라는 생각이 들며 얼굴이 일그러진다. 김대리는 조용히 웃어 보일 뿐 대꾸 없이 업무에 집중한다. 별로 반응하고 싶지 않다는 꼿꼿한 뒷모습에 굳이 찾아가는 한 오지라퍼가 보인다. 부장은 김 대리 옆 빈 책상에 걸터 앉으며 능글맞은 표정을 짓는다. 평소의 나였다면 후배를 아끼는 마음에 부장을 끌고 나갔겠지만, 별로 김대리에게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업무에 집중하려는데 메신저 창이 점멸한다.


[야, 너 그거 알아?]

못생긴 동기다.


[뭘 또.]

[너네 부서 김 대리 소문 말이야.]

[아니, 뭐가 또 있어?]


으악!

메신저를 치던 손을 멈추고 고막을 찌르는 소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김 대리가 바닥에 쓰러져 있고 부장은 어쩔 줄 몰라 허둥댄다. 바닥에는 천장 마감재 조각이 나뒹굴고 있었다. 불안했던 마감재가 머리 위로 직격한 듯했다. 어느새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이 사원과 옆 부서 박 대리가 김 대리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핀다. 얼핏보니 김 대리의 머리에서 피가 흐른다.


모두 놀라 탄식만 하는데, 박 대리가 회사 옆 정형외과에 가서 봉합하고 오겠다며 나선다. 박 대리는 의무병 출신이라 우리 본부 산업안전보건 담당이다. 김대리를 부축해서 나가는 박 대리의 뒷모습은 흡사 솔로지옥에 나오는 건장한 알파메일 같았다. 몸을 부들거리며 걸어가는 김대리의 가녀린 뒷모습을 보며, 문득 가족에게 연락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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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싶지 않은 걸 알게 됐다]

못생긴 동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프로님, 안녕하세요. 수출사업부 신지윤입니다. 혹시 김희은 대리님 가족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사고가 좀 나서요.”

“뭐? 하이닉스 다쳤어? 기다려봐. 오빠가 딱 찾아줄게.”

“네. 급하니 좀 빨리 찾아주세요. 타박상인데 피도 나서요.”

“메신저로 쳐줄 테니까 기다려.”

“네.”


전화를 끊자마자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사람이름을 하이닉스라고 부르는 천박함이라니. 주변에 평범한 인간이라고는 멸종한 게 분명하다. 하긴 나도 동기를 계속 '못생긴'으로 부르고 있으니 나도 똑같은 사람인 건가. 유유상종은 학계의 정설이긴 하지. 잠시 후 메신저 알림이 울린다.


[부모님 번호밖에 없네.]

[결혼한지가 언젠데... 남편 번호는 없어?]

[남편? 남편이 없는데? 부모님뿐이야.]


혹시 비상연락망을 적어둔 게 있을까 싶어 김 대리의 책상을 훑었다. 폭탄을 맞은 듯 정리라고는 모르는 그녀의 책장에서 연락처를 찾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보통 그녀가 서랍에 명함을 넣었던 게 생각나서 조심스럽게 서랍을 열었다. 예상대로 명함을 모아둔 상자가 보여 확인 하려는데, 명함상자 밑에 연분홍색 편지 한 통이 눈에 띄었다.



[마음이 불편하다]

보려고 본 건 아니었다. 정말 비상 연락처를 찾으려다 우연히 걸렸을 뿐이다.


[첫 느낌 희은에게, 끝 느낌 인걸]


인걸…… 인걸? 머릿 속에 이미 저장된 한 사람의 이름이 떠오른다. 박인걸. 조금 전 그녀를 부축해 나간 박 대리의 얼굴이 스쳤다.


“가족 연락처 찾는 거야?”

남의 인생에 관심 많은 부장의 유일한 장점은 눈치가 빠르다는 거다. 편지를 재빨리 구석으로 밀어버리고 명함 상자를 열어 연락처를 찾는데 주황색 하이닉스 명함이 하나 보였다.


“네, 찾은 것 같아요.”

“그래. 잘했어. 혹시 모르니 나도 저장해둬야겠다. 앗 실장님!”


부장은 갑자기 용수철처럼 튀어나가더니 실장에게 김대리 사고를 보고했다. 김부장의 말을 들은 실장은 표정이 일그러지고 부장도 난감한 표정이다. 보고보다는 방재실에 먼저 연락해야 하는 거 아닌가? 마감재가 떨어져서 다른 사람이 더 다칠 수도 있는 건데. 남의 안위에는 무심한 두 사람을 바라보며 김 대리의 서랍을 조용히 닫았다.


손끝에 분홍색 편지의 감촉이 느껴졌다. 점심에 정소를 잔뜩 먹어서 그런가. 속이 비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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