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친 동료가 돌아왔다.
다행히 별로 다치지 않았다.
퇴근 준비를 한다.
무난한 하루였다.
[다친 동료가 돌아왔다]
다행히 김 대리는 금방 돌아왔다. 상처가 조금 깊긴 했지만 피는 금방 멎었다고 했다. 단정한 머리에 붙은 거즈가 꼭 만화 속 한 장면처럼 보였다. 그래도 천만다행이었다. 마감재가 떨어진 위치가 김 대리의 머리 위 정면은 아니었다. 들러붙는 부장을 피하려 급하게 일어나다, 우연히 마감재 모서리에 정수리를 맞은 듯했다.
부서에 소란이 있었던 터라 메신저 창이 쉴 새 없이 점멸한다. 김대리 괜찮냐 안부를 묻는 말들이겠지만, 내 눈앞에는 아까 본 분홍색 편지만 아른거린다. 돌이켜보면 박 대리의 대처는 이상할 만큼 능숙했다. 그때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알고나니 보인다.
[다행히 별로 다치지 않았다]
‘김희은 님이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바로 옆 사람에게 오는 메신저는 느낌이 이상하다. 잠깐 나가서 커피를 마실 수도 있고 옥상에 가서 이야기할 수 도 있는 건데 그 정도의 사이는 아니라는 거겠지.
[저기 신 과장님, 혹시 제 서랍 열어보셨어요?]
‘놀라셨죠?’가 아니라 본론이 먼저인 그녀.
[아, 네. 비상 연락처를 찾느라 잠시 열었습니다.]
[그러셨군요. 찾으셨나요?]
[남편분 성함이 이종훈…… 맞나요?]
[네, 맞아요.]
[네, 그럼 찾은 것 같네요.]
[다른 건 보신 거 없죠?]
[네, 경황이 없어서 연락처만 확인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부터는 저에게 직접 물어봐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김 대리는 곧장 반차를 내고 사무실에서 사라졌다. 얼마 안다쳐서 망정이지 만약 크게 다녔다면 과연 회사에서 산재처리를 해줬을까? 회사가 리스크가 큰 산재처리를 순순히 해줄 리 없다. 자신에게 피해가 올까봐 난리를 피우는 부장부터 넘지 못할 산이겠지. 큰일 당하지 않고 별일 없이 이 건물 밖으로 나가기만 해도 그날은 성공적인 하루다.
[퇴근 준비를 한다]
일을 마무리하는데 이 사원이 명절 기념품 신청 여부를 묻는다. 김 대리가 부서원들 것을 한꺼번에 신청하기로 했는데 병원에 가는 바람에 각자 해야 한단다. A, B, C 중에서 고르라는데 선택지에 남편 회사 제품이 있다. 남편에게 물어보면 금방 답이 나오겠지만, 굳이 연락하지 않기로 한다. 결국 다들 고를 법한, 원가율이 가장 안 좋은 제품을 선택했다.
다 읽기도 어려운 메신저 창을 하나하나 끄다 보니 못생긴 동기와의 대화가 남아있다.
[너네 부서 김 대리 소문 말이야.]
그 소문은 이미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도 소소한 남의 이야기를 나눌때도 있지만 증거까지 본 상황이라 입을 닫는 걸 선택한다. 말을 덧붙이지 않고 메신저 창을 끈다.
[무난한 하루였다]
다이나믹했던 하루 뒤에 맞는 퇴근 바람은 시원하다. 오늘도 정시에 퇴근할 수 있어 다행이다. 하루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 순간이다. 집에 가면 다시 살림과 아이 케어가 시작되니, 이때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놀 수 있다.
이런저런 인터넷 뉴스를 넘기다 블라인드에 들어가 본다. 오늘도 회사 블라인드는 회사 욕으로 가득하다. 승진, 평가, 인센티브. 인성이 부족한 부장을 씹는 글을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 얼굴이 떠오른다.
그러다 댓글 하나가 눈에 걸린다.
[거기 영업본부 젊은 사람들 불륜 소문 있던데 누구예요?]
못생긴 동기 귀에까지 들어갔다면 이미 다 퍼졌다는 뜻이다. 회사에는 비밀이 없다. 회사에서 비밀을 만들고 싶다면 그건 애초에 포기하는 편이 낫다. 수백, 수천 개의 시선이 오가는 공간에서 비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별 볼 일 없는 나조차 가족, 아이, 집에 관한 이야기는 최대한 숨기고 싶었지만 하루 여덟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 앞에서 완벽하게 속이는 건 불가능했다.
특히 요즘... 내가 가장 숨기고 싶은 비밀이 하나 있다.
버스 벨을 누르려는 순간, 그 비밀에게서 메시지가 온다.
“회식 취소됐어. 오늘은 일찍 들어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