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학교에 입학한 둘째-행운이-는 학교 가는 것이 즐거운 아이다. 아무리 늦게 자도 7시 30분이면 일어나는 아이가 가끔 늦잠을 자기는 하지만 그래도 학교 가는 것이 힘들지 않고 재미있다고 이야기해 주는 행운이를 보고 있노라면 마냥 아기 같아 불안하면서도 대견하다. 매일 언니보다 먼저 책가방 매고 신발을 신고 현관에서 언니를 기다린다.
지난 금요일이었다. 선물이는 내 손을 잡고 걸어가고, 행운이는 엄마와 언니를 앞서 룰루랄라 통통거리며 가고 있었다. 저 멀리 앞에 인도 중간에 방치되어 있는 전동 킥보드가 불안한데, “조심해~!” 하고 외치는 엄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앞서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불안은 얼마 못 가서 현실이 되었다. 지난 며칠 동안 세워져 있던 킥보드를 피한다고 걷던 아이가 걸려 넘어졌다. 놀라서 얼른 다가가 일으켜 세워 다친 곳이 없나 간호사의 눈으로 전신 스캔에 들어갔다. 오른쪽 눈 옆이 바닥에 긁혔고, 양 손바닥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일 심한 건 오른쪽 무릎. 바지에 구멍이 났고 피가 나고 있었다. 따뜻한 봄이라 입고 있는 옷은 얇은 면바지였고 처참하게 구멍이 나 있었다..
“구멍이 났어. 내가 좋아하는 바지인데 구멍이 났어. 바지 꼬매줘”
아이는 아픈 것보다는 아끼는 바지에 구멍이 났다는 사실이 더 슬퍼 울었다
내가 국민학교(입학은 국민학교, 졸업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살던 집에서 학교에 가려면 밭을 지나가야 했다. (시골에 살았냐고? 아니다. 학교와 집 사이에는 송전탑이 많이 있어 건물이 지어질 수 없었고, 그곳은 밭이었다. 지금은 송전탑이 다 없어지고 아파트 숲이 있다.) 엄마와 학교까지 같이 가지는 않았고 큰 길만 같이 건넌 후 혼자 갔던 기억이 있다. 어느 날, 밭 사이 길을 지나다가 넘어져 큰 소리로 울었고 엄마는 멀리서 내 우는 소리를 들으시고 학교에 가 있으면 새 옷을 가지고 올 테니 울지 말고 학교 가라고 소리치셨다. 넘어져 아픈 것보다 넘어져 옷이 더러워진 것이 속상해 우는 아이였던 것이다. 얼었던 땅이 질척하게 녹았던 봄, 딱 이맘때쯤의 일이었던 것 같다.
‘훗. 그래 내 딸 맞네.’
울고 있는 행운이를 달래며 다 같이 집에 갔다가 학교에 가기에는 지각 할 시간이기에 선물이에게 행운이의 책가방을 주었다. 동생 교실에 책가방을 갖다주고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해 달라 부탁했고 첫째는 이 미션 수행을 위해 뽀르르 학교도 달려갔다.
책가방을 들고 학교로 가는 언니의 뒷모습을 보며 바지에 구멍이 났다고 계속 오열하는 둘째. 옷 갈아입고 학교 가자고 했더니 계속 바지를 꿰매어달라고 울며 꿰매어주면 다시 입고 가겠다고 한다. 그런 아이에게 새로운 바지를 사 주기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바지 오래 입었어. 그래서 넘어졌다고 구멍 난 거야.)
어렸을 때 옷이나 양말에 구멍이 나면 엄마는 꿰매어주셨다. 때로는 구멍난 옷에 아름다운 자수가 놓여져 색다른 느낌의 옷으로 변해 있었다. 버리고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양말을 신으면 될 것인데 그렇게 나를 키우셨던 엄마가 불현듯 생각났다. 불룩한 꿰매어진 자국이 무릎에, 엄지발가락 끝에 거슬렸던 기억이 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또한 엄마의 사랑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버리려던 바지를 일단 꿰매어 본다. 아이가 아끼는 것을 나도 같이 아껴주고 싶고 먼 훗날에도 아이가 나를 사랑으로 기억해 주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