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자판기에는 진짜 환타가 없을까?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음료수 환타(Fanta)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나는 좋아한다. 나의 이전 글 '우리의 금기어'에서 얘기했듯이 병원에서는 사소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그날 근무의 컨디션을 좌우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단어 하나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는 한다.
환타
코카 콜라에서 발매하고 있는 과일맛 탄산음료의 총칭. 독일에서 개발했으며 1940년에 출시되었다. 국가마다 환타의 재료나 맛이 다르다. 예를 들어, 한국의 환타에는 과즙이 전혀 없고(0%) 설탕과 향료만 들어있는 반면, 유럽의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환타에는 과즙이 8%나 들어있어 한국의 환타보다 유럽의 맛이 한결 뛰어나다. 데미소다보다는 과즙 함량이 6배나 높으며, 트로피카나 스파클링보다는 악간 낮다. 한국에서는 오렌지, 포도, 파인애플맛 인공 향료 등을 많이 사용한다. (출처: 나무위키)
그렇다. 환타는 그냥 음료수다. 그런데 왜 환타는 병원에서 금지하는 단어가 되었을까? 병원에서 환타의 의미는,
환자를 타는 사람
예상한 분들도 있겠고, 이게 뭐냐며 허무한 시선을 보내는 분들도 있을 줄 안다. 출근하는 순간부터 병원을 나서는 순간까지 업무에 관련해서 활활 타는 사람이다. 그런데 웃긴 건 처음부터 본인 스스로 환타인걸 인정하는 사람은 없다. "와, 쟤랑 일하면 너무 힘들어. 쟤 환탄가봐." 이렇게 남이 나를 지칭하는 단어인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면 나는 왠지 정말 환타인 것 같고, 환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다.
나의 환타시절은 신규 때였던 것 같다. (사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아니겠는가!) 우리 병원 간호사 근무 중에는 데이, 이브닝, 나이트 근무를 제외하고 P번이라는 근무도 있다. (9 to 5 혹은 10 to 6. 간호사들은 점심 휴게시간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물론 이 시간에만 일하는 것도 아니고 오버타임이 일상입니다.) 정규 근무의 일을 돕는 깍두기 같은 근무이다.
그날은 P로 출근했는데 이브닝 근무자가 없었다. 아니, 있었는데 없었다. 팀장님께서 이브닝 근무자를 짜 놓기는 했으나 그 사람은 다른 병동에 헬퍼 근무를 하기로 했단다. 당사자도 출근해서 알았다. 헬퍼 보내주기로 하고 잊어버린 거지 뭐. 그런데 오프자 중 급히 출근할 사람이 없어 P로 출근 한 내가 이브닝 근무까지 뛰게 되었다. 병원에서 두 끼나 식사를 하다니. 얼른 벗어나도 모자랄 판에!!
그 당시 근무하던 병동은 종양혈액내과 병동이었고 이 날은 신환(新患. 새로운 환자. 즉 오늘 입원하는 환자다)이 무려 11명이었다. 나는 입사한 지 3개월 된 신규간호사였으며 acting 간호사는 나 혼자였다. 신규 혼자서 11명 신환을 다 받았다. 정말 지금까지 병동에서 일하면서 그런 일은 없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한다. 무려 11명. 무슨 정신으로 일을 마쳤는지 모를 정도로 폭풍 같은 하루가 지나갔고 다행히 퇴근을 했다. 결국 나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고 아직까지도 친한 동료들과 이야기하면 무용담처럼 이야기 되는 날이다.
사실 내가 환타라는 걸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안 그래도 신경 곤두세워야 할 일이 일상인 병원에서 근무마다 이벤트가 빵빵 터지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것 같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미안한 감정이 든다. 그래서 환타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게 또 인정하지 않으면 피 터지는 근무가 영원할 것 같이 연속된다.(나만 그렇게 생각할까?) 그래서 현명하게 환타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 편하다. 왜냐면 그 순간 환타라는 굴레는 누군가에게 던져지기 때문이다. 결국엔 환타는 돌고 돈다. 누구나 될 수 있고 누구나 아닐 수 있는 것이다.
환타라는 말만 들어도, 환타 캔만 보아도 정말 내가 환타가 되어버릴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그래서 병원의 자판기에는 환타가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