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30대인 젊은 여자 환자였다. 종양내과 환자는 대부분 50대 이상인데 그녀는 나이가 너무 젊었다. 응급실 명단을 보자마자 눈에 띄었다.
'OO암 4기. 복통 및 기력저하 주소로 내원'
그녀의 얼굴에는 병색이 완연했다. 복부 CT를 보니 간의 대부분을 이미 암세포가 침범한 상태였다.
며칠이 지나자 간 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남아있는 정상 간세포가 많지 않다 보니 한 번 나빠지기 시작하자 가속이 붙었다. 매일 수혈해도 혈소판 수치는 오르지 않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황달은 진행했다. 복수는 점점 차올라 배가 불러왔다.
2주쯤 흐르자 그녀는 의식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비몽사몽인 가운데에 잠깐 좀 깨어났다 싶으면 횡설수설하였다. 간성혼수였다.
이제는 남은 시간이 단 며칠뿐이었다. 그녀의 남편에게도 알려주어야 했다.
아침에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수화기 너머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아~? 엄마아~?"
의식이 떨어진 그녀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황달로 인해 얼굴은 어두운 노란색이었고, 눈도 제대로 뜰 수 없는 상태였다. 전화기를 들고 있는 남편의 어깨가 떨렸다. 남편은 애써 밝은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그녀 대신 대답을 했다.
"응. 이따 봐~"
전화를 끊고 남편이 말했다. 아이가 둘 있는데, 아직 너무 어리다고. 이따 오후에 환자의 아이들이 면회를 오기로 했는데 엄마의 모습을 보고 무서워할까 봐 걱정이 된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오후 2시쯤, 환자의 가족들이 1층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서둘러 병실로 가서 환자의 상태를 살폈다. 헝클어진 환자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어 가지런하게 정리하였다. 기저귀를 착용한 채 다리를 벌린 자세로 있어 그 위로 이불을 덮어주었다. 아이들이 엄마의 모습을 보고 되도록 놀라지 않기를 바랐다.
환자의 자리를 정리하고 병실에서 나오니 두 아이가 외할머니 손을 잡고 병동에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의 얼굴은 뽀얗고 걸음걸이는 살짝 불안정했다. 서너 살쯤 되어 보였다.
5분도 채 안 되어 병동 휴게실 쪽에서 어린아이들이 까르르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종양내과 병동에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였다. 아이들이 휴게실에서 장난을 치며 놀고 있었다. 아이들 눈에는 엄마가 곤히 낮잠을 자는 것처럼 보여서인지 엄마 얼굴만 한 번 보고 병실에서 바로 나온 것 같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너무도 맑아 더 서글펐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피어나고 있었고
문 하나를 사이에 둔 채
그녀는 숨이 꺼져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