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 수프_풍요로운 만찬의 마법
9월 중순부터 시작하게 된 어르신들을 위한 그림책 테라피 수업 - “그림책 톡톡”이 열심히 진행 중이다. 총 10회의 강연은 나 / 너 / 우리 / 미래 / 나눔을 주제로 하여 마리아 언니와 내가 번갈아 가며 한 주제를 2회씩 각자의 색깔로 수업하고 있다. 서먹했던 다섯 분의 시니어분들은 지난주 수업이 끝나고 따로 다과시간을 갖기도 했다. 양손으로 지팡이 두 개를 짚고 오시는 사무엘 할아버지는 개강 전에 허리가 아파서 수업을 끝까지 참여하기 힘들거라 신청을 취소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었다. 그래서 오시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오시는 모습이 감동이다. 다섯 분 모두 큰 기대 없으셨을 테지만 점차 마음을 열고 얘기를 나눠주시는 것이 뭉클하다. 형식적인 만남이 아닌 그림책을 보며 마음을 나누는 농밀한 시간 때문이겠지. 다음 주 “너”를 주제로 서로를 알아가는 다섯 번째 시간에는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두 사람”을 읽으려고 한다.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남으면 “네 개의 그릇”으로 그림책 장면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마무리로 “대추 한 알” 시 그림책을 읽을 계획이다. 그림책을 통한 이야기 나눔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봉사는 하는 시간이 내게도 큰 보람과 즐거움이 된다. 각자가 갖고 있는 재료 하나를 들고 참여하는 커다란 솥 안의 어우러진 이야기, “돌멩이 수프” 그림책이 떠오르는 풍성한 만찬이다.
프랑스의 옛이야기인 이 그림책에는 군인 셋이 나온다.
배고픈 군인 셋은 지쳐서 걷다가 마을의 불빛을 보고 먹을 것을 구하기로 하지만 마을 사람들 역시 배고픈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군인들이 오는 것을 알고 분주하게 먹을 것을 숨기기에 바쁘다. 이곳저곳을 돌아도 남는 음식과 허름한 방 하나 없음을 알고 셋은 이내 ‘돌멩이 수프’를 끓이기로 한다. 돌멩이 수프라는 말도 안 되는 메뉴 때문인지 마을 사람들은 군인들의 음식 준비를 호기심을 갖고 지켜본다. 커다란 쇠솥 하나를 가져와 불을 지피고 물을 끓이고 크고 매끈한 돌멩이 세 개를 넣어 끓인다. 단단한 돌멩이를 끓여봤자 무슨 맛이 나겠는가? 군인들은 소금과 후추를 넣고 솥을 저으며 얘기한다.
“이런 돌멩이면 아주 맛있는 수프가 될 거예요. 아, 하지만 당근이 좀 있으면 수프 맛이 훨씬 좋아질 텐데…”
당근이 두어 개 있는 것 같다고 한 마을 사람이 앞치마 가득 당근을 가져온다.
“돌멩이 수프에는 양배추를 넣어야 제맛인데!”
이번에는 또 다른 여인이 침대 밑에 숨겨 둔 양배추 세 포기를 가지고 온다.
그리하여 쇠고기와 감자, 보리와 우유까지 넣어 완성된 수프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함께 하는 저녁 식사가 되었다. 커다란 식탁을 내어 놓고 횃불을 환하게 밝히자 빵과 구운 고기, 사과술까지 테이블을 가득 채우고 마치 오늘의 파티를 기다린 것처럼 아낌없이 나누는 마음이 된 마을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춤을 추고 노래한다.
중세 유럽은 수 세기 동안 끝없는 전쟁에 시달렸다. 백년전쟁과 30년 전쟁처럼 긴 세월이 전쟁의 이름이 되기도 했고 크고 작은 종교 전쟁들이 끊이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고단한 생에서 마음 놓고 함께 하는 저녁 만찬이 그리웠을 것이다. 지치고 가진 것 없는 나그네 같은 군인들, 살아남은 군인들은 어떻게든 먹고살기 위해 돌멩이 수프라는 꾀를 부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마을 사람들 모두가 조금씩 자기의 것을 나누게 된 훈훈한 결말을 생각하면 군인들이 고된 전쟁을 겪고 지혜를 덤으로 얻은 현자들이 된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군인 셋은 그날 밤, 신부님 집, 빵 장수의 집, 시장님 집에서 각각 잠을 자고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배웅 속에 길을 떠난다. 커다란 솥 안의 수프가 모두의 참여로 맛있는 식사가 된 것처럼 그림책 톡톡에 오시는 한 분 한 분의 이야깃거리가 모임을 풍요롭게 완성시켜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여유와 용기만 있다면 돌멩이 수프가 일러주는 풍요로운 마법은 언제든 가능한 작은 기적이다.
노년은 조금 외롭다. 몸의 기능은 쇠락하고 마음을 터놓을 친구와 가족은 늘 곁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매주 수요일 11시 그림책 톡톡에 오시는 분들이 삶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며 마음 돌봄을 하는 동안 함께 있는 그 공간이 작은 쉼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돌멩이 수프 | 마샤 브라운 글, 그림 | 시공주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