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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석주 Oct 10. 2019

그녀는 내 것이 아닐 때 아름답다.

초단편소설


나는 그녀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다. 좋아하는 음식, 자주 가는 카페, 껄끄러운 사람, 세 번이나 본 영화. 전부 내가 아는 것들이다.

그것들에 대해 잠깐 얘기해보자면, 그녀는 연어를 좋아한다. 특히 학교 근처에 어느 덮밥집이 있는데, 그 덮밥집의 연어 덮밥을 정말 좋아한다. 얼마나 많이 갔으면 사장님이 이름하고 과를 알고 있다. 가끔씩 사장님의 기분이 좋을 때면, 사장님은 연어를 몇 점 더 올려서 자 서비스다 라며 생색을 내셨다. 그녀는 꽤 능글맞은 구석이 있어서 어머 사장님 오늘따라 더 멋있으시네요 하며 아첨으로 화답하곤 했다.

한 톨의 밥알도 남기지 않고 덮밥을 싹싹 긁어먹으면,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한 카페에 갔다. 거기가 그녀의 단골 카페다. 시키는 메뉴는 항상 같았다. 카페모카에 휘핑 많이. 왜 하필 카페모카냐고 물으면 커피는 마시고 싶은데 아메리카노는 써서, 달달한 걸 먹고 싶은데 헤이즐넛 라떼는 자기가 좋아하는 단맛이 아니라며, 카페모카를 시킨다고 했다. 이 카페의 조명은 그녀의 턱을 반쯤 깎는 재주가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음료가 나오기 전에 항상, 늘 같은 자리에서 셀카를 찍었다. 어쩌다 거기에 다른 손님이 있으면, 크리스마스 아침 본인이 원하던 선물을 갖지 못한 아이의 표정을 짓곤 했다.

입을 달콤 쌉싸름한 카페 모카로 헹구고 나서 그녀는 얘기를 시작했다. 또 그 언니 얘기다. 그 언니는 그녀와 같은 과 동기인데, 재수를 해서 그녀보다 한 살이 많다. 입학하고는 늘 그 언니와 붙어 다녔다고 했다. 한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밥을 천 끼나 더 먹어서 그런지 어른스러웠다고 했다. 고민이 생기면 당장 그 언니에게 달려가 한 호흡에 털어놓았고, 그 언니는 스무 살의 그녀가 절대로 생각해내지 못할 어른스러운 문법으로 그녀를 달랬다고 했다. 하지만 그 언니는 어른이 아니었다. 언젠가 비가 오기 전 아주 흐린 그 날, 그녀는 그 날의 날씨를 얼굴에 잔뜩 담아 술을 마셨다. 소주가 두 병 정도 없어지자, 그녀는 엉엉 울었다. 그 언니가 자기 험담을 하고 다닌다고 했다.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다며, 그녀는 정말 펑펑 울었다. 나는 어쩔 줄 몰라, 그저 묵묵히 그녀가 내뱉는 푸념을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소주잔을 테이블에 팍 내리치면서 야 넌 뭐 그런 사람이랑 어울리고 다녔냐 라고 화를 냈다. 그러자 그녀는 놀란 토끼 같은 눈으로 나를 끔뻑 쳐다보고는 왜 너까지 그러냐며 오히려 나한테 화를 냈다. 나는 소심하게 사과를 했고, 우리는 첫차가 올 때까지 술을 마셨다. 아마 그 날이지 않나 싶다. 그녀와 가까워진 날이.

그녀는 이따금 나와 통화하는 걸 즐겼다. 우리는 한 번 통화하면 한 시간 이상 통화했다. 뭐 그렇게 할 말들이 많은지, 아무리 말해도 끝이 없었다. 이건 비밀인데, 나는 그녀와 통화할 때 없는 얘기를 지어내서 말한 것이 좀 많다. 하지만 뭐 어때. 마중물이라고 생각하지 뭐. 그래, 내가 지어낸 얘기는 우리 대화의 마중물이었다. 더 많은 얘기가 뿜어져 나올 수 있게 할 마중물. 언젠가 그날도, 휴대폰이 한 여름 아스팔트처럼 뜨거워질 때까지 나는 그녀와 통화를 했다. 통화 말미에, 그녀는 나에게 영화를 추천해줬다. 그 영화는 라라 랜드. 평소에 그녀는 홍상수를 예찬하는, 그러니까 그런 것에 서툰 나에게는 좀 대단한, 씨네필이었다. 그런 불륜남이 뭐가 좋냐고 물어도 그냥 좋단다. 그런 그녀가 내가 알 만한 영화를 추천해줬다. 자기는 벌써 두 번이나 봤다고, 나랑 통화를 끝내면 당장 한 번 더 보고 잘 거라고 그러니 너도 통화 끊자마자 꼭 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나는 그 으름장을 무시할까도 생각해봤지만, 이미 영화의 삼분의 이 지점 정도를 보고 있었다. 다음 날, 그녀를 만났더니 나에게 영화를 봤냐고 물었다. 나는 봤다고, 근데 남자 주인공이 너무 불쌍하다고 말했다. 여자 주인공은 떵떵거리면서 행복하게 잘 사는 거 같은데, 남자 주인공은 기껏해야 재즈카페 하나 차린 게 전부지 않냐고 말했다. 그녀는 아니야 분명 세바스찬이 미아보다 더 행복할 거야 라고 말했다. 정말 그럴까. 마지막 미아를 바라보며 보낸 그 눈빛은, 떠나간 사랑에 대한 애절함이 아니라 떠나보낸 사랑에 대한 고마움인 걸까. 그게 맞다면 세바스찬은 분명 미아보다 행복할 거야.


나는 스무 살의 예리하고 위태로운 한 해를 마치고 휴학을 했다. 스무 살의 삶은 생각보다 어려워서, 나는 그 시간을 어리숙하게 다뤘다. 그 해 마지막 날, 제야의 종을 들으며 내 스물한 살의 삶은 이것보다 능숙하길, 모든 것들에 좀 둔감하길 바라며 휴학을 결심했다. 얼마 후 휴학 신청을 마치고 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휴학을 했다고, 그래서 고향에 내려가 있어야 할 거 같다고. 그녀는 아쉽다는 듯이 한숨 섞인 안타까움을 전파에 실어 보냈다.

휴학생의 삶은 보잘것없었다. 나는 집 근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딱 그뿐이었다. 토익이니, 자격증이니, 공모전이니, 그런 것들을 할 자신이 없었다. 그냥 돈을 좀 벌어두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돈으로 여행을 가든, 갖고 싶은 것을 사든, 비싼 음식을 먹든, 아무튼 돈을 모으면 도움이 되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그나마 그 보잘것없는 삶에도 뭔가 특별한 점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내가 연애를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착하고 예뻤다. 별 볼일 없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 줬고 나는 싫지 않았다. 사귄 이후, 나는 부단히 애썼다. 언젠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여자들은 어떤 선물을 좋아하냐며 물어보고, 어느 날 뜬금없이 꽃을 주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야 라는 대답을 듣고 그 사람에게 꽂을 선물 해주었다. 그리고 기념일 때 어떤 선물이 괜찮을까라고 또 그녀에게 물어보고, 그중 그 사람에게 제일 필요할 만한 걸 선물해주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짜식 그래도 제대로 된 연애를 하나 보네 라며 낄낄거렸다.

나는 그 사람이 좋았다. 사랑했냐고 물어보면 잘 모르겠는데, 좋아하는 건 분명했다. 그러던 화창한 어느 날, 그러니까 만난 지 백이십사 일이 되던 날, 그 사람은 헤어짐을 통보했다. 내가 뭘 잘못했니, 아니면 이제 날 더 안 좋아해서 그런 거니라고 묻자 둘 다라고 했다. 자세한 건 네가 직접 알아내란다. 이후, 나는 한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별을 달래주는 노래들을 잔뜩 들으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려댔다. 가끔, 친구들이 방에서 끌어내 술이라도 마시면 난 늘 거나하게 취해 책상에 머리를 처박고 흐느꼈다. 그게 이별의 슬픔 때문인지, 나에 대한 모종의 미련함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그랬다. 시간이 약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이주 정도 지나자 방 밖을 활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쯤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요즘 도통 연락이 없었냐며, 뭔 일 있냐며 물었다. 나는 헤어졌다고, 그래서 연락을 못했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어우 청승맞아, 이별이 대수냐 라며 그녀는 날 구박했다. 그러면서 너 헤어지니까 내가 애인이 생기냐며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녀의 애인이라. 날 만나고 난 이후 처음 사귀는 애인이다. 그녀의 입에서 애인이라는 단어가 튀어 오르고 나서부터 나는 가슴 깊이 알 수 없는 이물감을 느꼈다. 무언가 얹힌 느낌. 감정이 체한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그녀에게 연락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그녀의 카톡 프로필을 누르고는 볼품없는 궤적을 그리며 1:1 채팅을 누르지 못했다. 또 그녀의 작은 변화에도 일일이 화들짝 놀라곤 했다. 물론 그건 그녀가 아니었지. 다 그녀의 분신이었으니. 인스타, 페북, 카톡. 다 그녀지만 그녀가 아니었으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그녀 역시 나에게 하는 연락의 빈도가 현저히 줄었다. 아마 그 애인 때문이겠지. 하지만 난 분명 그녀의 소식을 듣고 있었다. 오늘도 역시 좋아하는 연어 덮밥을 먹고 그 카페에 갔다. 또 그 자리에서 찍은 새로운 셀카를 올렸으니까. 안 봐도 뻔하다. 애인과 무슨 얘기를 할까. 그 언니? 홍상수? 라라랜드? 이 중 하나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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