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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길 May 01. 2022

[소설] 엄마의 결혼식

나는 결혼식에 가지 않을 거야.

할매는 이번주, 지혜의 결혼식이 열릴 거라고 했다. 그래도 결혼식에 참석해야 하지 않겠냐며 공주로 내려오라 했지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굳이 지혜의 결혼식에 참석해야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 그러니까 장래희망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생겼을 때 내가 처음 가진 꿈은 수녀였다. 할매를 따라 갔던 성당에서 사람들은 신부나 수녀에게 늘 공손했다. 할매도 마찬가지였다. 여자는 신부가 될 수 없다는 할매의 말에 잠시 실망도 했으나 꿩 대신 닭이라고, 수녀라도 되어 사람들의 존경을 사겠다는 포부를 가졌다. 수녀가 되겠다는 내 말에 할매는 좋아했지만 삼녀는 다른 꿈을 생각해보라고 했다. 사람은 태어나 결혼을 해야 하고 아이도 낳아봐야 하는 거라고, 자기는 딸이 그런 평범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릴 적 수녀를 꿈꿨던 나는 성인이 된 이후 종종 사주를 보러 다닌다. (할매가 이 사실을 알면 지랄한다 욕하면서도 사주 내용을 궁금해할 것이다.)

언젠가 용하다고 추천받은 사주집에서 역술가는 내게 삼녀의 생년월일을 물은 적이 있다. 삼녀의 남편 자리에 남자 대신 딸이 있다며, 딸이 고생 꽤나 하겠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때 그 역술가가 순 엉터리라고 느꼈다. 지금 삼녀의 곁에는 내가 없기 때문이다.


삼녀는 내게 종종 자신의 남자친구를 소개했다. 굳이 친한 친구임을 강조했지만 아저씨들이 내게 베푸는 호의를 보면 삼녀와 그의 관계가 단순한 우정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뭐가 됐든 상관없었다. 나는 삼녀에게 있는 애인의 존재가 좋았으니까. 연애를 할 때 삼녀는 덜 신경질적이었고, 내게 관심을 덜 가졌으며, 의지도 덜 했다.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 잦았고, 종종 애인이 사준 맛있는 것들을 사들고 들어왔다. 그러니까 삼녀가 연애를 할 때 나는 훨씬 자유로워졌고, 가끔씩 떨어지는 콩고물을 얻어먹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반면 연애를 하지 않을 때 삼녀는 나만을 바라봤다. 밖에서 있었던 일들을 말하고, 남들 욕을 하면서, 때로는 나를 안고 울기도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입을 다물었으므로 삼녀는 자주 딸의 무뚝뚝함을 한탄했다.


언젠가 삼녀의 두번째 결혼식에 참석한 적도 있다. 삼녀는 결혼할 사람이라며 못생긴 남자 하나를 데려왔는데 할매는 인물이 별로라면서도 새로운 남자 식구가 생긴다는 것에 짐짓 신난 눈치였다. 삼녀의 결혼식날 나는 검정색 원피스를 입고 신부측 하객석에 앉았는데, 좋아하는 연어 초밥을 실컷 먹은 것 말고는 딱히 기억에 남는 게 없다. 이후 삼녀는 못생긴 남자와 그의 아들 집에 들어갔고 나는 할매와 함께 살았다. 일년쯤 지났을 때 삼녀는 종종 우리집에 왔고, 그 횟수가 잦아지더니 이내 눌러앉았다. 두번째 결혼도 실패의 종지부를 찍은 셈이었다. 한동안 삼녀는 연애를 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어서 삼녀에게 새 남자친구가 생기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때까지도 삼녀는 수녀라는 내 장래희망을 탐탁치 않아했는데 나 역시 수녀보다 존경을 얻을 수 있는 직업이 많다는 걸 깨달은 이후였으므로  인문계 여자 고등학교와 서울의 사년제 대학교를 졸업한 후 교사가 되는 삶을 택했다. 임용고시에 합격했을 때 삼녀는 이제야 자기 인생이 폈다며 좋아했으므로 나는 어쩐지 불쾌한 기분이 들었지만 집안의 평화를 위해 굳이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내가 교사 생활에 적응을 시작할 무렵, 삼녀는 이름을 바꿨다. 촌스러운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지혜라는 이름을 들고 왔는데 나는 그 이름이 삼녀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도 삼녀를 삼녀라고 부른다. 아마 삼녀의 애인들은 삼녀를 지혜라고 부를 것이다. 삼녀는 지혜라고 불리길 원하니까.


삼녀가 연애를 한 것처럼 나도 학창시절부터 종종 연애를 했다. 삼녀는 내가 도통 연애를 하지 않는 고지식한 아이라고, 연애도 공부인데 남자를 몰라 큰일났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다. 자신은 자식의 연애에 관대한 어른이라는 듯 자랑스러운 기색이었지만 나는 삼녀가 그렇게 관대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굳이 연애를 한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삼녀가 세번째 결혼을 하겠다며 남자를 데려왔을 때 나에게도 해수가 있었지만 삼녀처럼 결혼을 염두하고 있지는 않았다. 나는 평생 한번이나 할 수 있을까 하는 결혼을 삼녀는 벌써 세번 한다는 게 신기했다. 할매는 동네 창피하다며 조용히 서류 도장이나 찍으라 했지만 삼녀는 굳이 드레스를 입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조촐하게라도 식을 올리고 사람들에게 축하받고 싶다며, 평생에 다시 없을 이벤트인데, 결혼은 그래야 하는 거라고 했다. (할매는 염병한다고 했지만 나는 삼녀는 네번째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지는 않구나 생각했을 뿐이었다.)

삼녀의 세번째 남편(이 될 사람)은 할매에게 줄 홍삼세트와 나에게 줄 목걸이를 가져왔다. 삼녀와 할매는 남자의 세심함을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지만 노인에게 홍삼, 청년 여성에게 목걸이처럼 전형적이고 재미없는 선물은 없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래. 철이 없고 고집이 센데 애가 여려. 잘 부탁 좀 하네.”

“엄마는!”

할매는 자꾸만 딸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반복했고 삼녀의 못난 점을 하나씩 꺼내며 남자를 추켜세웠는데 그 때마다 남자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저도 부족한 게 많아요. 지혜씨한테 져주는 게 이기는 거죠.”

사과를 깎는 삼녀 옆에서 자꾸만 발을 만지는 남자의 손이 거슬린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할매는 이제야 삼녀가 제대로 된 남자를 데려왔다며 반가워했다. 첫번째 남자는 능력이 없었고 두번째 남자는 무뚝뚝해 걱정이었는데 세번째 남자는 돈도 제법 있고 인상도 서글서글한 게 마음에 쏙 든다고 했다.


“어머님이 결혼을 하신다니. 기분이 어때?”

“기분?”

해수가 물었을 때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눈알만 데굴데굴 굴렸다. 딱히 기분이랄 게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결혼한다면 기분이 좀 다를까?”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

해수와 나는 한동안 허공을 응시한 채 아무 말이 없었다. 해수와 내가 살아있는 동안 결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굳이 해수와 내가 동시에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 해수는 해수의 애인과, 나는 나의 애인과 결혼하는 미래라도 상관없다. 삼녀가 하는 것처럼 결혼식을 올리면, 식을 올리지 않아도 좋으니 혼인신고를 하면, 그래서 서로에게 동반자가 있다는 안정이 생기면 좋겠다.

새삼 삼녀가 부러웠다.

어느날 삼녀는 내게 전화를 걸었다.


“너 선봐. 선자리 알아봐줄게.”

삼녀답지 않은 단호한 말투.


“갑자기 웬 선이야? 결혼할 생각 없어.”

삼녀답지 않은 침묵.


“너 여자 만나니?”

다시 침묵.


당연히 공주에 있을 줄 알았던 남자가 어째서 서울 한복판에 있었는지, 하필 해수와 손을 잡고 가벼운 입맞춤을 하던 순간을 보았는지 나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지혜는 창피하다고 했지만 나는 어째서 나의 연애가 지혜에게 창피할 일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도 아닌 지혜에게, 다른 사람도 아닌 지혜라서.


할매는 이번주, 지혜의 결혼식이 열릴 거라고 했다. 큰 일이 없는 한 지혜는 남자와, 그러니까 해수와 나의 입맞춤을 목격한 그 남자와 결혼할 것이다. 할매는 그래도 결혼식에 참석해야 하지 않겠냐며 공주로 내려오라 했지만 나는 내려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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