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 소설쓰고 앉아있습니다.
말 그대로 맘대로 살고 있다.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하는 뒷생각 없이 시한부 선고라도 받은 사람처럼. 퇴사를 하고 이곳에도 풀어놓을 수 없는 이러저러한 일들이 많았지만 그건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해보기로 하고. 지금 비밀얘기처럼 이곳에라도 한번 말해보고 싶은 건, 내가 소설을 쓰고 있다는 거다.
소설이라니. 내가 말하고도 좀 머쓱하고 우스워 웃는다. 뒤늦게 공무원도 때려친 마당에 이제와서 누군가의 평가 따위에는 정말 조금도 신경이 쓰이진 않지만, 그럼에도 이 일을 주변에 알리지 못하는 이유는 다 그들 때문이다. 내 소식을 들을 그들이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 가슴이라도 답답해질까, 나를 향해 적당한 말을 고르느라 수고라도 할까, 난 그런 게 걱정이 된다. 눈치 빠른 내가 상대의 답답함과 수고를 알아차리는 일도 사실 피곤한 일이고. 내가 조금 더 어렸더라면 성공에 대한 갈망과 실패나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숨기는 이유가 됐겠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야말로 '이것도 저것도 다 신경쓰기 귀찮아서'가 이 비밀스런 삶의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사실 공무원으로 살 때도 비밀스러운 삶을 살긴 했다. 담배를 피우고, 클럽도 다니고, 타투도 하고, 기타 등등. 이런 개인의 취향이 공공연하게 모욕의 대상이 되어 입방아에 오를 때도 나는 모범인간들과 맞서 싸우는 대신 내 인생 속 유래없는 과묵한 자아를 꺼내쓰고 살았다. 그랬으니 그 과묵하고 비밀스런 삶이 얼마나 참을 수 없이 숨막히고 비참했는지 지금 떠올리면, 공포영화처럼 오싹한 나날들이었다. (물고기가 산에 던져졌다해서 산을 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내 이전 동료들에 대한 악감정은 없다는 점은 명확히 하고 싶다.)
퇴사 전이나 후나 비밀스러운 삶을 사는 건 마찬가진데, 지금은 아무도 모르게 방에 처박혀서 소설 한 장면을 쓰느라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고 머리를 쥐뜯고 있자면 가끔 실실 웃음까지 난다. 재능을 떠나서, 나란 인간은 원체 혼자있는 걸 좋아하고, 공상을 좋아하고, 지껄이기 좋아하니.... 이거 정말 천상 나를 위한 일 아니겠는가. (이 일로 밥벌어 먹고 살 수 있는지는 조금 더 나중에 생각해보기로 하고...)
소설? 소설쓰고 앉아 있네 라는 조롱의 목소리가 어디서 들리는 것도 같은데, 더 시원하게 조롱할 미끼를 던져 주자면, 나는 요즘 내친김에 치앙마이까지 와서 한량의 삶을 본격 즐기고 있다. 나는 징하게도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고ㅡ여행도 상품인 시대에 누군들 안 그러겠냐만ㅡ 일할 때도 연가를 붙이고 붙여 2주씩 최소 반기에 한 번은 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그렇게 여행을 다니면서도 다시는 내 인생에 장기여행은 없겠지 하고 슬퍼했었는데, 세 달이라니. 감개무량하다. 이건 여행이 아니라 장기체류일 뿐이야. 하고 볼멘 소리를 했던 어제의 나는 참 깜찍하기도 하지....인간은 어쩜 이리 감사함을 잘 잊는지.
브런치에는 좀 더 성의 있게 쓴 에세이만 올리고 싶었어서 많은 글을 올리지 못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어차피 봐주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 같아 힘을 빼고 써 봤다. 황홀한 백수의 시간들을 조금은 더 많이 기록해 놓아야 할 것 같아서. 많은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꿈과 미래를 위해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는 걸 안다. 그런 사람들이 보면 내가 사는 모습이 부럽거나, 얄밉거나, 한심할 거라는 사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내 얘기를 듣고 저렇게도 사는 구나, 정도로만 생각해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치앙마이 생활기도 써볼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