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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뫼르달 Jan 30. 2024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J에게

 

 

 오후의 문학 시간이었다. 젊은 여교사는 동경에 대하여 설명했다. 동경이란 가보지 않은 곳을 향한 그리움이라고. 돌이켜보면 그것이 과연 올바른 설명인지는 모르겠다. 지금껏 무수히 많은 것들을 동경해왔다. 그것이 무슨 감정인지도 모른 채로. 분류를 정하기 어려운 물건을 종량제 봉투에 슬쩍 담아버리듯, 나에게 동경이란 정체 모를 감정들이 향하는 쓸쓸한 종착역이었다. 많은 이들을 그렇게 떠나보냈다. 사랑도 슬픔도 추억도 악몽도 아닌 곳으로.



 

 뒤죽박죽으로 섞여든 삶에서 끝끝내 살아남은 동경의 의미는 그것뿐이었다. 가보지 않은 곳을 향한 그리움. 

 

 하루키, 피츠제럴드 같은 진부한 소설이나 왕가위의 오래된 영화 따위에서 그걸 배웠다. 겪어보지 않은 일들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것. 살아보지 않은 시대를 가슴에 품게끔 하는 것. 사랑할 수 없었던 사람을 사랑해보는 것. 누군가의 토사물을 반추해야만 비로소 무언가를 배울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건 단지 빈약한 삶의 경험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가보지 않은 곳은 단지 먼 과거나 허구의 세계, 아득히 깎아내린 철학의 낭떠러지에만 한정되는 주소지가 아니었다. 10월 14일 오후 4시 5분, 나는 지금 이곳에 처음 도착했다. 이미 막 떠나온 참이지만. 뭐 대충 그런 식으로 부풀려가면 이야기는 끝이 없겠지.


 존재란 필연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저 정처없이 거리를 쏘다니는 것이다, 길 잃은 개마냥. 목줄에 예쁜 글씨로 연락처를 달고 있는지, 상처를 입어 비틀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 우리 모두 아주 낯선 곳에서 죽게될 것이다. 이따금 서로의 몸을 부비거나 죽일 듯이 으르렁대기도, 언 땅을 마구 파헤치기도 하겠지만. 


 문명은 울타리와 함께시작되었다고 했던가. 멋진 말이다. 영혼의 울타리, 이성과 본능을 나누고 두려움과 분노를 나누는 굴레에서 영혼의 시대는 시작되었을 것이다. 사랑, 눈물, 육신, 영혼- 밥먹듯이 들먹이면서도 정작 제대로 짚어낸 건 하나도 없는 듯싶은 그런 분류들이 인간을 만들었다. 아무것도 없던 시절이 그립다. 무의미한 신음이나 괴성만이 있던 시절. 단말마의 비명만이 유언이 되던 시절. 완벽한 허무의 시대. 살아본 적 없는 그 시대가 그립다. 그곳에서는 외롭지 않았을까. 말을 짓고 선을 긋기 시작하면 도무지 끝을 맺을 수 없다. 

 

 인간은 모든 것을 편리하게 보기 위해 세상을 분류하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가 본질적으로 세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듦을 그들은, 알았겠지? 그래, 분명 알고서도 그랬을 것이다. 종종 인간이 복잡함을 선호하는 것인지 편리함을 선호하는 것인지 정말로 알 수가 없다는 생각도 한다. 편의점에서 마실 맥주를 고를 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뱉을 적당히 지독한 말을 고를 때. 




 오후의 문학 시간이었다. 여교사의 머리는 윤기가 흐르는 적갈빛이었다. 하늘은 무척이나 푸르고. 나는 눈을 감고 공상에 잠긴다. 그리고 동경이라는 말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언젠가 그 모든 것들을 그리워하리라는 사실도 분명 알고 있었다. 연필이 부러졌던 것도 기억난다. 매일같이 연필을 부러뜨리면서도 나는 볼펜을 싫어했다. 언제든 지워버릴 수 있는 글만을 남기고 싶었던 걸까. 


 분류를 정하기 어려운 당신의 이름을 언제든 버려도 좋을 것들과 나란히 둔다. 당신을 무척이나 동경해왔다고. 아무것도 아닌 당신을 한 번은 안아보고 싶었다. 내가 당신을 조금 빨리 만났거나, 늦게 만났더라면 나는 당신을 사랑할 수도 있었다. 그래, 그 정도면 충분했다. 당신에게 내어줄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안녕히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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