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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확신만이 내가 제대로 살 수 있는 가능성의 지표가 된다.
절망 또한 유독한 습관일 수 있으며, 희망 그 자체는 낙관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희망에 매달리는 일은 그리 낙관적인 것이 아니다.
새들의 비상은 오직 공기의 저항 때문에 가능하다는 사실.
너무도 당연한 것은 쉽게 잊혀진다. 삶이 그렇다.
생각해보라,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이성복 시인,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