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관의 인권을 말하다 (1)

by 키다리 아빠

요즈음 우리 사회 개혁의 물결에서 화두 중 하나는 우리 삶의 구석구석 켜켜이 쌓여있는 갑질 청산에 있을 것입니다. '미투 신드롬'도 갑질의 한 형태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모든 갑질을 퇴출하는 의식의 최상위에는 '인권(human rights)'이 자리 잡고 있겠지요.


지금은 누가 뭐래도 인권의 시대입니다.

직장 내 갑질이 일상화되던 시대에서 이젠 갑질의 폭로가 일상화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제가 공무원에 첫발을 내디딜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면 온갖 갑질이 당연한 관행처럼 만연되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업무를 하면서 맞딱뜨리는 상관의 수준이하의 해괴한 지시명령, 억지로 참석해야 하는 회식자리에서 벌어지는 온갖 추태, 상급자의 사적인 지시에도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수많은 상황들은 그때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여겨져서 그런지 몰라도 그런 행태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시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과거의 그런 관행이나 정서는 지금은 명백히 틀린 시대가 된 것을 하루하루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갑질이 틀린 것으로 제도로 정착이 돼가고 있는 것은 아마도 '을'의 반격과 '갑'의 권력 내려놓기라는 양방향에서 시작되었다고 해야 맞는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갑질'만 있을까요? '을질'도 있습니다. '을질'은 을의 몸에 갑이라는 변종 바이러스가 들어온 것으로 결국 '갑질'과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것이겠지요. 매사 불만에 매사 트집잡기는 위치만 을이지 갑이 하는 행태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일반 회사 같으면 감히 을질이 어렵겠지만 특히 공무원은 일하라고 부여한 신분보장이라는 특권을 악용하여 자신의 안위나 복지부동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 피해는 결국 고스란히 옆의 다른 동료가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교도소에는 교도관이 아닌 또 다른 을이 존재합니다. 바로 수용자입니다. 하지만 수용자가 마냥 을로만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요즘은 시대 분위기에 부응하여 상관의 갑질은 줄어드는 반면에 인권 만능을 주장하는 수용자의 을질은 훨씬 많이 늘어나는 추세이니 말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교도관은 상관의 갑질과 부하의 을질에 더하여 수용자의 을질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좋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좋은 기운으로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이 행복해지지만 그 반대로 나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악한 기운이 몸과 마음을 스트레스로 지치게 만들어 삶이 피폐해진다는 것은 공리(公理) 일 것입니다. 자신이 일하는 곳이 후자와 같다면 바로 그곳은 지옥이나 다름 아니겠지요. 그중에 교도소가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매일같이 수용자의 우울, 짜증, 분노, 적개심, 고독, 불신 등 인간 감정이 온갖 부정적 감정으로 점철된 곳. 교도관은 이곳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루의 절반을 이곳에서 보내다 보니 수용자와 함께 반(半) 징역살이를 하고 있는 셈이지요. 이곳에서 수용자의 감정과 무관하게 평정심을 유지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교도관이라면 이곳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수용자와 연결되어 있을 테니까요.




아마도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은 누군가의 헌신의 결과일 것입니다.

뜨거운 불구덩이와 질식할 것 같은 유독가스 연기 속에서 일하는 소방관, 흉악범의 폭력에 목숨을 걸고 제압하는 경찰관, 공장의 컨베어벨트 구간에서 쉴 새 없이 작업하는 노동자, 매사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건설현장 작업자, 감정노동에 힘들어하는 매장 종업원까지 우리 사회 곳곳에서 헌신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그중 교도관도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아가 교도관이라는 개별자인 한 사람으로서 일을 하면서 겪는 보람과 긍지뿐만 아니라 지금 교정현장에서 교도관이 겪는 유무형의 고충의 실존을 간과해서는 전체적인 맥락을 알 수 없기에 '수용자의 인권', '범죄 피해자의 인권'에 더하여 교도관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고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지금까지는 미지의 외딴섬처럼 존재했던 '교도관의 인권'을 말하는 것은 꼭 필요한 작업일 것입니다.


그동안 수용자나 그 반대쪽 범죄 피해자의 인권은 자주 다루어져 왔으나 교도관의 인권은 대개 교도관 자체를 개별자인 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공권력이라는 추상적 관념으로 이해되어 온 관계로 수용자와 대비되어 교도관은 인권의 침해자의 방식으로만 우리들에게 이해되어 온 측면이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도관의 인권을 말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일방적 관념으로는 현실적으로 수용자와 교도관 간에 밀접하게 상호 영향을 미치는 복잡한 현상을 설명할 수 없게 만드는 한계가 있습니다. 교도관에 대한 추상적인 공권력이라는 관점만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교도관 개개인의 인권적 관점까지 포괄적으로 바라보아야 수용자의 인권은 물론이고 범죄 피해자의 인권까지 더욱 확연하게 포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용자의 인권, 범죄 피해자의 인권 그리고 교도관의 인권이 외따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있습니다. 이들의 인권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기도 하고 때론 심각한 갈등을 일으키면서 말입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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