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현재의 수용자에 대한 비약적인 인권 향상은 반대급부로 교도관의 인권 하락을 담보한 측면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일선 현장에서 직면하는 가공할 만한 흉포한 수용자를 대적하기에는 무기대등의 원칙이 깨진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이니 말입니다. 현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사랑으로 교화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러라고 피 같은 국민 세금으로 비싼 월급 주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당위(Sollen)와 존재(Sein)의 간극이 너무 벌어진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수용자에 대해 범죄의 책임을 판결하는 우리나라 법원의 기본적인 입장은 그가 부담해야 할 책임은 감옥이라는 물리적 장소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신체의 구속이라는 자유의 제한에 있다고 합니다. 신체의 구속이라는 자유의 제한 이외에는 어떠한 인권 침해도 없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신체의 자유의 제한은 그것만으로 모두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감옥이라는 공간은 신체의 자유의 제한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매우 복잡 다양한 수감자의 신체적, 정신적 폐해를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될 테니 말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그렇다면 우리 법원은 수감자의 신체적, 정신적 폐해도 그 자신의 죄책의 일부이고 자신이 마땅히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판단한다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는데 수용자를 처우 관리하는 대표적 법률인 우리 '형집행법'은 그 폐해에 대해 수감자 자신의 자기책임이 아니라 국가책임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니 말입니다. 사실상 교도관이 하는 모든 일들이 바로 이러한 수감자의 신체적, 정신적 폐해에 대한 문제 해결 양식과 직간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것을 보면 더욱 확연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형집행법을 두루 살펴보면 수용자에 대해 입소부터 출소할 때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최대한의 인권을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기본적으로 의식주가 국가부담이고, 의료, 건강, 환경뿐만 아니라 수용생활 중에 타살이 아닌 명백하게 지병으로 사망하거나 자살까지도 국가책임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감옥이 아닌 일반 사회에서도 병사나 자살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인데 감옥이라는 환경의 특성상 수감자에게 미치는 악영향이 그 보다 더 심각할 것이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도 지나치게 국가책임에경도되어 있다는 생각입니다.
아무리 죄를 짓고 수감된 수용자라도 자살이나 병사를 방지하기 위해 인간적으로 살리려는 노력을 떠나서 이를 두고 교도관 각자에게 너무 과도하게 예방을 강조하고 사후 책임을 묻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범죄자를 처벌하는 감옥이라는 공간에서 아주 건강하게 편안히 잘살다 나가는 것 자체가 본질적으로 모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례로 다수 서구 선진국에서는 수용자 입소 때부터 전문가 집단이 자살방지 등을 위해 정신질환 관련 심리상담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실제 수감자의 자살에 대해 우리나라처럼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야간에 수시로 순찰을 도는 예방책임이 없는 나라도 많습니다. 아예 프라이버시 보호 차원에서 수용된 거실 안을 볼 수 없게 만든 구조에서 당연히 야간에는 자살방지를 위한 순찰근무도 없으니 자살은 전적으로 수용자 자신의 책임이라는 취지일 것입니다. 우리 교도소가 주야간에 걸쳐 수용거실을 수시로 순찰하며 주요 자살 우려 수용자들은 거실 안에 CCTV를 설치하면서까지 감시하는 것과는 상당히 비교가 되는 대목입니다.
우리 교도소는 24시간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하나부터 열까지 수용자의 신체적 동작은 물론이고 심리적 동선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을 통제하는 공간입니다. 통제에 따르지 않고 도리어 폭력으로 반항하는 것에 대응하는 것도 힘이 부치는 일이지만 이 차갑고 음산한 공기가 감도는 공간에서 악마 같은 군상들이 내뿜는 불쾌한 기운을 온몸으로 받으며 매일 함께 생활을 한다는 자체만으로도 교도관의 자존감을 지켜내기가 힘이 든다는 것을 현장에 있으면 여실히 느낄 수가 있을 것입니다.
통제의 주체는 교도관이 되고 그 대상은 수용자가 되겠지만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나면 교도관 자신조차도 정신병리학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수용자에게 받은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 등으로 우울증 등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직원이 많고 그러한 원인으로 통계상으로도 교도관의 자살률이 높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교도관의 심리부검을 해보면 아마도 거기에는 인간의 존엄을 무참히 짓밟은 자에 대한 분노와 실망은 인간이 과연 모두 존엄할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와 번민으로, 수용자에 대한 비약적인 인권 향상은 그 범죄 피해자의 인권이 처참하게 유린당한 것이 오버랩되면서 수용자 인권강화 정책에 대한 갈등의 양상으로, 출소 후 끝없는 재범의 반복은 수용기간 중 실시하는 각종 교육교화의 노력들이 모두 헛된 것이라는 냉소적인 시각이 자리 잡고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라도 수용자의 인권, 범죄 피해자의 인권, 교도관의 인권은 절대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문제이고 전체적인 맥락과 균형을 상실한 일방적인 인권의 강조는 오히려 다른 일방의 인권침해와 인권의식에 대한 갈등을 불러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가령 '수용생활에 쾌적하고 안락한 신축 교도소'와 '악취가 진동하고 쥐와 벌레가 득실거리는 지은 지 40~50년 이상 된 교도소'로 비교하면 의미가 쉽게 다가올 것입니다. 대체로 전자는 수용자가 선호하기 쉽고, 후자는 범죄 피해자가 선호하기가 쉬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교도관은 어느 교도소를 선호할까요? 교도관들 사이에 '물리적 시설 환경이 좋으면 수용관리의 절반은 해결된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수용환경이 좋으면 수용자의 불평불만이 상당히 줄어들고 교도관 자신도 좋은 환경 속에서 근무해서 좋으니 일단은 전자를 선호하겠지요. 하지만 반대로 좋은 수용환경에서도 피해자에 대한 일말의 반성은커녕 오히려 적반하장 격으로 대들기 일쑤에다 요즘 교도소는 살만하다며 출소 후에도 계속 재범으로 다시 입소하는 것을 보면 물리적 환경 개선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교정행정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 환경개선에서 더 나아가 눈에 보이지 않는 '수용자에 대한 과도한 행동 통제와 보안관리 위주의 처우 시스템'에 중대한 변화가 필요한 시기에 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기존의 수용자 처우 시스템은 역으로 고스란히 그 스트레스가 교도관에게 되돌아오고 다시 그 스트레스는 수용자를 향해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용자도 힘들고 교도관도 힘든 적대적 공간에서 과연 교육교화가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요? 끝없이 몸과 마음을 소진하게 만드는 소모적인 성실함이 있을 뿐입니다.
감옥이라는 공간이 감시와 처벌 기능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그것을 필요 최소한으로 그치지 않고 더 중요한 다른 기능까지 저해하는 압도적인 것으로 계속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다면 물리적 환경개선은 그저 환경정리일 뿐 좀처럼 모두를 위한 인권 향상의 시너지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입니다. 나아가 수용자에 대한 과도한 행동통제와 보안관리 위주의 근대적인 교정처우 시스템이 구조적으로 혁신되지 않으면 지금 현재 교도소 안에서 시행하고 있는 각종 수용자에 대한 교육교화 프로그램의 효과를 감소시키고 출소 후에 안정적인 사회정착까지도 어렵게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편으로 수용자로부터 받는 교도관의 업무 스트레스를 치유하는 심리치료 프로그램이 한계를 보이는 것도 이러한 구조적 악순환과 무관해 보이지 않습니다. 이를 극단적으로 말하면 본질적으로 병 주고 약 주는 구조(structure)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심리치료프로그램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 테니 말입니다. 수용자와 교도관 상호 간에 미치는 스트레스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근대적인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안타깝게도 우리 교정행정의 수많은 노력들이 표층적 효과에 머물고 말 것입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