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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령 Dec 16. 2020

아들! 말 안 하면 모르지

말 안 해도 알지?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1. 해야 할 말

 교통사고가 났다.

차체가 다 깨지고 찌그러지고 바퀴마저도 터졌다. 찰나의 순간, 살아온 날들의 장면이 영화에서처럼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소식을 들은 남편이 놀라 다른 사람에게 운전을 부탁해서 달려왔다. 검사를 마치고 입원실에 들어왔을 때 뜻밖에도 아들의 전화를 받았다.

평소 내가 없어도 잘 찾지 않던 아인데. 어디냐고 물었다. 살짝 긴장했다. 아이가 놀랄까 봐. 아무 일 없는 듯 잠깐 밖에 나왔다고 했다.

그러다가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짧은 침묵을 뒤로하고 나는 꼭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아들!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2. 굿바이 어머니

 남편과 결혼 당시 시어머니는 암이 이미 온몸으로 전이된 상태였다. 급하게 결혼식을 했다. 놀랍게도 시어머니는 마지막 온 힘을 다 해 결혼식에 참석하셨다.

내가 시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은 스무날쯤 된다. 시어머니는 바닥이 미끄러울까 시누이에게 부탁해서 예쁜 실내화를 준비해 놓으셨다. 그리고 커피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큼직한 커피 잔도 사놓으셨다. 곳곳에 어머니의 배려를 다 느낄 틈도 없이 55세의 어머니는 운명하셨다.

 원래 말씀이 없으셨던 어머니는 유언을 남기지 못하셨다. 병원에서도 손 쓸 여지없이 병세가 급속히 악화되어 돌아가시기 며칠 전 이미 말문을 닫으셨다.

떠나실 어머님의 마음이 어땠을지, 하시고 싶은 말은 없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머니께... 안타깝게도 남겨진 말도, 전한 말도 아무것도 없었다.

짧았던 그녀의 시간은 선택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내게는 이제 기억의 조각 단 몇 개만 남아 있다. 그러나 나는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선택했다.    

      

3. 내 마음을 전하고 싶어

 아들!

만약 엄마가 좀 일찍 네 곁을 떠나고 없을 때, 문득 엄마가 있었으면 더 많은 사랑을 받았을 거라는 서러운 마음이 드는 날이 있을 거야.

안 그랬으면 좋겠어.

엄마는 너와 함께 한 시간 동안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사랑을 퍼붓도록 다 쏟았으니까.

또 그럴 때가 있을 거야. 엄마를 더 많이 사랑하지 못했다는 후회가.

그런 마음도 안 가졌으면 좋겠어.

나는 너를 키우며 매 순간 가슴 벅차도록 많은 너의 사랑을 받았어. 너로 인해 정말 행복하고 고맙고 감사해.


 감성이 내 말문을 막아 이야기를 다 끝내지 못할까 봐 이성을 내세워 담담하게 이야기를 마쳤다. 중학생이었던 아들은 참을성 있게 들어주었다. 다 듣고는 그저 알겠다고 했다.  

    

4. 에필로그

 스물여덟의 아들은 그날이 어렴풋하게 떠오르지만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애가 터지게 토씨 하나하나, 호흡의 길이도 신중하게 선택해서 전설 같이 오래된 그날의 대화를 재현했다.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 듯 말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이는 기억보다 한 수 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20년 전의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놓치지 않을 선택과 결심이 가능했던 날이었으므로. 그 뒤에도 나는 가끔 이 날을 떠올리곤 했다.

말 안 해도 아는 사람은 독심술을 연마한 도사님들이다.

범상한 우리는 눈빛과 마음에 소중한 말을 담아 두기만 하면 안 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해야 한다.

자주. 잊기 전에.

잔소리만 자꾸 하지 말고.

언제나 사랑해 아들.


근데 아들~

겨울이 되면 머플러 좀 챙겨서 다녀.

잊지 말고. 맨~날 그냥 나가지 말고. 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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