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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령 Mar 01. 2022

탯줄, 그 정지된 시간을 넘어

나는 심한 임신중독증이었다. 출산 직전 몸무게는 100kg가 넘었다.

부종으로 퉁퉁 붇고 호르몬 불균형으로 붉은 발진이 온몸에 퍼졌다.

 

제왕절개술로 출산했다.

마취에서 깼을 때, 양쪽 팔에 혈액주머니가 달려있었다.

수술 중 출혈이 멎지 않아 지혈제를 썼는데도 소용없었다고 했다.

출산 후 사흘이 지나도록 아이를 못 보았다.

아이를 보고 싶다고 했더니 남편은 잘 걷지도 못하면서 링거를 달고 어떻게 아이를 보러 가겠냐고 말렸다.


친정엄마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들어온 간호사가 조금 망설이더니

혹시... 알고 계시냐고 물었다.

무엇을?

느낌이 이상했다.

그래서, 알고 있지만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원래 탯줄은

제대 정맥 1, 제대 동맥 2,

모두 3개의 혈류가 있어야 하는데

내 아이는 정맥과 동맥이

각 하나씩만 있어서...


그동안 아기의 장기가 제대로 형성되었는지 검사하고,

소화기관과 배설기관은 이상 없는지 지켜보고 있었다고 했다.

현재 내 아이는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탯줄 기형인 아이들의 대부분은...


그때,
그 순간
나의 시간이
딱 멈췄다.


탯줄 기형...

어떤 해법을 생각할 수 없는...

멈춘 시간 속에 한참 동안 있었다.


그러다

뭐가 잘 못되었을까? 온갖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그래서 남편은 아이를 못 보게 했던 거였구나.

그동안 그는 혼자서 감당하고 있었구나.

 

일어나 머리를 감았다.

정갈한 모습으로 아이를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작고 여린 아이에게 첫인사를 했다.


의사 선생님은 아이를 3일, 일주일 그리고 1개월, 3개월, 1년. 3년...  

성장에 따른 신체, 인지능력 등의 변화를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고 했다.  


아이는 자랐고 나도 엄마로 성장하고 있었다.

간호사가 말했던 "대부분의 아이들"에 속하지 않았지만 늘 마음이...

 

아이가 다섯 살 때였다.

동네 아이들과 함께 공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이상했다.

아이는 공이 자기 앞으로 굴러오기만 하웃기 시작했다.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었다.

매번 그냥 공이 자기 앞으로 굴러오면 복사 붙여넣기 하듯 웃었다.

그 뜨겁던 여름에 내 몸은 덜덜 떨렸다.


나는
그곳에서  
멈췄던 그 시간과
마주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어깨를 잡고 왜 자꾸 웃냐고 물었다. 떨면서...


"공이 나한테 오는 게 우스워서 웃는데요!

엄마~ 진짜 재미있어요."

하고 씩 웃더니 내 손에서 빠져나가 아이들에게 뛰어갔다.

그것은 마치,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 한 것인데 어찌 홍시라...

그 후, 그곳은 다시 여느 여름의 어느 날이 되었다.

아이가 크도록 그 떨리던 그날이 늘 생각났다.
땀범벅으로 씩 웃으며 내 품을 떠나 세상을 향해 뛰어나가던.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단 한 번도 체벌을 하지 않았다.

육아는 시누이들의 전폭적인 도움을 받았지만

어떻게 시트콤도 아니고 맨날 고요한 날, 거룩한 날이었겠어요.

이성보다 빠르게 욱하며 커지는 내 목소리까지는... 훈육은 필요했고... 아이를 강하게 키우려...

무엇보다 집 근처에는 내 목소리를 품어줄 울창한 숲도 없었고...

음... 제가 도인은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나는 아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려 노력했다.

사람들은 그냥 혼내면 될 일을 가지고 속 터지게 콩만 한 애 이야기를 다 듣고 있냐고 할 정도였다.

나는 아이의 억울한, 슬픈, 자랑하고픈, 칭찬받으려는 이야기들 모두가 다 그 여름날의 이유처럼 소중했다.


아이는 과학고를 나와 18세에 대학생이 되었다.

아슬아슬하게 20대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개발자로, 스타트업을 창업했으며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


그는
씩 웃으며
내 품을 떠나
세상을 향해 나아갔고

그의 시간은
도전과 응전으로
자신의 역사를
계속 만들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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