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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2022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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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저냥 ㅏ랑 May 13. 2022

탐구하는 생활 : 책 10권 + 10문 10답


(아래는 민음사에서 새로 출범을 준비 중인  '탐구 시리즈'의 티저로써 나온 소책자 『탐구하는 생활』에 실린, 내가 책을 쓰면서 영향을 받은 책 10권의 목록과 10문 10답이다. 곧 여러분과 만나게 될 비평집의 티저의 티저라고 생각하고 읽어주시길 바란다. 다른 필자들의 책 목록과 문답이 더 흥미롭고 배워갈 것도 많으니, 소책자를 한 번 구해보시길 권한다...)





영향받은 책 10종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안티 오이디푸스 - 자본주의와 분열증』, 김재인 옮김, 민음사, 2014 (1972) / 지바 마사야, 『너무 움직이지 마라 - 질 들뢰즈와 생성변화의 철학』, 김상운 옮김, 바다출판사, 2017 (2013)

어쩔 수 없다. 나는 언제나 들뢰즈-과타리에게서 무언가를 얻어간다. '현실'이 어떻게 현실이 되는지에 대한 나의 궁금증을 가장 잘 풀거나 역으로 심화시켜준 건 거의 이들이었다. 특히 이번 책에 들어간 각각의 글들은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안티 오이디푸스』의 자장 아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치바의 『너무 움직이지 마라』는 『안티 오이디푸스』로 '제대로' 들어갈 길, 가령 잠재성 찬가 같은 것으로 빠지지 않을 길을 내게 열어줬다는 점에서 함께 거론할 수밖에 없었다. 이 두 권은 내게 있어 하나의 경험으로 인식된다.


제니퍼 M. 실바, 『커밍 업 쇼트 - 불확실한 시대 성인이 되지 못하는 청년들 이야기』, 문현아, 박준규 옮김, 리시올, 2020 (2003) 

여기저기에 흩뿌리듯 발표한 글들을 모으고 다듬다 보면 '누가 이 책의 독자일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번 책의 독자들은 일단 내 또래들이리라 예상하고 있다. (지금은?) 어른이라고 할 수 없는 사람들 말이다. 잠깐, 내가 “어른”이라는 말을 『커밍 업 쇼트』를 읽은 이후 자주 내뱉고 있단 걸 문득 알아챘다. “어른”을 자꾸 입에 올리는 건 오히려 어른이 되는 게 갈수록 어려워지기 때문일 터. 그렇다면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좋은 어른이 되는 건 가능한 일일까? 발랄하게 살면서도 세간의 어른일 수 있을까? 이번에 이런 질문들과 직접 씨름을 벌인 건 아니지만,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이런 질문들을 떠올린다면 더없이 즐거울 것이다.


할 포스터, 『강박적 아름다움 - 언캐니로 다시 읽는 초현실주의』, 조주연 옮김, 아트북스, 2018 (1993)

사상과 사유와 작품이 서로에 대해 엄연히 독자적인 영토라는 건 대강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영토들이 서로를 무어라 인식하는지, 서로 어떻게 엮이게 되며 그 작동 방식은 무엇인지를 각각 구체적으로 포착하는 건 너무 난감한 일이 아닐까 했을 때, 할 포스터를 만났다. 여기서 그는 그런 '과업'을 해낸다. 그 '과업'을 따라가는 게 지난 2년간의 내 목표였다.


카를 마르크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최형익 옮김, 비르투출판사, 2012 (1852)

오늘날 분열과 모순을 사유하려는 연구들이 여기저기 있긴 하나, 이 책의 옆에 두는 순간 거의 대부분이 평범해져버리는 건 아무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역사의 분열과 모순을 치열하게 다루면서 그 스스로도 구조상 지극히 분열적인 텍스트인 이 책은 내게 번번이 표절 대상이 되곤 했다. 농담이 아니다! 당장 「자신을 자신하지 않으면서 자신하기」를 찾아서 읽어보시라.


조운 콥젝, 『여자가 없다고 상상해봐 - 윤리와 승화』, 정혁현, 김소연 ,박제철 옮김, 도서출판b, 2015 (2003)

이른바 '존재론적 전회'가 진행 중인 요즈음에도 '나'/주체라는 개념에 집착하는 데 있어 상당한 용기를 복돋아 준 책이다. 이런저런 시각문화를 가로지르는 숨 가쁜 여정 속에서 (여성적) '나'/주체의 재발견을 위한 곡예를 펼치는 콥젝을 보고 있으면, 그 솜씨와 성실함에 망연해지다가도 나도 모르게 그의 몸짓들을 따라 하려 애쓰게 된다.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배수아 옮김, 봄날의책, 2014 (1998)

글을 쓰다 무언가가 떠오를락 말락 할 때 나는 페소아를 뒤적거리는 편이다. 늘 그렇듯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한참 머무르게 되고, 위안과 각성을 동시에 얻어, 결국 생각을 하게 된다. 가령 이런 문장. "더 깊이 파고들고자 하는 내 욕구가 엄청나게 크고, 그런 욕구 없이는 흥미 자체가 유지되지 않으므로, 욕구를 채움으로써 흥미를 잠재우거나, 아니면 흥미가 저절로 지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250」)


프랑코 모레티, 『세상의 이치 - 유럽 문화 속의 교양소설』, 성은애 옮김, 문학동네, 2005 (1987) / 에드워드 W. 사이드, 『문화와 제국주의』, 박홍규 옮김, 문예출판사, 2005 (1993)

예술은 현실의 반영인가, 아니면 독립적인 표현인가? 모레티와 사이드가 뛰어난 비평가들인 건 이 구태의연한 질문이 가짜 문제임을 각자의 언어로 통렬하게 일러주기 때문이다. 이들은 문학작품이 세계 내의 운동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세계 내의 운동을 자극하는 기묘한 피드백 루프를 사정없이 끄집어내 우리 앞에 던져준다. 2019년 이래 내 욕심은 이 피드백 루프를 더 세밀하고 정교하게 해부하는 것이었다. 당연하지만, 이 욕심이 제대로 실천됐는지에 대한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 될 것이다.


게일 루빈, 『일탈 - 게일 루빈 선집』, 임옥희, 조혜영, 신혜수, 허윤 옮김, 현실문화, 2015 (2011)

사실 나는 게일 루빈을 예전처럼 존경하지 않는다. 보수성과 진부성이 뒤섞인 행동들을 재발견하고 싶어 하는 지금의 나는 루빈의 여러 말들과 불화한다. 하지만 뇌를 향해 던져진 폭탄과 같은 충격은 책을 처음 읽은 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해서, 『일탈』이 없었다면 내가 이번 책에서 천박함을 엄연한 하나의 가치로, 사유의 대상으로 옹호할 수 있었을까 싶어지는 것이다.


유운성, 『유령과 파수꾼들 - 영화의 가장자리에서 본 풍경』, 미디어버스, 2018 (구판)

한국에서 영화에 빠져든 내 또래 중 유운성이 가꾼 영토 바깥에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게다. 이제 영화를 상대하려면 좌표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쟁점다운 쟁점은 따로 있다고 그는 지치지 않고 일갈한다. 거기에 열렬히 동조하든 열심히 반항하든, 영화를 포괄하는 어떤 문화의 '정신적'(폴 발레리) 양상을 파악하고자 한다면 여기를 거쳐 가야 할 터이다.


노다 사토루, 〈골든 카무이〉, 대원씨아이, 2016~ (2015~)

돌이켜보면, 나의 지난 몇 년 간은 이 만화를 실시간으로 접했던 기간으로 정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연재본이 얼마 전에 완결을 맺었다 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다. 〈골든 카무이〉는 내 속에서 맴돌던 몇몇 키워드들을 맹렬히 자극하는 작품이었다. 역사, 자연, 윤리학, 폭력, 책임, 연대, 진정성... 그리고 무엇보다 '만화'. 적어도 이번 책에 있어 〈골든 카무이〉는 주요한 계기였던 것 같다.



10문 10답     


01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 들려주세요

영화 평론을 비롯해 시각문화에 대한 이런저런 글을 쓰고 있습니다. 물론 생업과 병행해서요.   

  

02 책을 쓰고 있는 기분이 어떠신가요

최대한 많은 걸 책임지고 싶은 동시에 최대한 아무것도 책임지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듭니다.     


03 책을 통해 새로 연결되고 싶은 독자는 누구인가요

어떤 문화(적 생산물)에 대해 자신이 느끼는 감흥을 설명하는 데 애를 먹는 이들과 연결된다면 행복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언어를 제공하는 게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04 첫 번째 독자는 누구인가요

연인과 신뢰하는 동료에게 제일 먼저 초고를 보냅니다. 한 사람은 일반 독자이자 편집자의 관점에서, 다른 사람은 비평가의 관점에서 글을 읽어주기 때문에 둘 모두에게서 유의미한 피드백을 얻을 수 있어요.     

 

05 언제 쓰고언제 읽으시나요

시간이 날 때마다 최대한 읽고 씁니다. 불충분한 답변이란 걸 알지만, 공부와 작업을 위해 따로 시간이나 분량을 정해놓는 게 아니라 시간이 날 때 공부와 작업을 하는 편이라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06 글을 쓸 때 가장 도움을 받는 한 가지를 꼽자면

산책입니다. 워낙 산만한 인간이라 의자에 앉아있으면 아이디어가 도통 안 떠오르고, 발을 한참 움직여야 겨우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그런데 기억력도 그리 좋지 않아서, 산책 도중에 메모를 안 하면 의자에 다시 앉을 때 말짱 도루묵이 된다는 게 문제죠.      


07 글에 관해 찾아보는/들려오는/만나게 되는 반응 중에서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작년 말에 어떤 메일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자신이 준비 중인 영화에 출연해달라는 제의가 담긴 메일이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는 제가 2020년에 했던 한 강연의 일부분을 직접 재연해달라는 제의였죠. 준비 중인 영화와 이 강연의 주제가 서로 공명하는 부분이 있다고 판단하셨던 건데, 굉장히 독특한 제안이어서 놀랐지만, 또 재밌는 일이 될 것 같아 곧바로 수락했었습니다.      


08 가장 좋아하는 저자 한 사람을 꼽는다면? (철학/문화/미디어/과학 등 선생님의 분야와 관련된 사람이 궁금합니다한국 저자가 가장 궁금합니다!) 

한참 생각해봤지만 국내에서 그럴 만큼 '좋아하는' 저자는 없는 것 같습니다.      


09 다른 분야의 저자 중에서 영감을 주는 한 사람을 꼽는다면

국내 저자 중에선 얼마 전 작고하신 역사학자 이영석 교수님이 생각납니다. 예컨대 『삶으로서의 역사』를 읽으면서 '인과관계'라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지 비로소 알게 되었죠. 또 자신의 이론의 한계를 기꺼이 인정하고 쇄신을 꾀하던 그의 행보는 다른 지식인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것이었습니다.     


10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안을 이야기해주세요.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란, 다름 아니라 우리가 문제로 여기는 것이 정말로 우리가 '겪는' 문제냐 하는 겁니다. 과연 대다수의 지식인들은 동시대 문화를 제대로 바라보고 있을까요? 미리 구도와 결론을 짜놓고 거기에 세계를 꾸역꾸역 집어넣고 있는 건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면, 세계라는 똥통에 뛰어들어 일단 그곳을 긍정하고 보는 게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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