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흥순에 대한 불만
지난 달 16일 영상비평지 《마테리알》에서 개최한 발표대회인 제1회 "오픈 스페이스: 영화를 가르는 패스"에 발제자로 참여해 「정당화하는 관점 - 임흥순에 대한 불만」이라는 글을 발표했으며, 그 녹취록이 정리 및 공개되어 여기 소개한다. 제목에서 금방 알 수 있듯 이 글은 '영화 감독'이자 '영상 작가'인 임흥순에 대한 비판적 작가론을 표방하고 있으며, 임흥순(을 비롯한 동시대의 특정 예술작품군)에 대한 나의 오래된 불만을 여기서 조금이나마 풀어보고자 했다. 임흥순이 어떤 작가인지, 다른 평자들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내가 임흥순의 작업에 대해 갖는 불만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과연 동시대 예술가들 중 임흥순만이 겪는 문제인지를(사실 나는 본문이 공동체 얘기라기 보단 주체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대한 자세하게, 임흥순의 작업을 본 적이 없는 이에게도 호소할 수 있을 만큼 쓰고자 노력했으며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 같다. 아마도 내가 2020년 이래 발표한 긴 글 중 제일 읽기 쉬운 편이 아닐까 싶다. 발표 도중 사실 관계를 틀리게 설명한 여러 부분들에는 [발표자 주]를 달았으며, 질의응답 시간에 허둥지둥대거나 정돈된 답변을 내놓지 못한 부분들도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당시 현장의 느낌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래는 녹취록을 볼 수 있는 노션의 링크이며, 다른 분들의 발표도 퍽 인상적이라 두루두루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또한 이 때의 발표문은 약간의 수정을 거쳐 나의 첫 단행본인 『뭔가 배 속에서 부글거리는 기분』에 수록될 예정이다.
"임흥순 작가에 대한 발제를 해달라는 마테리알 측의 제안을 받은 건 지난 2월 달 말입니다만, 어쩌면 오늘 제 발제는 2019년부터 조금씩 시작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마테리알 측에서 제게 임흥순 작가에 대한 얘기를 청탁한 이유가, 제가 2019년 말에 쓴 트윗 때문이기에 그렇습니다. 해당 트윗을 여기 이렇게 친절하게 써 주셨는데요, (웃음) 제가 또 육성으로 한 번 읽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직접 읽어보겠습니다. “내 생각엔 임흥순을 잘 박살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를 조져버려야 '이 다음'이라는 정당성을 쟁취할 수 있을 것 같다.” (웃음) 지금 돌이켜보면 참, 이 트윗이 표출하고 있는 과장된 적의가 굉장히 부끄럽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뜻에 있어서는 생각이 크게 변한 바가 없는 것 같아요. 여기서 방점이 찍혀서 설명이 되어야하는 건 “잘 박살내는” 것. 그리고 “‘이 다음’이라는 정당성”일 것 같습니다. 또 이 트윗은 임흥순의 작업에 대한 적의와 함께 임흥순의 작업에 대한 세간의 인식에 대한 적의를 포괄하고 있기도 합니다."
"역사 없는 기억은 맹목적이고 기억 없는 역사는 사실 창백할 뿐이죠. 역사와 기억을 대립시키는 대신 임흥순은 역사와 기억을 얽으면서 ―이 이분법이 성립 가능하다면요― 시간, 사건과 그것들의 조건을 함께 바라보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임흥순이 동원하는 것은 물론 그의 허구적인 터치들이죠. 흔히들 퍼포먼스 씬이나 재연 장면이라고 일컫는 그의 장면들이요. 임흥순의 작업에서 독특한 건, 분명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탐사보도 TV 프로그램처럼 재연이나 꿈 장면 같은 허구적 터치들을 종종 가미하고 있음에도 그것의 목적에 있어선 관습적인 ‘재현’을 조금도 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